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함께 일한다는 것

자기소개 6

by 어거스트

(전편에서 이어짐)


자기소개 프레젠테이션 시간의 절반이 지났다. 지금까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개인적인 속내를 드려내며 "친하게 지냅시다"는 신호를 보냈다면, 이제 슬슬 조직의 리더로서 "그런데 이게 내 방식입니다"를 보여줄 차례다.


어려운 얘기다.


지난 20여 년간 내 리더십 스타일은 직원, 동료, 상사의 피드백, 그리고 나의 자기 성찰과 버무려져 계속 변화해 왔다. 진화하는 중 (현재 진행형)이라고 하는 게 더 맞겠다.


10여 년 전 떠난 한국에서 내 마지막 직급은 부장이었는데, 딱히 리더십에 대한 구체적인 피드백을 받았던 기억이 없다. 그보다는 기업에서 관리자급 여성들에게 심드렁하게 붙여버리는 "쎄다. 독하다."는 카테고리에 나도 뭉뚱그려 묶여있었던 것 같다. 불성실한 저성과 직원 (low performer)을 내보내야 했을 때, 회사의 윤리 규범을 어긴 직원에게 매운 질책을 해야 했을 때에, 리더로서 어려운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공감과 응원보다는 "한 성깔 한다"는 뒷말을 더 많이 듣곤 했다.


리더십이라는 개념에 대해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기 시작한 건 네덜란드에 오고 나서부터였다.


내 첫 임무는 아시아 지역의 커머셜 디렉터로 중국, 일본, 그리고 싱가포르 APAC (아시아태평양) 오피스의 사업 성과를 관리하는 일이었다.

어느 날 나의 상사가 '싱가포르의 루다 (루드밀라의 애칭, 러시아 여성, APAC 마케팅 디렉터)랑 통화 좀 해봐. 뭘 오해한 모양이야.'라고 귀띔을 했다. 싱가포르 오피스의 친구에게 물어보니, 루다가 나를 두고 '불합리한 기준을 몰아붙이는 전제적 군주 스타일'이라며 불평이 대단하단다.

나는 바로 루다에게 전화를 걸었다. "루다, 네가 나를 불합리한 독재자로 생각한다는 피드백을 받았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은데 말해줄래?"

나의 '대놓고 질문하기'에 루다는 어버버 하면서 '아.. 내가 지금 치과라서 통화를 길게 못해. 오해야 오해. 직원들이 일이 많아서 힘들어한다는 얘기가 와전된 것 같아.' 하면서 꼬리를 내렸지만,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당시 싱가포르에서 APAC 업무 3년 반을 하고 네덜란드 본사로 온 터라, 그 지역의 소비자, 고객사, 문제점과 기회에 대해 빠꼼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했) 었다. 그런 마음으로 많은 '지시'를 내렸고, '빨리빨리'의 한국 마인드로 업무 보고가 제때 오지 않으면 직원들을 채근하곤 했다.


네덜란드에서 4년 정도 자리를 잡고, 규모가 더 큰 현재 사업부로 옮겨와서 새 팀을 맡았을 때의 일이다.

그 해 신제품들의 매출 성과를 리뷰하고, 문제 해결안에 대한 보고를 받는 중이었는데, 내용이 두루뭉수리했다. 함께 보고를 준비한 내 직속 팀원들과 프로덕트 마케팅팀에게 나는 몇 가지 논리적인 지적을 하고 해결안을 구체화할 것을 당부했다.

그 미팅 이후에 내 팀원인 세르칸 (터키인, 시니어 디렉터)이 나를 찾아왔다. "원숙, 우리가 같은 사업부에서 일하고 있지만 프로덕트 팀과 우리는 다른 팀이야. 다른 팀원 앞에서 우리를 지적하는 일은 피해 줬으면 해. 새 팀장(나)과 팀원들의 결속이 약하다는 루머가 돌 수 있거든."


지시하기와 지적하기.

돌이켜보면 꽤나 오랫동안 지시와 지적하는 일이 팀장, 임원, 경영진으로서 내가 해야 하는 일인 줄 알고 살았다. 어리석었다.

지시와 지적은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알고, 내가 생각하는 것이 옳다는 편협한 마음에서 생겨난다. 지시와 지적을 잘하는 매니저를 둔 팀은 (1) 일을 빨리 처리하고 실수가 적지만, (2) 그 매니저의 생각과 능력을 넘어서는 성과를 내지 못한다. 매니저 본인이 자기 팀의 한계가 되니, 팀원들의 인력과 재능이 낭비된다.


수년간의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두 가지를 명심하려 애쓰고 있다.

첫째, 쉼 없이 변하는 비즈니스 환경에서 맞고 틀린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상황에 맞는 우선순위를 잘 정해서 힘을 모아 실행하는 것이다.

둘째, 모든 사람은 좋은 의도를 가지고 일한다. 성과가 부족할지라도 좋은 의도로 애쓴 노력은 반드시 알아채고 인정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다시 도전할 힘을 얻는다.


이런 마음으로 "나는 여러분과 이렇게 일하려고 합니다"는 슬라이드를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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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로를 보듬어주면서 함께 일하기.

'전 세계에서 수백 명의 직원들이 우리 사업부의 성장을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개개인의 성과 달성보다 더 큰 목표를 세우고 함께 갑시다.'

그러고 나서 현재 최고 경영진과 논의 중인 몇 가지 미래 전략과 가능성에 대해 살짝 언급했다. 오오.. 눈빛들이 반짝반짝하다.


2. 상황과 맥락을 이해하고 (일일이 묻지 않고도) 잘 알아서 하기. 딱 맞는 우리말을 못 찼겠다. Contextual Intelligence.

예전에 동료들과 자조적인 농담을 하곤 했다. 회사는 똑똑한 애들 뽑아다 놓고 바보 만드는 곳이라고.

글로벌 대기업에서 오래 일하다 보니, 부서 간, 혹은 조직의 상하부 간의 정보와 소통 부재로 벌어지는 각종 삽질과 비효율이 상당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소통의 양을 늘리고, 신뢰를 바탕으로 정보를 흐르게 하고, 동시에 개개인의 의사 결정 권한을 키우겠다'라고 했다. 일일이 서로 확인하고 사전 승인받지 않고도 일선에서 신속히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마음. 사실 말이 쉽지 실천이 어려운 것들이다. 팀장급 직원들이 눈을 이리저리 굴리고 큰 반응이 없다. 문화와 행동을 바꾸는 건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인내심을 가지고 천천히 보여주면서 설득해 나갈 수 밖에.


3. 감사하기.

애쓰고 노력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고, 서로에게 좋은 쓰임이 되는 사람들이 되자고 했다.

나 또한 여러분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 많은 땡큐 THANK YOU를 받고 싶다고 했다. 얼굴들에 잔잔한 미소가 번진다. 이제야 좀 마음이 편안하다.


이제 자기소개가 막바지로 향해 간다. Two more slides to go!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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