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요리에 소질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요리를 할 때마다 주방은 엉망이 되고 온 몸에 힘을 다 쓰고 하느라 진을 모두 빼기 때문입니다. 비효율적인 요리사면서 적성에도 그리 맞지않는 셈이었죠.
3시간 걸렸던 2년 전 갈비찜. 만들고 나서 몸져 누움.
만사 귀찮아하면서 주방으로 가서 뚝딱뚝딱 반찬을 만들어내는 살림 9단의 고수 분들에 비하면 제 요리는 너무나도 비효율적이었죠. 그래도 계속하다가 습관이 되면 칼질이든 재료 준비든 힘이 덜 들까 싶어서 조금 더 애를 써보긴 했습니다. 간단한 반찬류 정도는 좀 낫지 않을까 싶었죠. 그렇게 해봐도 이상하게힘든 건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미역줄기볶음, 파래무침(좌), 메추리알 조림(우)
멸치볶음(좌), 명엽채볶음(우)
결국 저는 조금씩 요리하는 횟수를 티 안 나게 줄여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하고 나면 진을 다 빼놓는 요리가 저랑 잘 안 맞는 것 같다는 핑계였죠. 다만 딱 하나 아내와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잡채까지 안 하겠다고 하기는 어려웠습니다.잡채는 이제 손에 많이 익기도 한 데다가 아이들에게 각자 임무분담을 줄 수도 있어서 손이 덜 가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사먹는 것이 더 쌀 것 같은 잡채......
그렇게 제 요리 DNA가 잡채 하나만 남겨놓고 개미 똥꾸멍만치 줄어들었을 때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바로 고구마 맛탕이었죠. 회사에서 먹은 맛탕은 딱딱한 식감이 아닌 부드럽게 녹는 느낌이었고 제 입맛에 딱 맞았습니다. 너무 맛있게 먹었던지라 가족들에게도 먹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제가 평소에 만들었던 맛탕은 생고구마의 전분기를 물에 담가서 빼고 바로 튀기는 방식이었습니다. 이 맛탕은 달랐습니다. 고구마를 어느 정도 삶은 뒤 튀기는 식이어서 시간과 노력은 두 배로 들었습니다.
아이도 함께 옆에서 도와준 덕분에(?) 시간은 더 걸렸지만 그래서 더 의미 있는 신메뉴인 고구마 맛탕을 온전하게 만들어냈습니다. 다 함께 게눈 감추듯 먹어치우는 모습을 보니 보람도 있고 뿌듯하긴 합니다.
아무래도 친가에서 보내주신 고구마의 맛이 원체 좋았던 덕도 보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는 평소 아내에게 반찬 투정을 안 합니다. 뭘 먹고 싶다는 이야기도 잘하지 않죠. 만드는 사람의 노고를 제일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도 잘 안 하려고 합니다. 간단하게 구워 먹는 고기류를 자주 먹고 되는 대로 먹거나 반찬가게에서 반찬을 사 와서 먹는 경우도 많죠. 그게 편하긴 하니까요.
이번 일 이후로 제가 언제 또 요리에 무슨 바람이 불어 주방에서 칼을 잡아들지는 모르겠지만 가족들은 그런 바람이 자주 오길 바라는 눈치입니다. 매우 부담스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