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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지도 보지도 못한 갯벌 체험기

조개잡이 없는 갯벌체험

by 페르세우스



서산 버드랜드를 어마어마할 정도로 열심히 구경하고 온 뒤 저희 가족은 태안의 한 펜션에서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저녁도 간단하게 레토르트 식품들로 해결합니다. 고기를 사서 숯불로 바비큐를 하는 낭만적인 여행은 이번 경우에 한해서는 사치일 뿐입니다. 이런 식의 여행도 있다는 것을 아이들도 배워야죠.


1탄을 못 보셨다면 클릭

https://brunch.co.kr/@wonjue/367




다음 날이 되어 아침을 먹고 짐을 싼 뒤 체크아웃하니 서울로 올라갈 준비가 끝납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길에서 차가 밀리는 것을 싫어하니까요.


그런데 그러던 차에 새로운 제안서가 스윽 들어옵니다. 숙소에서 해수욕장이 가까우니 기왕 여기까지 온 김에 구경이나 하고 가자고 말이죠.

원래는 오후에 갯벌체험을 예약해두었는데 낮 기온이 30도가 넘을 거라는 예보를 접하고 포기한 상태였습니다. 그 상황에서는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 같아서 동의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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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부터가 시작이었습니다.


숙소에서 가까운 해수욕장들을 검색해보니 여러 군데가 나옵니다. 제가 이름을 들어본 곳은 꽃지 해수욕장뿐입니다. 거기를 가려고 하다가 지나가는 길에 생전 처음 듣는 이름이 튀어나옵니다.

<삼봉 해수욕장>


ㅇ우유나 ㅇㅇ유업이나 우유 맛이 거기서 거기인 것처럼 해수욕장도 어딜 가든 별 차이 없겠다 싶어서 일단 가까운 곳으로 갑니다.

해수욕장 별로 평점도 있다.

나름 이 바닥에서 명성이 있었던 삼봉해수욕장




딱히 기대를 않았던 삼봉 해수욕장은 한적하고 사람이 많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오후 12시쯤에 도착했는데 때마침 바다는 썰물이었습니다. 해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갯벌이 드넓게 펼쳐져 있는 모습이 막혀있던 속을 뻥 뚫어줍니다.

물기를 머금은 촉촉한 모래사장을 거쳐

울퉁불퉁하고 물컹한 진흙바닥을 지나니

드디어 바다다!!!!!




당연히 저는 물에 안 들어갑니다. 사주 보시는 분이 언젠가 제 사주에 물이 없다고 한 것 같은데 그게 그런 뜻이었나 싶습니다. 저는 태생적으로 물과는 저~언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거든요.

물을 원체 좋아하는 세 사람은 바다에 오니 마치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신이 나는 모양입니다. 원래는 이 정도 시간만 딱 즐기고 갈 계획이었습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제가 바다 풍경을 찍어보겠다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사이에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짐을 깨닫게 됩니다. 아이들이 갑자기 자리를 잡고서 모래를 손으로 파기 시작한 것입니다.

마치 인간 굴삭기처럼 말이죠.

처음에는 엉덩이는 들고 손으로만 파내기 시작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모래바닥에 철퍼덕 엉덩이를 붙여버리고

급기야 모래 속에 신체의 일부를 파묻기 시작합니다.

이곳은 보령도 아닌데 혼자 머드축제 모드를 시전 중입니다.





그렇게 제 머리가 어질어질해지는 와중에 새로운 친구가 가까이 왔길래 대화를 한 번 시도해봅니다.

저는 ESTJ니까요.

나 : 혼자뉘?

괭이갈매기 : 응, 아직 솔로야..

나 : 아니, 그 말이 아니고 너 혼자 왔냐구..

괭이갈매기 : 아닌데? 친구들도 저기 있어.

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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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가 하나둘씩 모여들길래 살펴봤더니 1호가 먹다 남은 식빵 끄트머리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녀석들은 서로 텔레파시라도 주고받는지 순식간에 빵을 들고 있는 1호 근처로 모여듭니다.




먹다 남은 빵조각의 양이라고 해봐야 얼마나 되겠습니까. 금세 빵 봉지는 비워졌죠. 그런데 아이가 너무 아쉬워하는 것이 눈에 보이니 마음이 약해졌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순간적으로 참지 못하고 아이에게 외칩니다.


"ㅇㅇ야, 따라와! 과자 사러 가자!"


해수욕장 근처는 편의점이 없다 보니 웃돈(?)을 주고 사이즈가 큰 콘칩을 하나 삽니다. 3,000원이네요. 1호는 다시 신이 나서 갈매기들과 놀기 시작합니다.

오늘은 내가 이 동네 새형(Bird brother)입니다.

새형(Bird brother)



괭이갈매기들이 질서 정연한 모습으로 차분하게 과자를 기다리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꽤 신사적입니다. 하지만 과자가 허공으로 던져지는 순간 순식간에 달려드는 모습은 밀림의 맹수 뺨칠 정도네요.

어디 가서 돈 주고도 하기 힘든 갈매기와의 교감 형성 영상



1호는 실컷 갈매기에게 먹이주기를 하며 놀다가 시해진 모양입니다. 바다에 다시 갔다 오는 것 같더니 이제는 물속에 들어앉아서 물고기를 손으로 잡아보겠답니다. 속옷과 바지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심히 걱정되지만 이미 그들은 틀렸어요.

소라게도 보고

큰구슬우렁이 안에서는 게가 세 마리나 나오네요!!

사이좋은 게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날 열심히 아이들과 모은 수집품들




예상보다 갯벌에서 보낸 시간이 길었습니다. 아침에 집으로 출발했다면 2시간 40분이 걸리는 거리였지만 실컷 놀고 점심까지 푸짐하게 먹고 출발하니 무려 4시간 40분 만에 돌아오게 되었네요.


그래도 그 덕에 쉽게 경험하기 힘든 기묘한(?) 체험을 할 수 있었으니 2시간 정도 더 쓴 것쯤이야 아깝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렇게 저도 부모로서 성장해가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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