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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장에서의 소회

1-작가로서 / 2-뮤비 제작자로서 / 3-운전하는 기장으로서

by 손원욱

각각 다른 입장에서 촬영장을 가게 되었을 때, 그때 그때마다의 감정과 느낌은 다를 수밖에없다.

전체적으로 보는 시각과 그림이 다르다고나 할까.

작가로 현장에 나갔을 때에는 우선 내가 작가로서 챙겨야 할 일들이 쌓여 있고,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꼼꼼이 챙기면서 내 주변 것들 위주로 보게 된다. 따라서 전체적인 상황과 모

든 것을 아우를 수 있을 정도의 깜냥은 되지 않았다. 물론 그때는 메인 작가는 아니고 서브

작가일 때이긴 하지만. 여유가 있기보다는 오늘 정해진 것들을 문제없이 무사히 마치고 돌아

가자 뭐 그런 생각이 가득 찼었던 것 같다.

2014년경에 우연찮은 기회로 뮤비 제작을 하게 되었는데, 사실 당시로서는 작가 경력만 있

었고 제작자로서의 경력이 없었기 때문에 뮤비 연출 경력이 있는 감독을 고용해서 제작을 하

게 되었다. 보이그룹 미스터미스터의 빅맨이라는 뮤직비디오였는데, 경기도에 있는 큰 세트장

을 대여해서 하루종일 촬영을 하게 되었다. 당시 하루 통 대관비가 400만원 정도였던 걸로 기

억한다. 총 제작비에서 장소 대여비, 연출, 카메라, 조명, 오디오 등등을 빼고 나면 사실 나도

제작자로서 몇 백 혹은 조금이라도 돈을 남겨야 되는데 잘 만들어줘야 된다는 생각에 내 돈은

생각하지 않고 제작했었다. 어떻게 보면 지금보다는 순진했던(?) 시절이었다. 제작자로서 바라

본 촬영 현장은 뭔가를 아우르면서 전체적인 상황을 봐야 하는 것이었다. 콘셉트나 안무 등

하나하나 구체적인 것에 관여하기보다는 디테일한 부분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제

작자는 그들을 격려하고 그들이 일을 잘할 수 있도록 서포트해주는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것

이 맞는 일인 것 같았다. 일도 일이지만, 점심이나 저녁에 오는 밥차나 간식 등도 아주 중요

한 부분이었다. 잠깐의 휴식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맛있는 식사를 하고 별 것 아닌 간식 하나

라도 더 챙겨주면 사람인 이상 더 기분 좋게 작업에 임하게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면서.

2024년 오랜만에 맞이하게 된 촬영 현장에서 온 밥차는 정말 맛이 있었다. 현장에서 밥차에

서 제공하는 점심을 먹으니 생생하게 살아 있는 기분을 느꼈다. 반찬의 퀄리티가 좋아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어떤 직업으로 오든, 밥차는 그대로 밥차였다. 작가로서 밥을 먹을

때, 제작자로서 먹을 때, 기장으로 운전을 하러 와서 먹을 때에도 같은 것은 기분좋음이었다.

각각의 상황에 따라 기분은 달랐지만 밥차에서 주는 음식을 먹을 때 느끼는 기분좋음은 같았

다. 작가일 때는 빨리 밥을 먹고 그 다음 것을 해야지 뭐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채우고 있

었고, 제작자일 때는 조금 여유 있게 밥을 먹었지만 촬영 시간과 딜레이되었을 때의 추가 비

용 등이 얼마인지 계산되어 빨리 독려해서 끝내야지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사실 운전

기사로 밥을 먹을 때는 급한 것도 없고 충분히 즐기면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왜냐면 나의

역할은 스태프들이 이동할 때에만 잘 이동시켜주면 되기 때문에 그 외의 시간은 상당히 여유

가 있는 편이기 때문이다. 일부러 뭘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게 없기도 하다ㅎ 그런 점에 있

어서는 내 성격과 가장 딱 맞는 일이 어쩌면 운전 기사일 지도 모른다ㅋ

앞으로는 엔터 대표로서 우리 아티스트들이 촬영 현장에 나갔을 때 직접 나갈 수도 있고 매

니저들이 나갈 수도 있지만, 어쨌든 또 그때는 내가 다른 일과 역할로 나가는 것이니 그때는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기분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물론 공통점은 밥차를 먹을 때의 좋은 기

분은 그대로일 것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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