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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르세우스 Apr 20. 2022

회식과의 전쟁

갑자기 회식이 왜 재미있어졌지?


 저는 솔직히 회식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평소 대인관계를 원만히 다져놓는 것을 오히려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렇기에 회식을 해야 사람들끼리 친해지고 오해도 풀고 업무협조도 잘 된다는 회식 예찬론자들(일명 라떼꼰대들)의 주장을 신뢰하진 않았죠.  

한 명만 즐거운 경우가 많은 회사 회식


 그래서 회식은 코로나 이전까지는 잘 참여하지 않는 편이었습니다. 눈치껏 빠져왔었죠. 얼마 전부터 코로나 덕분에 회식은 소멸했고 물 만난 물고기처럼 좋았습니다.


 작년 2월쯤 저는 교대근무를 하다가 일근직으로의 인사이동을 했습니다. 저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좋아하고 이야기하는 것도 듣는 것도 좋아합니다. 일근형 인간이죠. 그런 이유로 어느 정도의 변한 환경에 대한 기대와 걱정이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랜만의 일근에서 제가 받은 느낌은 썩 좋지 않았습니다. MZ세대의 특징인 저녁 회식보다는 점심 회식, 술보다는 취미 생활, 대면대화보다는 메신저 사용을 선호하는 분위기에다가 코로나 펜데믹으로 인한 재택근무 + 사무실 마스크 + 집합 금지 등으로 같은 공간에 있으나 서로 어떤 사람인지 알지도 못하며 기존 직원들조차도 서로 바람직한 관계 형성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이죠.

 

 비대면 사회가 오더라도 사회성은 계속 미래인재의 경쟁력이라는 점을 봤을 때 가볍게 생각할 부분은 아니었던 거죠.

이런 회식은 넣어둬, 넣어둬~


 물론 이런 걱정 자체가 꼰대 같다고 하실 분들이 계실 수도 있을 겁니다. 네가 CEO도 아닌데 이런 걱정을 왜 하냐 싶으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직장이라 할지라도 최소한의 소통은 필요합니다. 직장에서도 인간관계가 유연한 사람이라면 곤란한 상황이나 협업이 필요한 상황에서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던 와중에 제가 전입 온 지 무려 440여 일 만에 회식이 잡혔습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제가 반사적으로 나타낸 반응은 썩 좋지 않습니다. 제 피 속의 DNA 자체가 회식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생각됩니다..

 예전 글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입사 초기 회식에서 소주를 병뚜껑에 부어 코로 마셔본 사람 전설적인 인물입니다. (무슨 소리인지 궁금하신 분은 술과의 전쟁 참조) 그렇기에 회식이라면 일단 두드러기부터 생기는 체질이죠.

https://brunch.co.kr/@wonjue/106



 갈까 말까 고민을 잠시 하다가 그래도 전입 오고 나서 갖는 첫 번째 회식인데 한 번 정도는 가는 것이 좋지 않겠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0여 명의 중급 규모의 단출한 회식이었죠.

 게다가 저를 포함해 2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코로나19를 앓으셨던 분들이기에 오히려 코로나 감염의 위험성도 많지 않은 모순적인 회식 자리였습니다.

어제 회식 메뉴


오랜만에 회식 메뉴는 푸짐했습니다. 가족들과 먹으러 올 일이 없던 메뉴라서 좋았습니다. 딱히 술을 좋아하지 않기에 홀짝홀짝 강아지가 물을 마시듯 맥주로 혀를 축이며 안주를 열심히 먹어댔죠.

 

 그런데 맛있는 음식도 좋았지만 진짜 좋았던 점은 따로 있었습니다. 사람들과 마스크를 벗고 이야기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번 회식 때 자리를 함께 한 분들 중에는 차 한 잔, 식사 한 번 못했던 분들이 대부분이어서 온전히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볼 기회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죠(오해하실까 싶어서 말씀드립니다. 참고로 어제 참여자는 모두 남자들이었습니다).


 결혼은 꼭 해야 하는가?, 이제 해외여행을 어디로 갈 것인가 등등의 크게 중요하지도 않고 죽고 사는 문제도 아니며 실없는 소리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정말 오랜만에 웃으면서 먹고 싶은 만큼 마시고 싶은 만큼 먹고 마셨던 자리는 참 즐거웠습니다.


 회식이 이렇게 재미있었던 것이었나 곰곰이 반문해봅니다. 그러면서 예전 술을 억지로 먹고 술잔을 머리 위로 털어야만 했던 회식도 회상해보게 되네요. 가끔씩은 괜찮겠다 싶다는 결론을 내려봅니다.



 어제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으니 분기마다 한 번 정도 하는 거면 괜찮을 것 같아요.

어제 회식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얻은 멋진 야경사진

#회식 #집합금지 #해천탕 #물만난고기 #코로나소주마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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