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기행문의 형태를 띠면서 회고형으로 씌어있다. 한 집안의 유능한 집사인 스티븐스라는 인물이 휴가를 받아 6일 동안 여행을 하면서 과거를 돌아보는 형식이다. 여행의 목적은 이전에 함께 근무한 적이 있던 켄턴 양을 만나기 위함이다. 그는 최근 켄턴 양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편지의 내용은 과거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 차있다. 예전의 생활로 돌아오고 싶다는 뜻이라 판단하기에 충분하다. 마침 자신의 근무지에 인력문제가 발생해 고민을 하던 그는 켄턴 양을 만나 복귀의 의사를 타진해보기로 한다. 여행을 하면서 회상하는 내용은 35년간 자신이 집사로 몸담았던 달링턴 홀에서의 생활이다. 그 초점은 ‘품위’라는 단어로 대변되는 위대한 집사에 관한 것에 집중되어있다.
그는 자신이 위대한 집사였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부각시킨다. 그의 자존심은 실로 대단하다. 기억하는 에피소드마다에서 독자들은 그걸 부정할만한 조그만 건더기도 찾지 못한다. 그야말로 완벽함 그 자체다. 그만큼 자신의 행위에 대해 철저하게 근거를 들이대며 설명한다. 하지만 그런 점이 되려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완벽하다는 건 거짓에 가깝다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지나친 강조는 그 모든 것이 자기합리화임을 고백하는 행위이자 오히려 자신의 부족함을 숨기려는 의도로 받아들여진다. 그의 회상 역시 과유불급에 해당하는 면이 없지 않다.
집사라는 직업의식을 설명하는 부분 역시 행간에 숨은 의미를 다시 한 번 살피게 만든다. 집사라는 직책을 그는 한 마디로 이렇게 요약한다. 나를 위한 삶이 아니라 주인을 위한 삶을 살아야하며 자기희생이 요구되는 자리라고. 다시 말해 집사는 모든 일을 주인의 입장에서 판단하고 결정해야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뒤집어 이야기하면 이것이야말로 자기행동에 대한 책임회피가 아닐 수 없다. 잘못된 결정을 해도 주인의 뜻이었다는 보호막 뒤에 숨으려는 비겁한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에 그는 분명 집사로서 성공한 사람이다. 그 분야에서는 존경을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삶을 후회하는 듯한 인상을 드문드문 풍긴다. 집사가 아닌 인간으로서는 실패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그건 여러 대목에서 드러난다.
루스와 사라, 두 하녀를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해고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자신 또한 그만두겠다며 강하게 반대하는 켄턴 양에게 그는 주인의 뜻을 충실히 따르는 것이 집사로서의 의무임을 강조하며 설득한다. 그것을 집사의 품위로 애써 포장하기도 한다. 자신의 뜻이나 의지를 내세우기보다 직책을 내세워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만 봐도 스스로가 잘못된 행위라 인지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의무를 충실하게 수행한다는 이유로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는 부분 역시 그렇다. 합리적이지도 않고 융통성을 보이지도 못하는 고지식함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그 이면에는 아쉬움과 뉘우침의 흔적이 역력하다. 켄턴 양이 결혼을 결심했다며 떠나갈 때도 마찬가지다. 능력 있는 그녀를 붙잡을 법도 하지만 체념하고 포기하는 것 또한 그는 자신의 위치에서 책임과 의무를 다한 것으로 치부한다. 그 태연함은 그녀를 찾아 떠나는 여정만으로도 자신의 속마음과는 다른 가장된 행동이었음이 증명된다. 모스콤 마을의 테일러 부부 집에 머물 때도 그런 모습을 보인다. 마을 사람들이 자신을 귀족으로 오해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그는 굳이 바로잡으려 하지 않는다. 주인의 삶을 자신의 삶으로 대치시킴으로써 뿌듯해하는 그 행위야말로 자신의 삶이 보잘 것 없다는 고백에 다름 아니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스티븐스의 삶이 성공 일색임에도 내가 이렇게 그의 삶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유는 소설의 말미에 잘 드러난다. 그는 카디널 씨를 통해 자신이 그토록 옳다고 믿던 달링턴 경이 히틀러에게 이용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건 옳고 그름에 대한 스티븐스의 판단기준이 잘못되었음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그가 이 일을 통해 자신이 품고 있는 위대한 집사라는 개념도, 거기에 맞추어 살아온 자신의 삶도, 틀렸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을 게 뻔하다. 웨이머스 바닷가에서 만난 노인의 충고도 나의 주장을 뒷받침해준다. 노인은 스티븐스에게 이제 뒤는 그만 돌아보고 좀 더 적극적인 시선으로 내 하루의 시간을 잘 활용해보라고 말한다. 이는 과거를 자랑하는 사람이야말로 낙오자라는 뜻이며, 스티븐스의 과거는 결코 자랑할 만한 것이 아니라 낙오자의 것임을 의미한다. 편지를 보낸 켄턴 양의 의도를 그가 잘못 파악한 것 또한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켄턴 양의 의도는 스티븐스의 기대와는 사뭇 달랐다. 그녀는 달링턴 홀로 돌아오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으며 불행하지도 않았다. 다소 굴곡을 겪기는 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남편을 사랑하고 지금의 삶에 행복해하고 있었다. 결국 틀린 것은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스티븐스의 시선이었던 것이다.
이 소설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웨이머스 바닷가에서 스티븐스가 노인과 대화를 나누는 대목이다. 저녁이 하루 중에 가장 좋은 때라는 노인의 말은 내 가슴에 아주 깊게 각인되었다. 이미 은퇴한 삶을 살고 있는 나에게 지금 이 순간이 인생의 황금기라는 것임을 알려주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소설이 회고형으로 써진 이유도 이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시간 순으로 스토리를 끌어가지 않고 현재의 관점에서 모든 걸 바라봄으로써 스티븐스의 삶 역시 현재의 시점이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시기라는 것을 부각시키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저녁에 스스럼없이 농담을 주고받는 것이야말로 행복이다. 이 구절 또한 잊히지 않고 계속 내 입을 맴돈다. 유머감각을 잃지 않은 노인. 그런 삶이 진정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이 아닐 수 없다. 나 또한 그 삶을 살아야 할 때임을 뼈저리게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