brunch

덥다, 정말로 덥다.

나는 찬물에 샤워하고 구두는 카놀라유로 샤워하고

by 일곱시의 베이글

오전에 조카 세발자전거 시승식이 있었다. 세 살 맞이 세발자전거다. 시승식을 맞이하야 엄마는 매운 등갈비를 준비했다. 나는 목욕재계 후 집을 나섰다. 조카는 자전거를 정말로 좋아했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 좋아해서 안 내리겠다고 떼를 쓰는 거다. 그래서 내가 자전거를 끌고 집까지 데려다 주기로 했다. 사랑스런 나의 조카를 위해 무엇을 못 하리. 허나 낮 12시의 태양은 뜨거웠다. 느린 걸음으로 30분을 걸었다. 최대한 그늘로 다니려 했지만 더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조카도 힘들었는지 점점 활기를 잃어갔다. 불러도 대답도 않고 축 늘어져 있었다. 어찌어찌 무사히 오빠네 도착. 조카를 집 앞까지 모셔다 드리고 친구를 만나러 갔다.


예정에 없던 맥주를 시켰다. 너무 더워서. 맥주 두 병을 시켰는데 맥주 두 병이 더 왔다. 서비스라고. 레몬맥주 같던데 맛있더라. 아침에 먹은 등갈비 소화가 덜돼 밥은 먹는 둥 마는 둥, 맥주만 들이켰다. 아 역시 여름엔 맥주야. 요즘 약 먹는 것 때문에 커피, 술 자제 모드인데 커피는 괜찮은데 맥주는 못 참겠다. 여튼 맥주 때문에 오늘 점심에도 약은 못 먹었다. 대낮부터 맥주 두 병을 마시니 잠이 솔솔 온다. 버스 타고 집에 돌아와 찬물로 샤워를 하고 낮잠을 잤다.


느지막이 깼다. 배는 안 고프고 멍하니 앉아 뭘 할까 고민했다. 건강 앱을 보니 오늘 3300보 걸었단다. 좀 더 걸어야겠다 싶어서 운동화 신고 산책을 나갔다. 정처 없이 저벅저벅 걸어 다녔다. 밤에도 거리엔 사람이 많았다. 과일 트럭 옆에는 아저씨 세 명이 옹기종기 앉아있었다. 한 명은 마늘을 까고, 두 명은 장기를 둔다. 플라스틱으로 된 맥주박스를 뒤집어 테이블을 만들고 그 위에 장기판을 올려놨다. 의자도 맥주박스다. 옆엔 막걸리와 종이컵 두 개가 있다. 두 아저씨는 엄청 심각한 표정으로 장기를 뒀다. 이런 풍경들이 왠지 모르게 엄청 정겹다. 한 시간 반 정도 걸었다. 밤인데도 집에 오니 땀에 흠뻑 젖었다. 또 찬물에 샤워를 했다.

이제 구두에 붙은 껌을 뗄 차례다. 아침에 조카와 산책하다가 구두에 껌이 붙었는데 잘 안 떨어지는 거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칫솔에 올리브오일을 발라 문질러 주면 잘 떨어진단다. 카놀라유뿐이라 그걸로 선택. 칫솔에 카놀라유를 묻혀 살살 문질러주니 정말 껌이 사라졌다. 녹아내렸다고 해야 하나? 이참에 가죽신발들을 세탁해야겠다 싶어 죄다 방으로 소환했다. 물티슈로 신발 바닥을 싹싹 닦은 뒤 신발 위 먼지도 살살 털어냈다. 다음은 카놀라유 칫솔질. 기름을 입어서 반짝반짝. 깨끗이 목욕한 기념으로 오늘 밤엔 내 방에서 재워주기로 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세 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