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 판타지 소설
포스와 함께하길!
마침내 부가티는 고속도로에 접어들었다. 한동안 운전을 안 한 동추였지만 고속도로에 들어서자마자 까닭 모를 자신감이 불타올라 악셀을 꾸욱 밝으며 동시에 제트 엔진 버튼을 힘차게 눌렀다. 그리고 버스 전용차로를 이용해 제트기처럼 쭉쭉 앞으로 내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추는 한 무더기의 폭주족들에게 쫓기고 있는 방탄차를 목격하였다. 그는 아주 세련된 솜씨로 핸들을 꺾어 중앙 분리대를 뛰어넘어 하행선에서 상행선으로 갈아탔다. 그리고 어금니를 꾹 다물고 힘차게 바이크를 추적했다.
한편, 하늘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박대기 촬영팀은 느닷없이 등장한 동추의 차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국민 여러분! 증인이 탑승한 것으로 알려진 방탄차들이 한 대씩 한 대씩 폭주족들에 의해 파손되고 있는 절박한 상황이지만. 지금 여러분이 보시는 것처럼 구형 모델의 화석 연료 차 한 대가 난데없이 나타나 오토바이 꽁무니까지 따라붙었습니다. 과연 저 차는 아군인지 아니면 적군인지 자못 궁금하기 짝이 없습니다. 아 아 아 방금 정통한 소식통에 의하면 저 차량을 조회해 본 결과, 저 차량의 소유주는 전설의 카레이서인 오달수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야말로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오달수 프로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지가 이미 수십 년째인데 저렇게 나타나다니. 마치 영화 <백투더퓨쳐>에 등장하는 <드로리안> 같습니다.”
이윽고 맨 뒤에 달리고 있는 바이크를 따라잡은 말자는 큰소리로 외쳤다.
“서방님! 오토바이 옆에 바싹 붙이세요!”
동추가 능숙하게 바이크 옆으로 다가가자, 말자는 뒷좌석으로 가더니 쇼핑 비닐 속을 헤치고 오뚜기 토마토케첩을 하나 집어 들더니 창문을 반쯤 열고 바이크 라이더에게 바로 뿌려 버렸다. 그러자 녀석은 순간 앞이 잘 보이지 않는지 핸들을 몇 번 틀다가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몸이 공중으로 붕 떠드니, 마치 아사다 마오의 트리플 악셀처럼 데굴데굴 굴러 도로 바닥에 철퍼덕 떨어졌다.
“앗싸! 한 놈 잡고!”
동추는 말자의 의도를 파악하고는 다른 라이더에게도 차를 살살 붙였다. 말자는 이번에는 녀석의 헬멧에 밀가루 한 봉지를 냅다 쏟아부었다. 그놈도 마찬가지로 비실비실하다가 중앙 분리대를 멋있게 박고는, 마치 양학선 도마의 스카라트리플처럼 절묘한 비틀기로 공중에서 뱅글뱅글 돌더니 바닥에 착지와 동시에 뒤따라오던 트럭에 그만 깔리고 말았다.
“앗싸! 두 놈 잡고!”
세 번째 놈은 국산 콩 100% 콩기름으로, 네 번째는 아깝지만, 참기름으로, 다섯 번째는 뻥뚫어로, 여섯 번째는 몽고 간장으로, 일곱 번째는 한우 갈비 세트로, 여덟 번째는 파인애플로 대가리를 맞추어 쓰러뜨렸다.
이 장면을 박대기 촬영 팀은 생생한 고화질 화면으로 실시간 중계를 이어갔고 이를 지켜보던 전 국민은 뜨거운 환호성으로 화답했다. 하지만 말자의 공격 패턴을 파악한 폭주족들은 부가티와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점점 에워싸기 시작했다. 더 이상 식료품으로 저들을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한 말자는 비장의 무기 <데린저 피스톨>을 양손에 부여잡고 동추에게 외쳤다.
“뚜껑 열어!”
“뚜껑? 무슨 뚜껑?”
동추는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지 어리둥절한 채 말자를 슬쩍 쳐다봤다.
“이 얼간이 천치 숙맥 멍텅구리야! 부가티 지붕 열란 말이야!”
“아하! 오키!”
슈퍼카 지붕이 열림과 동시에 말자는 영화 <원티드>에서 <안졸리나 졸려>가 하던 식으로 지붕 위에 납작하게 누운 채 사방에서 달려드는 폭주족들을 한발 한발 저격하며 쓰러트리기 시작했다.
“앗싸! 미션 클리어! 서방님 이제 뚜껑 닫아!”
“오키!”
말자와 동추는 환상의 콤비를 보여주며 적들을 바스러뜨렸다. 이에 놀란 폭주족들은 속도를 줄이며 멀찌감치 떨어진 채 졸졸 따라왔다.
“서방님! 이제 방탄차에 가까이 붙이세요. 신보라가 어느 차에 탔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알았당게.”
동추는 차를 가속하며 일렬로 달아나고 있는 방탄차 옆을 스치며 차 내부를 들여다보려고 하였다. 하지만 검은 선탠으로 가려진 내부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우씨! 말자야! 차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아!”
하지만 말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기 엉덩이 보관소에서 선글라스를 하나 꺼내 척 걸쳤다.
“서방님! 걱정 말고 눈 똑바로 뜨고 운전만 잘하세요. 저에게는 소수의 고급 첩보원들만 보유한 특수 투시 안경이 있으니깐요. 하하하.”
그녀는 넉 대의 방탄 차량을 쭉 훑어보더니 이윽고 외쳤다.
“저깁니다! 서방님! 2번째 차량! 차량 번호 <마 4469>. 저기에 신보라가 있어요!”
하지만 말자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2대의 방탄차가 화염에 휩싸이며 그 자리에서 날아가 버렸다. 말자가 뒤 돌아보니 할라데이비슨 스포스터 울트라 급 바이크를 탄 폭주족 3명이 대전차 유도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었다.
“우씨! 존간나 새끼들! 유도 미사일을 쏘고 있네!”
말자는 동추에게 있는 힘껏 크게 외쳤다.
“서방님! 신보라 차 뒤에 바싹 붙이세요. 안 그러면 당합니다!”
하지만 동추가 운전대를 틀어 신보라가 탄 방탄차 뒤에 붙이려는 순간, 방탄차는 '펑' 하는 소리와 함께 공중으로 날아간 뒤, 도로 옆 갈대숲으로 드러누운 채 미끄러져 들어가기 시작했다. 동추도 급히 운전대를 틀어 그 방탄차를 따라 숲으로 들어갔다. 짧은 숲길이 끝나자 내리막길이었다. 신보라를 태운 방탄차는 뒤집힌 채, 속절없이 미끄러져 내려갔다. 동추도 그 뒤를 따라 내려갔다.
마침내 방탄차가 물가에 멈추었다. 동추의 차도 방탄차 옆에 멈추었다. 동추는 삽시간에 운전석에서 내려 신보라를 구하기 위해 뒤집힌 방탄차의 창을 부수고 보라를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말자가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두 명의 폭주족이 바로 코앞까지 따라오고 있었다. 말자는 가슴 저장고에서 진짜 비장의 무기 <제다이 광선검>을 꺼냈다. 그리고 외쳤다.
“포스와 함께하길!”
말자는 달려드는 바이크를 광선검으로 삽시간에 휙휙 하며 두 동강이 내 버렸다. 이 광경을 본 라이더들은 걸음아 날 살리라 하며 도망쳤다. 말자는 광선검을 거두고,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고 판단한 뒤, 서둘러 부가티 운전석에 뛰어올라 악셀을 꾸욱 밟았다.
다시 고속도로에 들어선 부가티. 말자는 전속력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를 쫓는 한 무리의 바이크 라이더들. 그들은 장착한 온갖 종류의 무기로 달아나는 슈퍼카에게 퍼붓기 시작했다. 하지만 말자는 융단처럼 쏟아지는 폭격 속에서도 용케 싹싹싹 미꾸라지처럼 잘 피하며 도로를 달렸다.
마침내 고속도로를 지나 도시로 접어든 말자와 라이더들. 그들은 도심 한복판에서도 쫓고 쫓기는 물고 물리는 치열한 공방을 이어 나갔다.
그런데 아뿔싸! 도시로 점점 더 깊어 들어갈수록 늘어나는 차량 행렬. 결국 부가티는 서울중앙지방법원을 목전에 둔 사거리에서 그만 갇히고 말았다. 하지만 라이더들은 차들 사이를 쏙쏙 빠져나오며 점점 거리를 좁혀 오더니 마침내 회심의 유도 미사일 발사. 결국 부가티는 화염에 휩싸이고 말았다. 말자는 가까스로 차 문을 열고 나왔지만 온몸이 불에 탄 상태로, 앙상한 철골 뼈대가 드러난 채, 몇 걸음 걷지 못하고 그만 풀썩 쓰러졌다. 이 광경을 지켜본 수많은 행인은 망연자실하며 참혹한 말자의 모습에 안타까워하고 마동식 졸개들의 행패에 분개했다.
*************
오전 11시. 마침내 재판이 시작되었다. 이미 모든 소식을 접한 검사팀은 허탈한 상태로 고개를 떨구었고, 피고 마동식 또한 소식을 전달받았으므로, 거만한 자세로 히죽히죽 웃으며, 마치 법정에 소풍 나온 듯 즐거워했다. 방청석 또한 초상집 분위기이고 판사도 이 상황이 무척 싫은지 볼멘 목소리로 재판을 능기적능기적 진행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홀연히 한 줄기 바람이 문틈을 비집고 쉭쉭 거리며 슬픈 방청객을 애무하던 찰나, 문득 재판정의 문이 활짝 열리면서, 눈 부신 햇살을 등에 업은, 동추의 부축을 받은 신보라가 절뚝거리며 걸어들어오는 게 아니겠는가! 그 장면을 바라보던 모든 판사, 검사, 변호사, 마동식, 마동식 졸개, 일반인, 기자, 속기사, 진행요원들은 화들짝 놀라며 이게 꿈인지 생신지 자신의 볼을 꼬집기 시작했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신보라를 탄 방탄 차량이 전복되고, 그녀를 구하기 위해 동추가 달려간 사이, 말자는 적들을 유인하기 위해 혼자 슈퍼카를 몰았다. 그리고 말자가 적들에게 피격당하여 쓰러질 즈음, 괄약근의 압박을 도저히 견디지 못한 박대기 기자는 갈대가 심하게 우거진 풀숲에 은밀히 착륙하여, 쾌변이 선사하는 복잡미묘한 쾌락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그때, 그의 부끄러운 자세를 지켜보며 가까이 접근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동추와 보라였다. 화들짝 놀란 박대기 기자는 뒤처리도 잊은 채, 바지를 잽싸게 올리고 동추를 도와 보라를 플라잉 카에 태우고 빛의 속도로 서울중앙지방법원까지 달려 온 것이었다.
이 놀랍고 반가운 소식을 접한 백성들은 모두 거리로 뛰쳐나와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서로 부둥켜안고 감격의 눈물을 줄줄 흘렸다.
*************
신보라의 증언에 따라 마동식과 연루된 정치인, 언론인, 고위직 간부들이 줄줄이 경찰의 포승줄에 묶여 끌려 나오고 마동식 졸개들은 소리 소문 없이 모두 해외로 빤스런했다. 한편 오동추는 무척 바쁜 일상을 영위하기 시작했다. 그는 재성 병원에 입원한 신보라를 돌보고, 길 건너 희찬 빌딩 1층, 단무지 로봇 재활 센터에 입원한 말자를 간호하고, 맞은편 오거리 뒤쪽, 우성 상가 내 스토크 직영 <준호 클래식 카 수리 센터>에 맡겨진 부가티도 알아봐야 했다. 그는 시계 붕알처럼 열심히 그 세 곳을 들락날락하면서도 동추의 얼굴을 알아본 수많은 행인에게 인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2주가 눈 깜짝할 사이 흐르고 퇴원한 신보라, 김말자는 동추가 모는 부가티를 타고 흥민빌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해 보니 전세계에서 온 기자들과 파파라치 들이 북새통을 이루었고 이미 성인이 다 된 신보라의 동생들도 오래간만에 모두 모여, 주민들과 함께 연일 축제가 펼쳐졌다.
한편, 침대는, 여전히 다리에 깁스를 한 신보라와 새 스킨을 입힌 말자가, 아직 접착제가 굳지 않았다는 핑계로 차지하여, 동추는 할 수 없이 소파 신세를 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동추는 너무 행복해서 늘 헤죽거리며 지냈다.
말자의 스킨은 단무지 회장의 통 큰 선심으로 업그레이드되어 <전지은 19> 모델로 바뀌었다. 말자는 팔딱팔딱하고 낭랑한 열아홉 살의 전지은으로 바뀐 자기 얼굴이 무척 마음에 들었는지 허구한 날 거울만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동추가 보기에는, 육덕진 몸매와 부조화를 이룰 뿐만 아니라 그동안 44살에 익숙해 있다 보니 그다지 친숙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렇게 멋있고 보람으로 가득한 날들이 며칠 더 흐른 어느 날 아침, 동추는 소파에서 일어나 공주님 방으로 몰래 들어갔다. 그런데 말자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말자를 찾아 화장실 문을 똑똑 두드리며 외쳤다.
“말자야! 너 여기 있니?”
그러다 동추는 문득 깨달았다.
‘아 참! 그렇지! 말자는 화장실 사용 안 하지!’
동추는 집 구석구석을 뒤지며 말자를 찾았다. 하지만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말자, 도대체 어디를 간 거야? 이제 조금 살만하니까 돌아다니기 시작하는가베! 하여튼 말 하나는 되게 안 들어!’
그런데 어디선가 ‘카떵카떵’하며 메신저 알람이 울렸다. 열어보니 말자의 음성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
안녕! 멋있고 세련된 우리 서방님! 아 아 아니 우리 주인님!
눈 뜨자마자 짬짜면부터 찾는 먹방 돼지님! 헤헤헤…. 맞지? 걱정하지 마! 내가 이럴 줄 알고 짬뽕 국물이랑 짜장면 소스 한 솥 끓여 놓았으니 면만 삶아, 비벼 먹기만 하셔! 그리고 우리 보라 양 좋아하는 매콤한 닭발 소스도 준비해 두었으니 닭발만 <쿵심>에서 주문해서 버무려 먹으면 돼! 알겄지?
나는 지금 남북통일 고속도로를 따라 신나게 북으로 가는 중이야. 물론 우리 귀요미 부가티를 타고 가는 거지. 주인님께는 살짝 미안하지만 당분간 내가 장기 렌터해서 끌고 다닐께 헤헤헤. 하지만 그냥 탄다는 거는 절대 아냐!
우리 집 천장에 보면 내가 표시해 둔 게 보일 거야. 그곳에 찻값을 넣어 두었지. 그 돈이 어디서 난 거냐고? 걱정하지 마! 부정한 돈은 아니니까. 사실 우리 동추님이 장이수에게 착복 당한 돈과 내가 우리 이반 헌트 주인님에게서 물려받은 금액이야. 대충 30만 유로, 40만 달러, 10만 엔, 4만 파운드, 2만 프랑, 7천 피지 달러, 9만 페소, 18만 동쯤 될 거야. 그 정도 액수면 요즈음 정부 부동산 투기 억제 정책에 따라 급매물로 나온 쌍문동 타워 펠리컨 32평형 정도는 구매 가능할 거야. 그러니 아무쪼록 우리 보라 아가씨와 알콩달콩 아들딸 낳고 샘나게 잘 살기 바래!
나는 어디 가냐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이 아니라 <버려진 로봇들의 도시> 블라디로보스틱으로 가려고 해! 이제 주인 섬기는 짓은 그만하려고! 나도 이제 핸섬한 로봇 남친 만나서 사랑도 하고 아들딸 낳아서 멋찌게 한번 살아봐야지! 그렇지?
그리고 혹시 길에서나 공공 화장실에서 장이수 만나면 절대로 내가 떠났다는 이야기는 하지 마! 그거 하나만 지키면 만사형통! 알겄지?
얼빵하지만 그래도 매력남 우리 동추 주인님! 그동안 무척 행복했어! 고맙고 잊지 않을게!
아! 차차차차! 우씨! 이놈의 슈퍼카는 다 좋은데 기름을 너무 잡아먹어! 햐! 안 되겠다!
미안해 주인님! 근처 폐업된 주유소 찾으러 가야겠다! 안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