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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봇 Oct 19. 2024

슬픈 상처와 용서

유난히 한가한 저녁 시간에 외상환자 진료 문의 전화가 왔다.


“강아지가 다쳐서 피를 흘리는데, 지금 가면 진료 가능한가요?”


진료 예약 문의가 오면 먼저 간단히 상황을 파악한다. 동물병원 외상 진료는 다른 강아지에게 물리거나,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높은 곳에서 떨어지거나, 집안의 물건이 실수로 떨어져 맞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떻게 강아지가 다친 건가요? 피는 얼마나 흘리는 거지요?”


보호자님은 어떻게 상처가 났는지 끝내 말씀하지 않으셨다.


“알겠습니다. 일단 진료는 가능하니 내원해서 살펴보겠습니다.”


30분쯤 지나니 20kg 정도 돼 보이는 커다란 리트리버가 몸 여러 곳에서 피를 흘리며 들어왔다. 일단 아이를 먼저 처치실로 데리고 왔다.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파악하기 위해 세척을 했다.


"아니 이게 무슨..."




옆구리와 등 쪽에 칼로 찌른 듯한 날카로운 자상이 군데군데 보였다. 다행히 상처가 깊지는 않았다. 대형견이어서 그렇지, 소형견이었다면 치명적일 수 있었을 정도의 상처였다. 소독, 진통처치를 하고 상처 부위를 드레싱 한 후에 진료실로 들어갔다.


내가 먼저 말을 꺼내기 전에 보호자님이 급하게 나의 말을 막으며 사정을 얘기했다.


“사실.. 아버지가 치매세요. 지금까지 별일 없이 잘 지내고 있었는데…”


보호자님이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뒷말이 내가 상상하는 그런 것이 아니길 바랐지만,,


“그런데 점점 병세가 심해졌어요. 그러다가 저희 보리를 보고 갑자기 '웬 개가 여기 있어!' 하면서 소리를 지르더니... 순식간에..”


보호자님이 얼른 막는다고 막으셨지만 이미 몇 군데나 상처가 난 것이다.


아,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구나.. 당황스러운 상황에 놀람과 안타까운 마음이 교차했으며, 적당한 답변이 떠오르지 않았다.


“다행히 상처가 깊지는 않습니다. 아마 며칠 내 소독하고 붕대 잘해주면 나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보리가 계속 집에서 있기는 힘들 것 같네요.”


어색한 침묵이 진료실 안을 가득 채웠다. 잠시 후 보호자님께서 말씀하셨다.


“안 그래도 이제 아버지를 병원에 모시려고 했어요.. 이제는 더 이상 안 될 것 같네요.”


이런 일을 겪고도 보리는 나를 보고 꼬리를 흔들고, 동물병원에서 나갈 때도 보호자님을 보며 반갑다고 뛰어다녔다. 보리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눈빛과 흔들리는 꼬리에서 사람에 대한 사랑과 용서가 담겨 있어 보였다.



이야기의 강아지 또는 고양이 이름은 가명입니다. 정보 보호를 위해 약간의 각색이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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