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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킹 Oct 08. 2024

엽기 로봇 김말자 #9

코미디 판타지 소설


마요미는 날씬해                                                                                                                                                                                    

마동식 재판 당일 오전 6시.      

경부고속도로 대전 톨게이트로 진입하는 여러 대의 방탄 차량은 하이패스 구간을 통해 빠르게 지나간다. 방탄 차량 앞뒤에는 차륜형 장갑차가 동서남북으로 호위를 하고 있으며 그 뒤에는 이 들을 취재하려는 방송국 차량 수십 대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하늘에는 여러 대의 중무장한 유로콥터 타이거 헬기와 방송 장비를 탑재한 각 방송국의 플라잉 카들이 가득하다.      

플라잉 카에 탑승한 박대기 기자는 조종사 옆에서 침을 튀기가며 열나게 현장 중계를 진행하고 있다. 동추와 말자도 벌써 잠에서 깨어 TV에서 펼쳐지는 역대급 규모의 수송 작전에 빠져들고 있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드디어 전 국민 초미의 관심을 받는 증인 호송 작전의 장대한 서막이 올랐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오늘 오전 11시,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 합의부 사형환 부장판사 주도로 첫 공판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지금 제 발아래 보이는 고속도로에는 여러 대의 동일한 모습의 방탄 차량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틀림없이 저 차량 중 한 곳에 오늘 마동식 재판에 참석할 유일한 핵심 증인이 타고 있는 것으로 파악이 되고 있습니다. 정말이지 입이 바싹바싹 마르고 손에 땀이 흥건히 흘러내릴 정도로 긴장감 넘치는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통한 소식통에 의하면 이번 마동식 피고와 연루된 부패한 정치인과 국회의원, 재계 거물급 인사들의 똥줄이 바싹바싹 타들어 가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때, 저편 언덕 너머, 따가운 아침 햇살을 등에 업은 한 무리의 전투 드론이 모습을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들은 지상에 바싹 붙은 채 비행하며 천천히 은밀하게 학익진 전투 대형으로 호송 차량을 둘러싸고 있었다.      

”과연 이번에는 마꾸라지 마동식이 정당한 재판을 받고 구속수감될 수 있을지? 아니면 이번에도 증인 보호에 실패하여 대한민국을 어둠의 자식들이 지배하는 한심한 세상으로 계속 내버려 둘지? 정말이지 한 치 앞을 가늠할 수 없는 긴장감에 온몸이 사시나무 떨듯 바들바들 떨리고 대소변이 자꾸 마렵습니다. 하지만 저는 공중에 떠 있는 상태라 꾹 참고 생중계를 이어갈 참입니다. 국민 여러분! 저의 괄약근에 힘을 실어주시기를 바랍니다.“     

동추와 말자도 서로를 꼭 안은 채, 혹시라도 박대기 기자가 플라잉 카를 더럽히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간곡한 기도를 드렸다. 한편, 서울 구치소에 갇힌 마동식도 TV 중계 화면을 지켜보며 똘마니에게 은밀한 공격 암호를 보냈다.      

”마요미는 날씬해.“     

그의 신호에 따라 은밀히 숨어 있던 드론들이 일제히 공중으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이 사실을 아직 감지하지 못한 박대기 기자는 계속해서 떠들어 대고 있었다.      

”국민 여러분! AP통신, 로이터 통신, AFP, UPI 통신을 통해 방금 들어온 속보입니다. 마동식의 핵심 증인이 그의 애첩이자 스트리퍼로 활동하는 <신보라> 씨인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마동식 재판의 핵심 증인이 신보라 씨인 것으로 최종 확인되었습니다.“     

동추는 신보라라는 말에 벌떡 일어났다. 설마설마했는데 바로 그녀였다. 덩달아 놀란 말자도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고 동추를 쳐다보며 물었다.     

”서방님! 그러면 저 신보라가 그 신보라인 건가요? 서방님 첫사랑?“     

동추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녀가, 내 영원한 첫사랑이 마동식의 증인이라니!‘     

그 순간, 적의 드론이 일제히 굉음을 내며 하늘에 떠 있는 헬기와 플라잉 카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드론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관총이 하늘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마치 영화 <스타워즈>를 보는 착각에 빠지게 했다. 몇몇 가미카제 드론들은 헬기 몸통에 그냥 들이박으며 폭발하기도 했다. 방송국 플라잉 카들도 예외 없이 공격받았고 몇몇 기자들은 혼비백산하며 도망치기 바빴다.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 기자 중의 기자. 대기자 박대기는 자신의 목숨은 안중에도 없는 듯이, 괄약근을 움켜쥐고 현장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이건 전쟁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전투 드론들이, 대략 127대 정도의 드론들이 일제히 저희 경호 헬기와 방송용 차량을 급습하여 심각한 피해를 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건 마치! 네, 한국 전쟁 최대의 격전지였던 백마고지를 방불케 하는 치열한 전투가 지금 바로 하늘에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저는 비록 신변의 안전이 심하게 의심스러운 처지에 놓여있지만, 끝까지 굴복하지 않고 여러분의 눈과 귀가 되어 생생한 범죄 현장을 제 아름다운 목소리로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상황은 점점 마동식에게 유리한 쪽으로 흘러갔다. 아귀처럼 달려드는 드론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경호 헬기들이 퍼덕퍼덕하다 결국 맨땅에 박혀 화염을 내며 불타올랐다.      

이윽고 하늘을 어느 정도 정리했다고 판단한 드론은 이제 본격적으로 지상의 차량을 일제히 공격하기 시작했다. 마치 진주만 기습 공격처럼 드론은 대열을 지어 연속으로 하강하며 방탄차와 장갑차에게 기관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장갑차도 반격을 해 보지만, 드론의 숫자가 너무 많아, 마치 죽여도 죽여도 좀비처럼 달려드는 메뚜기떼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었다. 이런 상황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있는 박대기 기자는 눈물을 글썽이며 외쳤다.     

”국민 여러분! 상황이 너무 불리합니다. 저희 군의 호송 장갑차들이 하나씩 하나씩 화염에 휩싸이며 파괴되고 있습니다. 정말이지 너무나도 안타깝습니다. 그야말로 풍전등촉, 누란지위, 백척간두, 초미지급인 상황입니다. 결국 이번에도 마동식의 재판에 증인을 앉히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아! 국민 여러분!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경찰과 군 관계자가 예측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고속도로 나들목 곳곳에 숨겨두었던 예비 장갑차들이 일제히 합류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무기는 <안티 드론건>. 실탄이 아닌 전파공격으로 정밀 타격으로 드론을 하나씩 하나씩 격추하기 시작했다. 전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역전되기 시작했다. 하늘을 벌떼처럼 비행하던 드론들이 마침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마동식도 예측하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기흥 나들목 근처를 막 지났을 때였다. 수십 명의 폭주족이 검은 바이크를 몰며 천둥 같은 소리를 내며 나타났다. 그들은 빠른 속도로 장갑차 꽁무니에 달라붙어 오토바이에 탑재한 대전차포를 발사했다. 상대적으로 속도가 느린 장갑차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 광경을 하늘에서 지켜보던 박대기 기자는 다시 흐느꼈다.     

”국민 여러분! 정말이니 산 넘어 산입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더니…. 우리 아군의 전세가 삽시간에 다시 역전되고 말았습니다. 아! 신이시여! 저희를 버리시나이까!“     

그때였다.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말자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슬픔에 젖어 있는 동추의 손을 휙 낚아챘다.      

”동추야! 가자!“     

”어디를?“     

급작스러운 말자의 행동에 어안이 벙벙한 동추가 물었다.     

”어디기는? 경부고속도로지! 신보라 구하러 빨리 가자!“     

”뭐라고?     

“뭐해? 이 바보 멍청이 머저리 얼간이 방퉁이 천치 빡대가리 저능아같은 멍텅구리야! 너가 죽도록 사랑하는 여자라며? 너의 첫사랑이자 끝사랑이라고 하지 않았어? 너 목숨보다 소중하다며? 너의 영원한 로망이자 간절한 바람이며 끝없는 끌림의 종결자라며? 그럼 구해야지! 구하러 가야지! 이 무뇌충아!”     

말자는 씩씩거리며 지하 주차장으로 달렸다. 동추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그녀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지하로 내려간 말자는 스스럼없이 운전석에 올라타고 시동은 냅다 걸었다. 그리고 뒤따라온 동추를 쳐다보며 크게 외쳤다.      

“부가티야! 너만 믿는다!”      

“말자야! 아무리 그래도 이런 고물 딱지 차로 저놈들을 어떻게 따라잡아? 응?”     

“안전벨트나 매! 이 쫌생아!”     

말자는 수동변속기를 한꺼번에 7단에 넣고 악셀을 깊게 꾹 밝으며 핸들을 심하게 꺾었다. 텅 빈 주차장이 화들짝 놀란 듯 찢어지는 소리를 울부짖으며 건들거렸다.      

“렛츠 고!”     

말자의 신호탄과 함께 슈퍼카는 성난 황소처럼 쓰레기로 가득한 지하 주차장을 헤치고 삽시간에 타원형 출구를 돌아 지상으로 돌진했다. 오랜만에 눈부시게 맑고 화창한 하늘. 그 속에서 느긋하게 선탠을 즐기던 주민들이, 느닷없이 등장한 코발트 색 괴물에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그녀는 속도를 늦출 생각이 전혀 없었다. 부가티는 굉음과 함께 좁고 낡은 주택가 도로를 빛의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우씨! 더럽게 눈부시네! 야! 오동추! 글로브 박스 열고 선글라스 좀 꺼내 줘!”     

“어디?”     

오동추는 정신이 나간 듯한 표정으로 말자를 쳐다봤다.      

“이런 반푼이 같은 지진아야! 너 앞에 있는 서랍 말이야! 그거 열어봐!”     

오동추는 엄청난 차 속도에 덜덜거리는 손으로 겨우 글로브 박스를 열었다. 그러자 그 속에 있던 물건들이 한꺼번에 왕창 바닥으로 쏟아졌다. 그런데 그 물건들이 예사롭지 않았다. 선글라스뿐만 아니라 권총, 칼, 소형 도끼, 망치, 전자충격기, 화약 등등 온갖 종류의 흉기가 가득했다. 어안이 벙벙한 동추는 그녀를 바라봤다.     

“말자야! 이게 도대체 뭐니?”     

“뭐긴? 우리 아파트 내 굴러다니는 거 내가 모아 놨지. 오늘 같은 날을 위해서 말이야. 너 마음에 드는 거 있으면 하나 가져! 아! 그래! 권총이 좋겠다. 내가 그 폭주족 똥짜바리에 바싹 붙일 테니까 너가 그놈 대가리에 한 방 멋있게 날리라고! 알겠지? 서방님!”     

동추는 기가 차고 코가 막혀 말문이 탁하고 막히고 말았다. 권총은커녕 새총도 한번 안 잡아본 사람에게 사격하라니? 그것도 초스피드로 달리는 도로 한복판에서.     

아무튼 동추가 넋이 나간 상태로 조수석에서 멍하니 있는 사이 자동차는 빠르게, 쓰레기 가득한 강남대로로 접어들었다. 차 주변으로 오만 잡동사니가 흩날리기 시작했다.      

“오케이! 이제 한번 제대로 밟아 보자고잉!”     

선글라스를 폼나게 걸친 말자는 신이 난 듯 입을 헤 벌리고는 빠삐용의 마지막 대사를 크게 외쳤다.     

“이놈들아! 내가 간다!”     

말자는 상단 패널 우측에 있는 보호 장치를 풀고 붉은색 제트 터빈 엔진 버튼을 꾹 눌렀다. 그러자 강력한 제트 스트림이 테일 파이프에서 폭발적으로 분출되며 차는 거의 날 듯이 달아나기 시작했다. 동추 옆으로 다른 차들이 휙 휙휙 하며 지나가는 게, 마치 레이싱 게임 속 장면처럼 느껴졌다.      

한편, 여전히 말자의 행동에 의구심으로 가득한 동추는 조심스레 그녀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하지만 김말자, 잘 들어봐봐. 우리 차는 구닥다리라 지상으로밖에는 다닐 수 없잖아. 만약 저놈들이 플라잉으로 변신하여 날아가 버리면 우린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것밖에 안 될 텐데….”     

“어휴! 닭대가리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서방님아! 하늘을 봐봐! 하늘을!”     

그녀의 말대로 동추는 하늘을 쳐다봤다. 그곳에는 수백 대의 경찰 드론이 현장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 폭주족 놈들이 하늘로 나는 순간, 그날이 그놈들의 제삿날이야! 알겠어? 무슨 말인지? 마동식도 그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바이크를 보낸 거야! 그 나쁜 놈이 뚱땡이처럼 띠뚱띠뚱하니까 대가리 나쁜 놈으로 보이지? 아냐! 절대 그렇지 않아! 그놈이 <진실의 방> 보스로 지금까지 승승장구하면서 군림할 수 있었다는 건…. 그만큼 영악하기 이를 데 없는 놈이었기 때문이야. 그렇지 않고서는 어찌 감히 그 몸으로 미꾸라지 새끼처럼 법망을 쏙쏙 빠져나갈 수 있었겠어? 안 그래? 서방님아!”     

“그래, 그건 너 말이 맞는 거 같아…. 하지만….”     

“하지만 뭐?”     

“설령 우리가 신보라에게 접근했다고 치자…. 하지만 주변에는 완전 무장한 놈들이 에워싸고 있는데…. 우린 기껏해야 낡아 빠진 권총뿐이고…. 게다가 나는 사용할 줄도 모르는데.”     

“그렇지 그건 니말이 옳긴 옳아. 그래서 서방님아! 내 하나만 묻자. 해태월드 자이로 드롭 타 봤지?”     

“그건 왜?”     

“묻는 말에만 대답해! 이 돌대가기 띨빵아!”     

“타봤긴 타봤지. 그런데 왜?”     

“기분이 어땠어?”     

“그거야. 뭐, 그냥 싱거웠어.”     

“그렇지? 괴천 서울랜드 스카이엑스는 어땠어?”     

“그것도 뭐. 그냥 그랬어. 아무 느낌이 없었어.”     

“자이로스윙은?”     

“아씨! 인제 그만 물어봐! 다 똑같아! 그냥 싱거웠어!”     

“그거 봐! 너는 너거 아부지 오달수 판박이라니까! 내 말 이제 무슨 뜻인지 알겠지?”     

“그래서?”     

“그래서? 이 븅딱아! 너가 운전대를 잡아야 한다는 말이야!”     

그 순간, 말자는 핸들을 급히 틀더니 코스트코 양재점 입구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운전석에서 스프링처럼 튀어나와 동추에게 외쳤다.     

“야! 이제 너가 운전해! 내가 총 쏠 테니! 알겄지!”     

동추가 조수석에서 내려 운전석으로 가는 동안 말자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한 띵띵한 아줌마가 자기 트렁크에 낑낑거리며 무거운 장바구니를 싣는 것을 도와주는 척하더니 갑자기 물건을 갈취하여 냅다 달려 부가티 뒷좌석에 꾸겨 넣고는 동추에게 큰소리로 외쳤다.     

“서방님! 빨리 달려!”     

동추는 말자의 위압감에 짓눌려 악셀을 힘차게 밟았다. 그리고 말자에게 물었다.     

“저 물건들은 그냥 식료품 같은데. 저건 왜 훔친 거야?”     

말자는 자기 허벅지 저장고에서 총알을 꺼내 총에 장전하며 늠름하게 말했다.     

“특수 공작원 계명 제13장 7절. 무기가 빈약할 시, 손에 잡히는 아무 물건이나 활용하라. 알간? 소심한 서방님. 곧 저 물건들의 사용처를 명확히 인지하게 되는 순간이 도래할 것이여. 조금만 기다리라고 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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