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대표의 좌충우돌 사업 이야기 - 1월 28일 화요일
사업을 하다 보니 평소에 자주 가지 못했던, 아니 거의 가본 적이 없는 곳들을 자주 가게 된다. 부산이 그렇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 까지 부산에 가본 게 고작 세 번 정도에 불과했는데, 사업을 시작하고 나니 1년에 다섯 번은 넘게 간다. 장르도 다양하다. 공연을 하러 가기도 하고, 답사를 하러 가기도 하고, 미팅을 하러 가기도 한다. 오늘은 미팅이다. 스케일이 커졌다. 부산에서 미팅이라니.
진주에 있는 동생네서 신세를 졌다. 당일 새벽에 KTX를 타고 내려갈까도 했지만 조카들이 너무 보고 싶었고, 미팅 당일에 여유롭게 움직이고 싶었다. 마침 설 연휴랑 이어지다보니 연휴 마지막 날인 월요일에 내려와서 미팅 다음 날인 수요일에 서울로 돌아가는 일정으로 내려왔다. 조카들도 실컷 보고 좋네. 오늘 미팅 후에는 조카 둘 데리러 어린이집에 가기로 했다. 설레는 일정의 연속이구만.
어제 내려올 때는 비가 쏟아져서 힘들었는데 부산가는 날 하늘은 맑음이다.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의 어우러짐이 꽤나 아름답다. 1시간 약간 넘는 드라이브가 퍽 즐겁다. 음악도 좋고, 하늘도 좋고, 미팅도 기대되고 말이다.
뻥뻥 뚫린 남해고속도로를 지나 부산에 들어서니 확실히 차들이 많아진다. 대한민국 제2의 도시답다. 미팅 장소는 부산대 앞 한 센터. 근처의 공영주차장에 차를 대고 들어가니 오늘의 용사들이 다 모여 있었다. 아. 나 늦은 거 아니다. 10분 일찍 도착해서 미팅을 주최하시는 대표님과 인사도 하고 커피도 주문했는데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이곳에 주차를 할 수 없으니 빼달라는 전화라 부랴부랴 차를 다른 곳에 주차하고 오느라 제일 마지막에 들어온 것이다.
오늘의 용사는 여섯 명. 예전에 한 번 이야기한 적 있는데, 오늘의 미팅 주제는 공동의 목표를 위한 협동조합 창설이다. 그래서 협동조합에 대해 공부도 할 겸 관련 컨설팅 회사의 직원에게 협동조합에 대한 강의도 듣고 질의응답도 하는 시간을 가지고, 협동조합을 만드는 게 좋을지에 대한, 만든다면 어떤 식으로 진행할 건지에 대한 나름 큰 목표를 가진 미팅이다.
두 시간 여의 강의와 질의응답은 정말 알찼다. 막연하게 알고 있던 협동조합이라던 뜬구름이 두 손 가득 잡힐 정도가 되었다. 우리가 처음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점들도 있어서 망설이게 하는 지점도 있었지만 그런 것들을 알려준 것도 어떻게 보면 목표 달성 아닌가? 무엇보다 가장 큰 배운 점은 협동조합을 창설할 때 창설만으로는 국가 보조금이나 혜택이 없다는 것, 그리고 창설 시 조합원들이 갖고 있는 경력을 합칠 순 없다는 것, 결국 협동조합은 신생아라는 것. 그 것 말고도 협동조합의 세계에 대해 참 많이 배웠다. 재밌었다.
강의가 끝나고 열띤 토론이 진행됐다. 협동조합을 만드는 게 나을지 만들지 않는 게 좋을지에 대한 원론적 이야기부터 시작된 회의는 2시간을 훌쩍 넘겨 끝났다. 결론은 아직 비밀. 하지만 주사위는 던져졌다. 모두와 악수를 나누고 센터를 나왔다.
근처 스타벅스에서 돌아갈 연료(연료라고 쓰고 카페인이라 말한다)를 사고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 4시간의 미팅에 진이 빠진 나머지 뇌 말고 배도 연료를 달라고 아우성이다. 주차장에 갔다가 다시 내려와 프레즐 하나 사고 출발. 해가 조금 길어졌는지 아직은 밝다.
왔던 길을 그대로 돌아간다. 남해고속도로를 지나가다보니 한 번 지나갔다고 표지판이며 마을이며 산이며 정겹다. 하늘은 여전히 아름답다. 아니, 더 아름답다. 파란색과 하얀색 투 톤이었던 하늘이 마치 팔레트의 모든 물감에 물을 뿌린 듯 다양하고 오묘한 색을 연출하고 있다. 저 멀리 지는 해는 화룡점정. 돌아가는 길이 꽤나 즐겁다.
중간에 지수초등학교에 들를까 했다. 삼성의 고 이병철 회장, 금성(현 LG/GS)의 고 구인회 회장, 효성의 고 조홍제 회장 이 세 우리나라 경제 거두가 동창으로 인연을 맺은 학교라 사업을 시작하고 한 번 들른 적이 있는데, 오늘 또 한 번 들러 그 기운을 받아볼까 했다. 하지만 조카들과의 약속이 더 중요하다. 어릴 때 약속일수록 더 잘 지켜야 된다고 하지 않는가? 지수IC에서 빠지려는 마음을 부여잡고 진주로 향했다.
P.S) 조카들은 정말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젯밤 삼촌이 뱉은 작은 말을 하루 종일 기억하고 심지어 어린이집 선생님들과 친구들에게 동네방네 소문을 냈다고 한다. “오늘 삼촌이 데리러 온다고 했어.” 나를 보자마자 흥분해서 달려드는 조카들. 지수IC에서 빠지지 않길 잘했다. 고사리 손 꼭 잡고 어린이집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