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 년 전 유럽 본사로 처음 발령받았을 때다.
새로운 환경에서 내가 붙잡고 있던 건 딱 하나, '일'이었다.
전략 짜고, 회의하고, 숫자 보고…
한국에서 하던 방식 그대로 성과 중심으로 달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상사가 회의가 끝난 뒤 조용히 말했다.
“원숙, 그… 똑바로 좀 앉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아니, 지금 내가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런 말을 듣는다고?
아니었다. 정말로 내 자세 얘기였다.
그때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일을 잘하면 되지, 의자에 어떻게 앉든 그게 왜 중요하지…? 여기가 뭐 유치원이심?”
깨닮음을 늘 그렇듯 뒤늦게 와서 뒤통수를 세게 때린다.
지난여름, 뉴욕에서의 신제품 론칭 준비 때문에 미디어 트레이닝을 받았다.
외부에서 고용한 PR 전문가 로버트가 즉석 인터뷰를 하고 그걸 촬영해 내게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첫 촬영이 끝나자 그는 말했다.
“원숙, 메시지는 정말 좋습니다. 그런데… 아주 특이한 습관이 있어요.”
그리고 그는 한 장면에서 영상을 멈추었다.
“당신 회사의 가격 정책은 소비자를 차별하는 것 아닙니까?
너무 높게 책정되어 있습니다.”
꽤 공격적이고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이럴 때 리더가 취해야 할 태도는 명확하다.
놉! 하고 단호하게 응수한 뒤, 차분하고 단단하게 근거를 설명하는 것.
그런데 화면 속 나는…
그 질문을 듣는 내내 아주 성실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오 마이 갓.
카메라 속 나의 모습은 거의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네, 맞습니다. 저희가 차별합니다.”
로버트가 나를 보며 말했다.
“원숙, 이 끄덕임 하나면 당신의 전체 메시지가 뒤집힐 수 있어요.”
그때 떠올랐다.
평소 인도인 친구들과 동료들이 말할 때 긍정의 표현으로 고개를 좌우로 살랑살랑 흔드는 모습을
귀엽다고 웃으며 보곤 했다.
나는 방향만 다를 뿐이었다. 그들은 좌우, 나는 위아래.
나는 고개를 상하로 아주 성실하게 반복적으로 끄덕이고 있었다.
한국에서 몸에 밴 '경청의 미덕'이었다.
내 의도는 ‘듣고 있어요’였지만, 카메라 - 그리고 사람들은 - 그걸 ‘동의합니다’로 받아들였다.
그 순간 배웠다.
바디랭귀지는 리더십의 일부다.
2차, 3차 트레이닝으로 갈수록 머릿속은 더 복잡해졌다.
까다로운 질문에 말려들어가지 않기 위해 정신줄을 바짝 붙잡으면서 동시에 '고개 고정! 고정!' 하고 속으로 외쳐대야 했다.
영상 속 나는 몇 분이 지나면 어깨가 기울고, 허리가 말리고, 계속해서 자세를 고쳐 앉았다.
카메라 밖에서 그 모습이 주는 인상은 단 하나.
'불안정'
스물다섯 해를 채운 사무직 생활 동안
내 몸은 어깨가 말리고 척추가 휘고 거북목이 되어 있었다.
마흔을 훌쩍 넘겨 다시 자세 훈련부터 해야 한다니...
몹시도 원통하다.
리더십이 코어 근육에서 나온다는 걸 진작 알았더라면
그동안 제발 운동 좀 하라는 엄마와 남편의 잔소리를 조금은... 귀담아 들었을까?
(응 아니야)
요즘 유튜브에는 코어 얘기가 넘쳐난다.
“코어를 잡아야 허리가 안 아프다.”
“코어 근육이 있어야 골반이 바로 선다.”
리더에게도 똑같다.
중심이 잡혀야 호흡이 안정되고
메시지에 힘이 실리고
존재감도 살아난다.
하지만 습관이라는 게 하루아침에 고쳐질 리가 없으니 여전히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리를 이리 꼬았다 저리 꼬았다 하고 있다.
그러다 화상 미팅에서 나처럼 무너져가는 동료들을 보면 '아차!'하고 정신이 든다.
고개는 고정!
복부에 힘을 주고,
어깨 쫙 허리 쭉.
고개는 동의할 때만 끄덕이고, 중심을 단단하게.
매일이 고행이다.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