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기
기분 좋은 햇살이 밝게 비치는 널찍한 거실에 홀로 앉아 글을 쓰고 있으니 정말 전업 작가라도 된 기분이다. 비록 모르는 타인과 이 아파트를 공유하고 있긴 하지만, 또한 가장 작은 골방에 찌그러져 있지만 이렇게 오늘 같은 공휴일 낮시간은 온전히 홀로 만끽할 수 있다. 짧다면 짧은 순간이고, 누군가와 공간을 공유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깨끗하고 각종 가전 가구를 갖춘 집에서 살 수 있는 것은 회사 덕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직은 아파트를 장만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럴 때 보면 나는 가끔 회사에 붙어서 기생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나쁜 의미로 말고, 정말 좋은 의미로다가 감사한 마음으로.
계약직은 마음 상하는 일이 많다. 굳이 겪어보지 않아도 상식적으로 알 수 있는 일들이 많기에 그 경험은 다음으로 미루고 오늘은 좋은 일들에 대해 특별히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기로 했다. 가끔 잊을만하면 기어이 상기시키고 만다. 계약직이라서 그렇다기보다 그냥 인생을 살아가는 자세라는 관점에서 말이다. 우선 집 문제가 해결되었다. 이 곳에 입사하기 전에는 원룸을 전전했었다. 작고, 답답하고 해도 잘 안 들어 우울해지기 일쑤였던 원룸을 벗어나, 나만의 것은 아니지만 거실이 있는 집에서 월세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금액으로 지낼 곳이 생겼다. 계절마다, 사는 집마다 다르긴 하지만 평균 5만 원으로 각종 공과금 및 관리비가 해결되었다. 그 덕에 저축할 수 있는 돈이 늘었다. 물론 모든 계약직이 이렇게 합숙소에서 지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보통은 거주지에서 통근하지만 공기업의 특성상 순환 근무를 해야 하는 경우, 계약직도 예외일 수는 없다. 싫기도 하면서 좋기도 한 점이다.
계약직은 각종 복리후생이 정규직과 다른 경우가 많다. 하지만 무기계약직이기 때문인지 연봉 수준은 현저한 차이가 나지만 복리후생은 비슷한 편이다. 아, 생각해보니 올해 받아야 할 건강검진을 아직 하지 않았다. 회사가 없었으면 받지 못할 혜택이다. 아직 복지 포인트는 20여 만원이 남았다. 맛있는 걸 사 먹어야겠다. 아끼고 아껴서 제법 돈도 모았다. 물론 대기업을 다니고 돈 잘 버는 친구들에 비하면 여행도 덜 가고, 비싸고 멋진 옷과 음식도 포기하고 살았지만 그렇다고 헐벗고 다니지도, 못 먹고 다니지도 않았다. 딱히 너무너무 불행하지도 않았다.
나의 여행은 언제나 가난했지만 가난했기에 남길 수 있는 추억이 있다. 그리고 언젠간 풍족한 여행을 다닐 수 있음을 알기에 슬프지 않다. 계약직으로 살아서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겠냐고? 말했듯이 어차피 인생이란 자체가 계약의 연속이고, 그래서 이 계약직으로 영원히 살 마음이 없다. 그러기에 글을 쓰고, 생각하고,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다. 계약직이기 때문에 슬플 이유는 다음 꿈을 그리지 못해서이다. 그 인생이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될 때 불행해진다. 하지만 여전히 난 꿈을 꾸고 다음 계획을 세우고 이룰 수 있다고 강력하게 믿기에 오히려 이 상황을 즐긴다. 단지 장거리 레이스를 하고 있는 것일 뿐이라고, 그래서 더더욱 여유를 가지고 즐겨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키면서.
내게 회사는 고마운 존재다. 때때로 충성하지도 않는 계약직 직원 먹여 살리느라 참 고생한다 싶다. 이렇게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그냥 내가 갑이 된 기분이다. 그렇다고 진상처럼 갑질 하는 직원이 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그 마음이 사회에서 소외받는 기분이 들 때, 묘하게 위로가 된다. 내가 불쌍하게 능력이 없어 정규직이 되지 못하고 계약직으로 살아간다는 생각보다 영리하게 혹은 영악하게 계약직이란 자리를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내가 주체가 된다. 사람은 타인이 아닌 자신이 주체적으로 어떤 선택을 할 때 후회가 적다고 한다. 내 능력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지만 거기에 심취하기보다 내가 선택해서 일한다고 생각하면 위축되지 않는다. 어차피 능력은 노력해서 천천히 키워나갈 수 있다. 모든 것은 결코 그대로 머물지 않는다. 가장 무서우면서도 희망적인 말이다.
다음에는 계약직이 가질 수 있는 기회에 대해 얘기해 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