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의료의 우선순위
윤진 엄마가 어느 날 집에서 쓰러졌다. 놀란 딸이 지인에게 연락했고, 앰뷸런스에 실려 병원으로 갔다. 당뇨 합병증으로 신장이 완전히 망가져 투석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녀는 그런 자신의 몸상태보다, 감당해야 할 엄청난 병원비와 혹시 자신의 불법 체류자 신분이 탄로 나 추방될지 몰라 걱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지인들은 그녀의 병원비를 위해 모금이라도 해야 하나 걱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병원의 태도는 이런 우리들과 달랐다.
병원은 그녀가 캐나다 의료혜택을 받을 수 없는 신분임을 알고 난 후, 병원에 근무하는 Social Worker(사회 복지사)를 그녀에게 소개해 주었다. 사회 복지사는 그녀와 상담을 하고, 그녀의 경제상태를 확인하고, 그녀가 부담 없이 매달 부담할 수 있는 최소 금액을 물어본 후, 그 금액만을 부담하도록 병원과 협의하고, 나머지 치료 비용은 나라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내, 당장의 병원비뿐만이 아니라, 이후의 치료비까지 충당하도록 했다. 그녀가 병원에서 퇴원한 후, 일주일에 세 번 투석받으러 갈 때 필요한 차량 서비스도 무료 지원해 주었다.
캐나다에서 병원 진료받은 한국 사람들 대부분은 이곳의 병원 시스템이 느리고 불편하다고 호소한다. 나의 경험도 그렇다. 하지만, 단 한 번이라도 병원에서 수술받고 입원치료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전혀 다르게 말한다. 돈 한 푼 내지 않았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아주 편하게 지냈다고. 만약, 질병이 심각해 수술이나 입원이 필요하다고 의사가 판단하면, 진료 우선순위가 되고, 퇴원 때까지 무료로 검사, 수술, 입원, 진료, 투약을 받을 수 있다. 그 이후, 필요하면 통원치료를 위한 차량 서비스도 무료로 받는다. 정말 아프지만 돈이 없어 수술이나 입원 치료를 못 받는 경우는 없다.
캐나다 의료비의 많은 부분이 이런 곳에 우선적으로 쓰이기 때문에, 일반 경증의 환자에 대한 서비스가 상대적으로 소홀할 뿐이다. 한국의 의료 시스템과 캐나다 의료 시스템 중에 어느 쪽이 나은가에 대한 대답은 질문자의 건강상태와 그 나라가 추구하는 의료 서비스의 우선순위에 달려있다. 죽을 때까지 그다지 심각하거나 희귀한 질병에 걸리지 않는다면 한국의 시스템이 더 좋고, 본인이나 가족 중 누구라도 사는 동안 한 번이라도 치료비용과 치료기간이 상당한 질병에 걸린다면 캐나다 시스템이 더 나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