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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 쌓기'를 도와야 청년이 산다

50만 '쉼 청년' 시대, '대학 무용론', '학위 장사' 오명 벗어야

by 우드코디BJ

추락하는 한국 대학의 글로벌 위상


영국의 글로벌 대학 평가기관 QS(Quacquarelli Symonds)가 발표한 '2025 세계대학평가'는 충격적입니다. 한때 아시아를 호령하던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세 곳만이 100위권에 진입했으며, 이는 작년보다 두 곳이나 줄어든 수치입니다. 반면 중국은 10개 대학이 톱 100에 진입했고, 홍콩과 싱가포르도 약진했습니다. 국가 차원의 막대한 R&D 투자를 바탕으로 한 중국 대학들의 약진은 더 이상 '아시아 맹주'가 우리 몫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더 심각한 것은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의 2024년 국가경쟁력 평가입니다. 한국은 69개국 중 27위로 전년 20위에서 7 계단이나 주저앉았습니다. 기업 효율성 분야가 23위에서 44위로 21 계단 떨어지며 전체 순위를 끌어내렸고, 교육 인프라는 19위에서 27위로, 청년실업 부문도 8위에서 11위로 하락했습니다. 이는 대학 교육과 산업 현장, 그리고 국가의 인재 정책이 각자 따로 놀며 글로벌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음을 여실히 증명합니다.



동상이몽 : 대학의 관심사와 청년들의 불만 사이


그런데 정작, 이러한 위기 속에서 국내 대학의 관심사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설문조사(2024)에 따르면, 대학 총장님들의 최대 관심사는 '정부·지자체의 재정지원사업'과 '외국인 유학생 유치 및 교육'입니다. 저출생으로 인한 학령인구 감소가 대학의 존립을 위협하는 현실을 반영한 결과지만, 교육 경쟁력 강화나 졸업생 취업률 개선 같은 본질적 문제 해결에 대한 언급은 한마디도 없었다는 사실은 씁쓸하기까지 합니다.


이러한 대학의 모습 때문일까요. 딜로이트그룹이 발표한 '2024년 MZ세대 서베이'에 따르면 1983년생부터 2006년생에 이르는 전 세계 MZ세대 30% 이상이 대학을 가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주요 이유로는 높은 등록금 부담과 교육의 질에 대한 우려가 꼽혔습니다. 응답자 다수는 현재 교육제도가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516명의 국내 MZ세대 응답자들 중에서도 34%는 대학 이상의 고등 교육을 받지 않겠다고 답했습니다.



'쉼 당한' 청년들의 현실 : 다양한 사회 문제로 연결된다


"왜 자꾸 그냥 쉬었다고 하나요, 사회적으로 쉼을 당한 거예요." 이 절규는 오늘날 대한민국 청년들이 마주한 취업 시장의 현실을 말해줍니다. 서울 상위권 대학 졸업에 학점 4.0 이상, 토익 900점대, 각종 자격증까지 갖춘 '스펙 만렙' 청년들조차 취업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통계청 '2025년 2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15~29세 사이에 취업이나 진학 준비 없이 '쉬고 있다'라고 답한 청년이 50만 4000명으로 50만 명을 넘겼습니다.


수백, 수천 대 1의 경쟁률, 굳게 닫힌 대기업의 문, 바늘구멍보다 좁아진 중소기업의 채용 시장. 이렇듯 청년들은 자발적인 '쉼'이 아닌, 구조적 현실이 강요하는 '쉼 당한' 상태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구직난에 시달리는 청년들이 늘어나면 비혼과 저출산, 인력난과 고령화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는 0%대 저성장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는 우리 경제에 치명타가 아닐 수 없습니다.



힘들게 입사해 놓고 금방 퇴사하는 청년들


이쯤에서 우리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산업 현장에서는 '스펙 파괴'와 '실무 역량'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는데, 대학 교육은 여전히 '스펙 쌓기' 중심이라는 점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국내 조기 퇴사자의 주요 퇴사 이유 1위가 '직무 적합성 불일치'라는 인사 담당자 대상 설문조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합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전공-직업 불일치율은 약 50%로, OECD 회원국 중 최상위권에 속합니다.


OECD 회원국 가운데 대학 진학률이 가장 높은 대한민국에서 산업 현장 수요와 배출되는 인력 사이의 불일치가 가장 심각하다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대학이 졸업생들의 사회 진출 이후 성공적인 안착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게 고민하는지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전공과 직무가 일치하지 않는 '미스매치' 현상은 낮은 직무 만족도와 잦은 이직으로 연결되며 결국 '기업 생산성 하락'이라는 문제를 불러옵니다.



대학은 학생이 '다양한 실무 경험'을 쌓고 '대인 관계 능력' 향상을 도와야


앞으로 대학은 '학위 장사'라는 오명을 씻고 졸업생들이 실전적인 사회 경쟁력을 갖추도록 돕는 책임감 있는 교육 기관으로 거듭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 방학 기간을 진로 탐색과 실무 경험의 시간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대학 내 '인턴십 프로그램 센터'와 같은 전담기구를 세워야 합니다. 이 센터는 학생이 진출을 희망하는 산업 분야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중소업체와 협력하여, 방학마다 학생과 기업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학생은 방학 동안 인턴십을 통해 여러 산업 현장을 경험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며, 자신의 적성과 직무 적합성을 점검할 수 있습니다. 인턴십을 마친 학생은 그간의 경험을 SNS에 공개 레포트로 남기도록 합니다. 이는 학생 개인에게는 '직무 포트폴리오'가 되고, 학교 입장에서는 '인턴 수료 확인서' 발급의 근거가 되며, 기업 측면에서는 '인재 채용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동기나 선후배뿐 아니라 또래의 청년들에게도 실질적인 정보가 제공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습니다.


졸업할 때까지 이러한 경험이 누적될수록, 학생들은 자신이 가고자 했던 산업계에 대한 이해도가 생기고, 자신이 어떤 회사와 직무에 적합한지에 대한 현실적인 감각을 기를 수 있습니다. 또한 인턴 기간 동안 수령한 급여는 학자금이나 생활비 마련에도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다양한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교류는 대인 관계 능력과 사회성을 자연스럽게 키워줄 것입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실시한 2025년 상반기 '채용시장 특징과 시서점 조사'에 응한 청년 구직자 가운데 53.2%는 '대학 재학 중 직무 경험을 하지 못했다'라고 답했습니다. 한편 아르바이트 정보 플랫폼 기업들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대학생들이 선호하는 아르바이트 업종 1순위와 2순위는 대개 '카페'와 '편의점'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방학 기간 학생들이 실무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돕는 산학연계 '인턴십 프로그램 센터' 운영을 통해 우리나라 대학들이 '실무 적응 역량'이 높고 '대인 관계 능력'이 좋은 '실전형 인재'를 양성하는 요람으로 거듭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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