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숨_이하이
숨이 벅차올라도 괜찮아요
아무도 그댈 탓하진 않아
가끔은 실수해도 돼
누구든 그랬으니까
괜찮다는 말
말 뿐인 위로지만
누군가의 한숨 그 무거운 숨을
내가 어떻게 헤아릴 수가 있을까요
당신의 한숨 그 깊일 이해할 순 없겠지만
괜찮아요 내가 안아줄게요
정말 수고했어요
[한숨_이하이]
음악치료사로 살아가겠다 굳세게 명해놓았으나 만나게 되는 많은 분들 앞에서 난 이 노랫말을 되뇔 수 밖에 없었다. 그 한숨의 깊이와 넓이를 내가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특별히 나는 장애아동의 어머님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는데, 주어진 내담자는 그분들의 자녀였으나, 나 또한 엄마이자 여성이기에 그들의 형편과 상황에 계속 마음이 쓰였다. 때때로 나의 자녀또래의 자녀를 둔 어머님들에겐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어, 상당 부분 말을 아끼기도 하였다.
어느 겨울날, 장애아동 어머님 다수를 만나게 되는 세션이 찾아왔고, 그 날을 준비하면서 나의 이런 면모는 더욱 두드러져, 상상 속 음성이 실제로 둔갑해 말을 걸어왔다.
‘치료사의 입장으로 와 있는 당신은, 우리를 얼마나 이해하나요? 장애아동의 엄마로 살아본 적 없는 이상, 당신은 이 수많은 고통을 알 수 없어요.’
결국 이러저러하게 휘리릭 치러진, 자칭 별로였던 그 날의 세션 뒤엔 나름의 깨달음을 정립할 수 밖에 없었으니, 그것은 치료사라는 이름과 역할을 지닌 이상, 내담자와 동일한 아픔을 경험한 적 없더라도, 그들은 내게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인간의 언어로 표현 불가능한 고통이 그득한 내면들 안에 들어가야 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일일이 나의 나약한 회색빛 속삭임들에 응해주기엔, 내가 너무 난쟁이가 되어 버리겠으니 안되겠다 싶다.
그러나 치료사로서 가져가는 변치 않을 철학과 가치관은 이것이니 바로 노래 속 이 문장.
당신의 한숨, 그 무거운 숨을
내가 어떻게 헤아릴 수가 있을까요
당신의 한숨 그 깊이를 이해할 순 없겠지만
여기까지.
곧바로 이어지는 가사('괜찮아요 내가 안아줄게요')까지는 아직 한참 남았다. 누군가의 한숨에 대해 함부로 혹은 얄팍하게 괜찮다고, 내가 안아주겠다고 처리해 버릴 수는 없다. 설령 그와 유사한 마음이 피어난다면, 나의 한 언저리에 심고 갈지언정, 입술로 표현하고 싶지는 않다. 누군가의 한숨을 크게 가하거나 제하지 않은 채로 그 아픔을 존중하며 자연스럽게, 그런 잔잔한 치료사로서 존재하고 싶다.
팁 한가지.
숨을 크게 쉬어봐요
당신의 가슴 양쪽이 저리게
조금은 아파올 때까지
숨을 더 뱉어봐요
당신의 안에 남은 게 없다고 느껴질 때까지
남아있는 숨이 한 톨도 없도록 가슴이 저릴 만큼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뱉는 행위가, 호흡법이라 당당하게 불려짐과 동시에 심리치료와의 큰 연결성이 있음을 작사가는 알고 있었을까. 이 곡에서 한숨이라 표현한 깊은 호흡은 정말이지 뇌와 신체 곳곳에 산소를 보내고 우리가 아직 이곳에 명백히 살아있음을 알려준다. 후-. 한숨을 내쉴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온다면, 남아있는 숨이 없다고 느껴질 때까지 크게 한-숨 지어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