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가 절대로 하면 안 되는 것

by 어거스트


아직 한참 어리고 기운이 넘쳐 반짝거리던 이십 대 후반 혹은 삼십 대 초반.
소비자 포커스 그룹(한쪽에서만 보이는 거울 뒤에서 소비자 대화를 듣고 분석하는 일)을 마치고 에이전시를 나서던 나를 보고 선배가 뜬금없이 말했다.

“너는 스페셜리스트는 될 수 있겠지만, 제너럴리스트는 못 될 것 같아.”


뭔 개소리야.


아무튼 그 선배는 나보다 훨씬 먼저 회사를 떠났고, 그때 왜 그런 소리를 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스페셜리스트(내 전문 분야에서 높은 실력을 쌓는 사람)가 되는 것이, 좋은 리더(다양한 성격과 능력의 사람들을 품는 사람)를 자동으로 만들어주는 건 아니라는 걸 깨달을 때마다 문득 그 선배의 말이 떠오른다.


나는 남들 평균 대비 꽤 열심히 일했고, 맡은 일의 성과를 내는 일이 나를 훌륭한 직업인으로 만들어줄 거라고 믿었다.
능력을 보여주면 사람도 따라오겠지.
그런 생각으로 살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정확한 타이밍은 모르겠다—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리더는 자리가 주는 역할이 아니라, 내가 해내야 하는 직업이구나.”


그리고 리더라는 직업인으로서 절대로 하면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깨달았다.

사람의 기(氣)를 꺾는 일.




몇 년 전 GM(제너럴 매니저, 사업부 총책임자)이 되었을 때 루씨라는 새 비서가 배정됐다.
세상에 없이 상냥하지만,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일하는 기술은 조금 서툰…


네덜란드와 중국에 나뉘어 있는 여러 팀을 맡게 되고, 연구소, 디자인실, 전 세계 지사들과 소통을 조율하기 위해 시시각각 달라지는 일정을 관리해야 했는데, 그녀에게는 정말 난이도가 높았다.
결과는… 매일같이 일정이 꼬였다.
급하고 중요한 회의를 누락시키고, 급하지 않은 실무자 회의를 우선순위로 올리고, 하루를 30분씩 쪼개 17개의 회의를 배정하기도 했다. 정말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다.


루씨가 내 일정을 망치지 않도록 루씨를 관리하는 일이 내 일과에 추가되어 지쳐버린 어느 날, 무심코 루씨에게 말했다. “I don't feel like I have an assistant.” (나한테 비서가 있긴 한 건지 모르겠어.)


내 나름은 엉망진창인 일정에 대해 대놓고 꾸짖기보다는 기분을 돌려 말한 건데, 그 말이 비수가 되어 루씨 마음에 꽂혔다. (뒤늦게 알게 되었지만)


서로 손발이 맞아지고 조금 친해져서 가끔 단둘이 점심을 먹던 어느 날, 루씨가 머뭇거리다 그 이야기를 꺼냈다.

“그때 네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 진심이 아니라는 건 알았지만… 나라는 사람의 존재가 부정당한 것 같아서 정말 마음이 아팠어.”

그 순간 멍해졌다. 정말 미안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그 이후에도 여러 사람에게 크고 작은 실수를 했을테고, 나 또한 큰 조직의 중간에서 동료나 상사들의 말에 상처받은 날도 많았다.

그러면서 아주 분명한 걸 배우게 됐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사람의 기를 꺾어서는 안 된다.


일을 향한 실망이 사람에 대한 실망처럼 들리게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아무리 야망 있고 똑똑하고 파이팅 넘치는 사람도 기가 꺾이는 순간 다른 사람이 된다.
그리고 한 번 꺾인 기는 회복이 쉽지 않다. “괜찮아, 다시 하자”라고 백 번 말해도 잘 안 돌아온다.


그래서 나는 조금 늦게 배운 진실 하나를 잡고 산다.

일에 대한 평가와 사람에 대한 평가를 철저히 분리하는 것.
- 일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사람에 대해서는 오직 긍정만.


그래야 팀원들이 자기 일에 미래를 걸 수 있는 믿음을 잃지 않는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이렇게 사람의 기가 살아 있을 때 팀의 실행 속도와 성과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조직은 결국 ‘기’로 움직인다는 걸 몇 년 동안 뼈저리게 배웠다.


그리고 또 하나.

다른 사람의 기를 살리다 보면 리더는 진이 빠진다.

하나의 위기를 넘기면 다음 문제, 다음 회의, 다음 위기가 줄줄이 대기 중이다.
이렇게 달리다 보면 내가 해낸 게 뭔지도 모르고, 내가 어디까지 왔는지도 모르겠다.
내 기운이 고갈되니 남의 기를 살릴 에너지도 없어진다.


그래서 요즘은 나에게도 말해준다.

“야, 너도 잘하고 있다.”
내 리더는 나니까, 내 기운은 내가 챙겨야 한다.




현실적으로 최근에 마음을 고쳐먹은 게 있다. 매일 사무실에 가자.

우리 회사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고, 일주일에 3일 출근만 하면 되는 하이브리드 방식이다.
게다가 내 직속 보스는 파리에 있어서 말 그대로 완전 자율 출근이 가능하다.


근데도 나는 매일 가려고 애쓴다.
화상회의만 있는 날도, 몸이 물주머니 같은 날도 그냥 끙 하고 일어나서 출근한다.


왜냐면 “내가 너희 옆에 있다”는 신호가 팀 분위기를 살린다는 걸 아주 분명히 느끼기 때문이다.

아침에 돌아다니며 “Good morning” 하고 눈 마주쳐주는 일, 안부 묻고 어깨 한 번 토닥여주는 일.
이런 작은 존재감이 누군가의 기를 살린다.


물론 회사 오기 싫어하는 친구들은… 뭘 해도 싫어할 테니까 그냥 둔다.


가끔 허탈할 때도 있다.

지난 2주 연속으로 금요일에 출근하지 못 했다. 한 번은 출장, 한 번은 아파서 재택.


그러고 어제 금요일—드디어 출근했는데…

정말 아무도. 단 한 명도. 없었다.


오후에 일대일 면담 예정이던 직원이 루씨에게서 “원숙 오늘 출근했어”라는 말을 듣고는 부랴부랴 회사에 달려왔다.
하면서 말한다. “아니… 다른 애들이 이제 원숙은 금요일엔 안 나온다고 해서…”


… 요놈들아.



아무튼, 요즘 이렇게 산다.


리더라는 직업은 결국 사람의 기도 살리고, 내 기도 살리는 일 같다.

나, 화이팅.




(대문 이미지는 최근에 팀과의 워크숍에서 찍은 사진인데 ChatGPT를 써서 지브리스타일로 바꿔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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