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마스터이신 할아버지가 열심히 가꾸고 계신 텃밭에 대한 사랑이 항상 진심인 아이들은 전화를 끊자마자 제게 눈빛으로 "고구마! 고구마!"라고 외치고 있는 듯합니다. 그렇게 어렵게 일정을 조정하고 날짜를 정한 뒤 서울에서 4시간 반을 달려 진해에 도착합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일단 바깥의 날씨에 깜짝 놀랍니다. 기온이 20도에 육박하고 있었던 것이죠.
도착한 가족들은 내리자마자 감당할 수 없는 포근함을 느끼고는 두껍게 입고 왔던 외투들을 모두 벗어던진 뒤 텃밭으로 올라갑니다. 11월 중순의 날씨가 이렇게 따뜻하다니 신기할 따름입니다. 텃밭에 도착해서 할아버지와 만난 아이들은 넓게 펼쳐진 고구마 밭을 보며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보는 강아지처럼 흥분하기 시작합니다.
할아버지가 둥이들을 위해 남겨놓은 고구마, 물론 땅속에 다 숨어있지요
예전의 할아버지라면 아이들이 놀러 오면 직접 시켜보기보다는 자신이 수확하는 것을 보여주면서 잠깐 맛만 보게 하셨습니다. 이제는 아이들도 제법 컸다고 호미질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직접 시범을 보여주시며 꼼꼼하게 알려주십니다. 그걸 듣고 있는 아이들도 제법 진지합니다.
시범을 열심히 보여주는 둥이할배, 열심히 듣는 둥이들
고구마를 캘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은 호미로 고구마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마구잡이로 호미질을 하다 보면 고구마의 겉면에 상처뿐만 아니라 부서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서는 정성스레 흙을 긁어내는 둥이들의 모습이 사뭇 진지합니다.
2호
1호
수확을 진행하는 동안 생각보다 커다란 고구마들이 많아서 아이들이 캐내는 동안 깜짝깜짝 놀랍니다. 일단 이 정도의 고구마를 캤으니 인증샷은 남겨두어야 해서 일하다 말고 하나 찍어둡니다. 이제 제가 시시콜콜하게 뭘 알려주고 챙기고 할 시기는 많이 지나갔고 사진이나 잘 찍어주면 되는 것 같아서 세월의 무상함도 느껴집니다.
하지만 또 너무 가만히 탱자탱자 놀고만 있으면 이 글을 쓸 때 모양이 안 날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설정샷도 예의상 하나 남겨야죠. 쇠스랑을 하나 들고 고구마가 숨어있는 땅을 천천히 긁어냅니다. 그러면서 빨리 사진을 찍으라고 채근합니다. 열심히 일하는 것 같아 보이나요?
아이들은 아빠가 글을 위한 설정 사진을 찍거나 말거나 전혀 개의치 않고 고구마를 한 개라도 더 캐겠다는 열정에 엄청나게 몰입합니다.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 정성스럽게 캐는 모습이 너무 진지해서 말을 걸기도 조심스럽습니다. 보통 많은 분들은 이런 모습을 보면서 공부도 저렇게 집중해서 하면 좋으련만.. 하시겠지만 이런 집중력을 보여준다면 다른 면도 재미를 느낀다면 할 수 있겠지 않냐며 긍정적으로 생각해봅니다.
고구마를 사랑한 둥이들
생각보다 진지한 녀석들
단지 20~30분 정도 했을 뿐인데 제법 많은 고구마를 캤습니다. 일단은 이 정도에서 마무리를 하고 비닐봉지에 담아놓습니다. 고구마 장사를 하려는 것도 아닌데 한 날에 모두 다 수확해버리면 이래저래 처치곤란이니까요.
이어서 배추도 수확하는 것도 구경을 해봅니다. 아직은 배추를 뽑는 것은 내공이 필요할 것 같아서 할아버지가 하시는 것을 눈으로 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랩니다.
저는 점심을 먹고 나서는 오후에 친가에서 늘어지게 잤습니다. 너무 피곤했던 모양입니다. 그동안 아이들은 할아버지와 다시 텃밭으로 올라가서 고구마를 더 캤다고 하네요.
할아버지가 텃밭에 만들어 놓으신 그네
그네도 타면서 실컷 재미있게 놀고 거기에다 엄청난 녀석들을 찾아낸 뒤 집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바로 아이 머리보다 더 큰 크기의 대왕고구마 두 개였죠. 농사를 지으신 할아버지도 처음 보는 크기라고 하시네요.
왕복 9시간의 긴 시간을 운전하느라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고생해서 다녀온 보람이 많았던 것 같네요. 아이들의 일기에도 이번 여행의 추억에 대해서 쓸 내용이 많아지고 제 글 역시 이렇게 풍성해졌으니까요. 거기에 부모님께서 챙겨주신 정성과 사랑도 차에 가득 싣고 돌아와서 여러모로 따뜻한 고향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