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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악치료사 이원지 Sep 07. 2023

뭣같고 즐거웠어 삶이란게

#장례희망_이찬혁

얼굴 다 모였네 여기에 
한 공간에 다 있는 게 신기해
종종 상상했던 내 장례식엔 
축하와 환호성 또 박수갈채가 있는 파티가 됐으면 했네
오자마자 내 몸집에 서너 배 커다란 사자와 친구를 먹었네
땅 위에 단어들로는 표현 못 해 
사진을 못 보내는 게 아쉽네

나와 그닥 뭐가 없던 여자의 슬픔이 좀 과하게 보이길래 놀랐네 
돌이켜보니 그러게 우리도 미묘한 신호가 있긴 했네
뭣 같고 즐거웠어 삶이란 게
할렐루야 꿈의 왕국에 입성한 아들을 위해
할렐루야 함께 일어나 춤을 추고 뛰며 찬양해
할렐루야 큰 목소리로 기뻐 손뼉 치며 외치세

[장례희망_이찬혁]


희한하게도 난 꼬꼬마 시절, 화장실 변기 뚜껑을 닫고 그 위에 올라가 꽤 오랜 동안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곤 했다. 그때마다 죽음 이후의 세계를 상상했다. 지금 내 몸은 언젠가 끝날 것이고, 그 다음 세계는 끝없이 이어진다는데, 어떤 형태일지 모를 내가 영원히 지속된다는 느낌이 굉장히 신비롭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사후 세계를 그리는 장소로 변기 뚜껑 위를 선택했던 것은, 어린 내가 쉽게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위치, 다시 말해 하늘과 그나마 가장 가까운 곳이라고 추리했기 때문이었다. 꼬마 이원지는 나름 상상세계의 영역이 깊었다. 

 


곡 제목을 처음 접하고는, 지은 이의 언어적 센스와 재치에 대해 다시 한번 감탄하였고, 나 또한 늘 생각해왔던 주제이기에 반갑고 고마운 마음이었다. 그가 희망하는 자신의 장례 장면은 과연 어떠한 그림일지, 이러한 곡은 설레는 마음으로 집중하며 청취하게 된다.


오자마자 내 몸집의 서너 배 커다란 사자와 친구를 먹었네
땅 위의 단어들로는 표현 못해 사진을 못 보내는 게 아쉽네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커다란 사자와 친구가 된 그는 사자와도 한 컷, 여러 황홀한 전경들에도 반해 셔터를 눌러대었을 터, 그 어메이징한 사진을 사람들과 공유하지 못하니 아쉽고 아쉬울밖에. 


사망 사건의 주인공인 그로 인하여 아는 얼굴들이 다 모여있는데, 정작 그들에게 아는 척을 하지 못하는 심정은 어떠할까. 영의 세계에서도 영혼들 삼삼오오 모여 본인의 사망 서사를 수다할지도 모를 일이다. 



할렐루야. 꿈의 왕국에 입성한 아들을 위해 
할렐루야 함께 일어나 춤을 추고 뛰며 찬양해
할렐루야 큰 목소리로 기뻐 손뼉 치며 외치세


죽음 뒤에 펼쳐지는 Part2는 천국일 것이라 확신하는 사람의 사망 후 첫마디는 과연 "할렐루야".


그곳의 문을 열자 트럼펫 부는 천사들이 등장, 그야말로 환영의 축하 파티가 시작되었으니 이곳 저곳에서 샴페인이 터진다. 온갖 세션과 함께 그곳에 먼저 있던 수많은 무리가 손뼉을 치며 그를 맞으면서 이 홀리하고 화려한 선율이 시작된다. 


지은 이는 메이저와 마이너를 넘나들며 내세의 세계를 표현해내는데 그 멜로디와 세션들이 웅장하고 경이로워, 자칫하면 뻔한 컨템퍼러리 크리스천 뮤직이 될 뻔한 것을 마이너가 극적으로 살려냈다.

 


2절의 가사를 접하며 난 비로소 그의 나이를 실감하는데, 그는 본인의 장례식장에서 과하게 우는 그녀를 발견하곤 그녀와 평소에 묘한 시그널이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바로 이 부분에서 그와 나의 걸어온 시간 차이를 느낀다. 

28년을 살아온 건장한 미혼 청년은 무언가가 오가는 중이었던 그녀를 바라보며 마음이 짠하지만, 만약 그보다 10년 20년 훌쩍 더 많은 삶을 살아낸 기혼 여성 혹은 남성이라면, 과연 미묘한 시그널이 있었던 누군가에게서 가사가 끝났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절절을 넘어 쓰라리고 아플 것이 극명한 것은 남겨둔 자녀들이 있을 것이기에.


가사에는 가사를 쓴 이의 철학과 생각, 그리고 나이와 연륜이 묻어나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그의 10년 후, 20년 후의 장례희망 가사에는 어떤 화자가 등장할까. 고로 어릴 때부터 활동하는 누군가(내 맘에 들어온)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그의 깊이와 넓이를 함께 확인할 수 있기에 나는 생의 통찰을 함께하며 청취하는 운을 누리게 된다. 


현재를 살아가는 나는 아직 장례식의 면면들을 구체적으로 그려보진 못하였고, 죽음이 임박할 때 내 귓가에 들려주었으면 하는 플레이리스트들은 가지고 있다. 딸들에게 바라는 것은 병실 혹은 집의 베드에서 내 플레이리스트만 on해주오 하는 것이다. 난 늘 잔잔한 곡들만을 그려왔으나 이 곡을 계기로 기쁨의 선율을 포함시키련다. <장례희망>. 나의 웰다잉 플레이리스트에는 한 곡이 더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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