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엽 감는 새 연대기 - 무라카미 하루키

by 원광우

딱히 어떻게 정리가 잘 되지 않는 소설이다. 아마도 그 이유는 몇 가지로 구분되는 스토리 간의 연관성을 파악하기가 용이하지 않고 드문드문 시공간을 넘나드는 비현실적 배경들이 삽입되어있는 탓일 것이다. 1Q84 역시 그런 면이 없지 않았던 걸 기억하면 이런 점을 두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특징이라 말한들 틀린 표현은 아닌 것 같다. 논리적으로 딱 들어맞으면서 무언가 강한 메시지가 전달되는 소설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불만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히 정형화되지 않는다면 나름대로 이해하고 해석하면 될 일이다.

스토리를 도식화해보기로 했다. 기본 줄기는 나, 오카다 도오루가 끌어가는 현재다. 어느 날 갑자기 아내가 가출을 감행하고 나는 아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가출의 이유를 찾아다닌다. 그 곁가지에 몇 개의 에피소드들이 매달려있다. 마미야 중위와 혼다씨가 참전한 노몬한 전투와 관련된 사건들, 넛메그의 아버지가 근무했던 중국 신징의 동물원과 관련한 사건들, 구미코의 오빠인 와타야 노보루와 가노 마르타, 가노 크레타가 얽힌 사건들이 그것이다. 거기다 그만큼의 비중은 아니지만 가사하라 메이의 생활도 섞여든다. 이들은 어떤 매개물을 통해 분명하게 연결되어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연결의 의미는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저 각각의 사건들이 던지는 메시지가 어렴풋이 전달되어져올 뿐이다.

이야기의 발단은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가 가출을 하는 일이다. 이어 미지의 여자로부터 전화도 걸려온다. 음란전화의 성격을 띤 전화지만 거기서 여자는 10분만 통화를 하면 상대를 알 수 있다는 말을 한다. 그때 나, 도오루는 수 년 동안 결혼생활을 함께 해오면서도 소고기와 피망, 화장지 등과 관련한 아내의 취향을 몰랐던 일을 떠올린다. 이러한 사실들은 고양이의 가출과 맞물려 구미코의 예상 밖 가출을 암시하는 복선역할을 한다. 아니나 다를까 고양이를 찾아다니는 동안 구미코가 돌연 사라진다. 나로서는 그 이유를 도대체 짐작할 수조차 없다. 소설은 바로 그 아내를 찾아다니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그 과정 중에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들을 표출시킨다.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아다니면서 도오루는 같은 동네에 사는 가사하라 메이라는 소녀를 만나게 된다. 메이는 불확실한 미래를 고민하면서 현실세계에 반항하는 청소년이다. 음주와 흡연을 일삼으며 정규교육을 거부하고 급기야 기숙 가발공장에 취업해 현실세계로부터 도피하기까지 하지만 나에게는 적잖이 위안을 안겨주는 아이다. 세대 간의 갈등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내세운 인물로 보인다. 메이로 인해 도오루는 미야와키네의 우물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 우물은 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통로가 된다. 그런 점에서 그녀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회문제 해결의 조력자를 대변한다.

우물을 매개로 도오루와 연결되는 인물은 마미야 중위와 혼다씨다.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을 가진 혼다씨는 도오루에게 땅 밑으로 내려갈 것을 권유한다. 그걸 기억한 도오루는 결국 우물 밑바닥에서 시공간을 넘나드는 체험을 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 뿐만 아니라 마미야 중위와 혼다씨는 노몬한 전투에서 보리스가 야마모토의 살갗을 벗기는 끔찍한 장면을 목격하고는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 그들이 살아남게 된 계기는 우물과 인연이 있다. 이 사건들은 전쟁의 잔인함을 낱낱이 고발한다. 또한 전쟁 당사자들의 고통이 얼마나 긴 시간 이어지는지도 알려준다. 이들은 사회문제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도오루와 와타야 노보루는 구미코를 매개로 이어진다. 노보루는 구미코의 오빠다. 정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지만 그는 혈통 속에 뭔지 모를 어두운 비밀을 안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몸속에서 그 무언가를 끄집어내 그 사람을 빈껍데기로 만들어야 한다. 구미코의 언니와 가노 크레타가 대표적인 피해자다. 그는 계층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해 끊임없이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이기적인 인물을 대변한다. 정치적 야욕을 달성하기 위해 구미코까지 희생시키고자 도오루로부터 뺏어오려는 데서 구미코의 가출도 빚어진다. 작가는 일련의 이런 일들을 통해 끝없는 인간의 욕망을 비판한다. 노보루야말로 사회문제의 근원이자 악의 화신, 즉 가해자에 해당한다.

이외에 아카사와 넛메그라는 인물이 있다. 그녀의 아버지는 2차 대전 당시 신징의 동물원 수의사였는데 전쟁 통에 후퇴 전에 동물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고 살해하는 현장에 있게 된다. 이 사건을 통해 작가는 인간과 동물의 공존문제, 동물 학대문제를 제기한다. 그는 신징이라는 도시를 매개로 마미야중위와 혼다씨와 연결되어있으며 도오루와는 푸른 멍, 야구방망이, 태엽 감는 새 등을 매개로 연결되어 있다. 도오루처럼 푸른 멍을 가지고 있었으며 야구방망이로 사람의 머리를 쳐 죽이는 광경을 목격한 적이 있고 태엽 감는 새의 울음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 것이다. 넛메그는 사람들을 정신적으로 치유하는 능력을 부여받아 많은 사람들을 치유한다. 도오루를 끌어들인 것도 아버지와 같은 푸른 멍을 발견해 그런 능력이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멍이나 태엽 감는 새는 운명을 상징한다. 운명적으로 생긴 멍이 치유력을 가지고, 태엽에 따라 움직이는 새처럼 운명이 정해진 대로 삶이 결정된다는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아울러 인간 세계에도 운명이 존재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넛메그는 사회문제의 치유자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고양이가 돌아오면서 이야기는 결말로 치닫는다. 고양이의 귀환은 구미코 역시 돌아올 것과 모든 일이 정상으로 되돌아갈 것이라는 암시에 다름 아니다. 그러면서 도오루는 구미코 집안의 혈통 속에 무언가 어두운 비밀의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음을 알아내고 구미코와의 만남을 시도하면서 악의 실체와 맞서 야구방망이로 상대를 제압한다. 그 일을 통해 모든 것이 제자리를 잡는다. 구미코는 노보루를 살해한 후 죄값을 치르면서 해방되고, 말라버렸던 미야와키네 우물에서는 물이 솟아나며, 마마야 중위는 모든 걸 털어놓은 후 홀가분해진다. 가사하라 메이 역시 안정을 찾으며 미래에 대한 기대를 키운다.

책읽기가 모두 끝났지만 여전히 내 머리는 복잡하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도오루가 때려죽인 악의 실체는 누구인지, 노보루는 습격을 당해 쓰러진 것인지 뇌출혈로 쓰러진 것인지, 시나몬의 컴퓨터에 있는 태엽 감는 새 연대기의 #8과 #17 외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있는지, 구미코 집안의 어두운 비밀은 무엇인지, 등등. 그런 내용들이 밝혀지지 않았다고 해서 뭐 그리 실망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런 의문이 이 소설에 대한 나의 기억력을 보다 연장시켜 줄 것이라 믿기에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일수록 해답은 밝혀지지 않아도 수수께끼의 내용만은 오래 남는 법이니까.

keyword
이전 11화악령 - 표도르 도스토옙스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