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째 아이 - 도리스 레싱

by 원광우


이 소설이 출판된 것은 1988년의 일이다. 대부분의 소설이 그러하지만 이 소설에서도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 잘 드러난다. 그때 난 이미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에 성공한 직장인이었다. 그 탓에 소설 속의 상황들에 대한 공감능력은 누구보다도 컸다. 물론 소설 속 공간적 배경인 영국과는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한국이라는 땅에 살고 있었지만 그 시기에도 글로벌이라는 단어가 유행어가 되다시피 한 만큼 둘 사이의 심리적 거리는 그다지 멀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서 언급되는 사회상황은 대체로 네 가지 정도로 압축할 수 있다. 산아제한, 핵가족으로의 분화, 청소년 비행범죄의 증가, 경제적 한파. 나의 과거를 돌이켜보면 이 네 가지 중에서 마지막 경제적 한파만 조금 느낌이 다를 뿐이다. 그때 우리의 경제지표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갓 대학을 졸업한 나의 입장에서 바라본 시각일지는 모르지만 대학을 졸업하면 취업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는 것이 그걸 반증한다. 만약 소설 속에 나오는 내용처럼 이때 유럽의 경제상황이 좋지 않았던 게 사실이라면 아마도 우리나라의 경우만 예외가 아니었나 생각해볼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린 올림픽이라는 특수를 누리고 있었던 게 틀림없으니까. 그걸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내 경험치와 크게 다르지 않다. 거리에 나붙어있던 표어와 슬로건들이 아직도 내 눈과 귀에 생생하게 보이고 울린다.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하나만 낳아도 지구는 만원.

주인공인 데이비드와 해리엇 부부는 이런 정책들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나선다. 그들이 행복한 가정으로 꼽는 요소는 큰 집에서 많은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여섯이든 여덟이든 아이들을 낳을 수 있는 만큼 많이 낳아 형제자매의 정을 맘껏 느끼게 해주고, 많은 가족들이 언제든 파티와 모임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단란한 가정을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데이비드는 경제적인 부담을 지기 위해 투잡도 불사하면서 열심히 일하고 해리엇은 아이들 양육에 헌신적인 삶을 산다.

모든 것이 순조롭던 이들의 계획은 다섯째 아이인 벤의 탄생을 기점으로 변화한다. 이상한 유전자를 가진 비정상아인 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가족의 행복을 위협하다 급기야 자라면서 가정을 파괴하기에 이른다. 벤의 폭력성은 아이들 간에 불안과 위화감을 조성해 불화를 야기하고, 매년 주기적으로 갖던 친인척들의 모임마저 사라지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데이비드와 해리엇의 부부관계까지 허물어버린다. 벤을 요양소로 보내는 문제가 부부를 갈등으로 이끈 것이다. 벤을 선택하는 순간 다른 네 아이는 포기하는 결과가 되고 만다는 것이 갈등의 핵심이다. 네 아이를 위해 벤을 희생할 수밖에 없다는 데이비드와 모성애를 놓지 못하는 해리엇 사이에서 생긴 가치관의 차이는 갈등의 골을 점점 깊게 한다. 이런 현상은 세상의 어떤 부부에게서라도 흔히 생길 수 있어서 그리 낯선 일은 아니다.

여기서 작가의 의도를 짐작하는 것이 가능하다. 난 그것을 일개 부부가 시대적 상황을 극복해 자신들의 행복을 개척해나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암시로 받아들였다. 책의 내용 중에 해리엇이 벤의 탄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지 고뇌하는 대목이 나온다. 신이 내린 형벌인지, 아니면 우주적 진화의 소산인지. 어느 쪽이 되었든 인간으로서 어찌 할 수 없는 문제가 인간들의 의지를 꺾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말은 산아제한과 핵가족 제도를 타파하려는 데이비드와 해리엇 부부의 노력이 한낱 허상에 불과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인간 진화에 대해서도 생각하게끔 해준다. 다윈의 진화론에 의하면 인간은 끊임없이 진화를 해왔고 그 결과 만물의 영장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벤이라는 아이는 진화의 이면에 퇴화라는 부정적 요인도 숨어있다는 걸 깨닫게 한다. 이건 인류번성의 최종 목적지가 결코 밝지 않을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벤과 같은 돌연변이가 인간이라는 종족을 위협하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말에 다름 아니니까. 돌연변이의 원인이 무엇인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작가가 구체적으로 답변을 제시하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다만 신의 형벌이나 우주 진화를 언급하면서 그것이 인간의 영역을 벗어나있다는 것만 던짐으로써 보다 인간들이 겸손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틀림없어 보인다.

마지막에 벤과 그의 무리들을 지하세계에 풀어놓았다는 점 또한 의미심장하다. 그건 벤을 통해 무리들이 생기듯 그들 무리들이 언젠가 상당한 세력으로 부상할 수 있으며, 그리 되는 순간 데이비드와 해리엇 가족들처럼 모든 가정이 해체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걸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은 온전히 우리 인간들의 몫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이야말로 인간의 쾌락과 편의에 집착해 펼치는 모든 행위에 대한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당장 우리에게 위기로 다가와 있는 자연파괴, 공해의 문제가 그러하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 펼치는 영토분쟁이나 전쟁 등이 그러하다. 내가 아닌 우리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인간이 아닌 지구나 우주 전체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거시적인 시각을 가져야한다. 자연과 인간과 신이 공존할 때, 벤과 같은 무리들과 우리 사이의 적대감이 사라지면서 공존할 수 있게 되고, 그리 되는 순간 벤의 무리들은 더 이상 우리를 위협하는 존재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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