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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Sep 05. 2020

사랑 속에 둥둥 떠다니듯 유영합니다.

독서노트: 김희진의 장편소설 <두 방문객>


물은 별, 달, 동그라미, 네모, 세모를 구별하지 않고 담기는 그릇 모양에 따라 다르게 고입니다. 중력이 이끄는 대로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 어떤 틈새 건 유연하게 흐르곤 하죠. 온도와 습도의 조건이 따라준다면 곧 증발되어 날아가버릴지도 모릅니다. 얼음은 물과는 또 다른 것입니다. 그렇게 치면 아이러니하게도 몸의 대부분이 물로 구성되어있다는 인간은 물을 제대로 만져 본 일이 없습니다. 김희진의 장편소설 <두 방문객> 속 사랑은 물을 닮아 있습니다.


메인 공간인 수영장은 사랑, 포용, 용서, 위로, 비밀, 향수를 가득 담습니다. 물을 담듯 사랑이 찰랑입니다. 사랑은 실수를 개성으로 바꾸고, 낭패감을 녹이고, 부끄러움을 감추며, 누구든 경계 없이 받아들입니다. 여름의 끝자락, 책을 덮으며 이 수영장에 이름을 붙인다면 주인공 경애가 번역하던 서적의 제목'스쉬턴하이츠(수줍음)'이 걸맞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들마다 수치를 느끼는 역치가 다르곤 합니다. 흠결은 공감을 한 대상에게는 애정을 깊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겠지요. 어떤 이들은 솔직함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술이나 약물을 빌미로 수면 아래 묻어뒀던 부끄러운 마음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체로 감추고 덮도록 배워온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꼭 결벽이 있어야만 사회적 체면이나 평판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수치를 피하도록, 그래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도록 배워왔어요. 타인에게 보이는 모습을 위해서 작든 크든 내면의 뭔가를 포기하게 될 때면 속상한 마음이 듭니다.


소설 속 엉망이던 수영장이 깨끗이 정화된 것처럼, 물 흐르듯 시간 속에서 정리되는 것들에 위로를 받곤 합니다. 어떤 형태의 사랑을 마음에 품었든 간에 어차피 사랑이 물처럼 손에 잡힐 수 없는 것이라면 진행상태와는 별개로 각자의 마음은 존중받아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부디 없어야겠지요. 나의 오만함과 선입견을 버리고, 미천한 사랑도 사람도 없음을 되새겨 봅니다.








"내가 원하는 사람이 나를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그에게서 지워질 나. 그의 생각과 그의 일상과 그의 계절과 그의 숱한 감정들로부터 내가 없어진다고 생각하자 나는, 존재로서의 나를 상실해버린 듯했다." p.126


"울음이 나를 달랬다. 울음이 나를 이해했고, 울음이 그를 위로했다. 그것만이 내가 그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전부인 것 같아 그렇게 울어 렸다." p.144


"그럴 수 없기에 그러고 싶었던 것이다. 자기 엄마라서, 그 엄마 앞에서만큼은 작용 반작용의 속내를 드러내고 싶었던 것이다." p.153


"물의 품에 안긴 몸이 적요 속으로 스며들었다. 잔잔한 물의 숨결을 따라 몸이 어딘가로 흐르고 또 흘러갔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몸은 마치 몸의 겉피 속에서 빠져나온 듯했고, 영혼만 남아버린 내 몸뚱이는 죽음을 닮아 가듯 허공을 부유했다." p.174


"수영장 물에 두 발을 담그고 앉아 수중 조명이 뿜어 낸 빛들을 바라봤다. 빛이 투과된 밤의 물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몇몇에게 비밀이 사라진 밤처럼 빛은 물을, 물은 빛을 드러냈다. 누구에겐 부끄러운 밤이었고, 누구에겐 고통스러운 밤이었고, 누구에겐 연민의 밤이었지만, 우리의 밤은 아무 말도 없었다." p.189


"나를 기다리는 사랑의 문장이 나를 호흡했다. 나를 만지고 나를 그리워했다. 문장 안에 스며든 나와 그, 그리고 우리였다. 우리는 서로 사랑을 했다." p.205


김희진의 장편소설 <두 방문객>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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