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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덕호 Oct 22. 2024

말라붙은 개구리에게 물 주기

장지뱀, 맹꽁이, 청개구리


장지뱀


공방 청소를 하다 보면 곤충 사체를 치우는 일이 잦다. 불빛을 따라 들어왔다가 구석에서 수명을 다한 날벌레들이다. 보통은 바싹 마른 상태로 톱밥이나 먼지 사이에서 뒹굴고 있다. 아직 숨이 붙어있는 것들도 더러 있는데, 그럴 땐 쓰레받기에 살살 담아서 공방 앞 풀숲에 던져놓는다. 


한 번은 목재선반 구석에서 꿈틀거리는 뭔가를 발견했다. 기다란 꼬리를 잡아 올리자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장지뱀이 허우적댔다. 이 가련한 생물은 낡아빠진 거미줄에 엉켜 옴짝달싹 못하고 있었다. 빠져나가려고 몸을 뒤척일수록 주변의 먼지와 나방의 바스러진 날개, 톱밥이 끈적대며 들러붙었다. 


생명이 다 말라붙기 전에 이 녀석을 발견한 것은 우리 둘 다에게 다행이었다. 나방이야 흔하다 해도, 그 외 생물의 사체를 발견하는 상황은 썩 유쾌하지 않은 일이다. 먼지를 잘 떼어낸 뒤 밖에 있는 수돗가로 데려간다. 물을 틀어 땅을 흠뻑 적신 뒤, 근처에 내려놓는다. (다시는 공방 안을 기웃거리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와 함께)



 

맹꽁이


일찍 작업을 마무리하고, 지인들과 밤 산책을 하던 중 맹꽁이를 주웠다. 함덕 해변에서였다. 해수욕장 입구 콘크리트 바닥과 백사장 사이 경계에서 모래를 잔뜩 몸에 붙인 채 끙끙대고 있었다. 지나다니는 걸음에 밟힐까 봐 얼른 손에 쥐었다. 점액질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만큼 피부가 까끌거렸다. 얼른 화장실로 데려가 몸을 씻긴 뒤, 굴러다니던 플라스틱 컵에 약간의 물과 함께 집어넣었다. 


이놈은 어쩌다 여기서 헤매게 되었을까? 함덕은 번화한 바닷가라 인근에 맹꽁이들이 서식지로 삼을만한 곳이 없다. 조금 거리가 있는 서우봉 일대에서 누군가 잡아왔다 여기 버린 게 아닌가 추측할 뿐이었다.


- 그럼 ○○이는 여기서 개구리랑 살아. 엄마 아빠는 호텔 가서 잘 거니까. 
아이는 주눅 든 얼굴로 엄마 쪽을 힐긋 쳐다보았다. 여자는 미간을 찌푸렸다. 
- 당신이 잡아줬으니까 알아서 해.

남자는 난처한 표정으로 아이를 타일렀다.
- 개구리는 자연으로 돌아가서 친구들이랑 같이 살아야 돼. 그게 행복한거야. 잘 보내줄 수 있지? 자, 개구리 친구한테 인사하고 가자. 잘 살아!
아이는 마지못해 과자봉지 안의 맹꽁이를 땅에 내려놓는다. 
- 그래 우리 ○○이 착하다. 개구리도 고맙다고 인사하네. 저것 봐. 손 흔들어 줘야지? 잘 가, 개구리야. 다음에 봐!

맹꽁이는 듣자 듣자 하니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순식간에 피부에 들러붙는 짠 모래알들 때문에 호흡이 가빠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다. 여기가 어딘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이내 정신이 든 맹꽁이는 투명한 플라스틱 컵에 담긴 채 함덕 바다를 구경하고, 배스킨라빈스에서 인간들이 민트초코칩을 사 먹는 것을 지켜보고, 트럭 컵홀더에 끼워져 덜컹거리며 어디론가 이동했다. 맹꽁이를 풀어줄 마땅한 장소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 바로 뒤에 하천이 하나 있는데, 여름밤이면 맹꽁이 소리로 시끄러워진다. 맹꽁이는 한쪽에서 맿, 하고 울면 반대쪽에서 꽇, 하고 대답하듯 노래를 주고받는다. 이 중 어느 편이든 한 마리쯤 소리를 더해도 균형이 무너지진 않을 것이다. 하천에 풀어놓은 맹꽁이는 지난 몇 시간의 일들이 어리둥절한 듯 얼이 빠진 표정이었다. 그러나 이내 앞발로 물을 몇 번 더듬더니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새로운 터전에서 촉촉하게 잘 살아남기를 빌었다. (다음 날 왜가리가 유달리 많이 몰려든 건, 그저 기분 탓이길 바랍니다) 




개구리


물이라는 건 참 중요하구나. 나는 아스팔트 바닥에 납작하게 붙어버린 죽은 개구리를 보며 생각했다. 비 오는 날이면 미끈한 피부로 기분 좋게 호흡하며 통통 뛰어다녔을 이 개구리는, 모든 수분이 빠져나간 채 지금은 말이 없는 상태다. 더 이상 높이값을 가지지 않고, 개구리 세상의 평면좌표계에 눌린 자국처럼 들러붙었다. 


나는 로드킬을 당해 도로에 말라붙은 동물들을 보면, 가만히 물을 부어 그들이 다시 살아날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보곤 한다. 가구의 흠집을 복원할 때도, 움푹 들어간 원목 표면에 뜨거운 물을 적시면 목재의 섬유질이 다시 부풀어 오른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죽은 개구리에게도 물을 주면 금세 부풀어 오르며 생기를 회복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쩌면 땅 속의 구근처럼 잔뜩 몸을 웅크려, 누군가 밟고 지나간 아픈 시기를 견디고 있는지도 모른다. 비가 오면 움이 트듯 다시 폴짝폴짝 뛰어다닐까? 




같이 살고 있습니다


물을 주는 행위는 평면으로 존재하던 생물들에게 입체감을 준다. 말을 걸고, 만져보며, 가만히 관찰하는 작은 동작들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깨어난 존재들은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 볼록, 불거지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나는 내 영역을 굳이 금 그어 나누지 않고, 이 작게 튀어나온 돌기들을 점자처럼 손 끝으로 더듬어 읽는다. 


우리는 각자의 층위에서 살아가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다. 작업실에서 마주치는 생물들은, 각자의 세상을 대표하여 나에게 새로운 시선을 열어준다. 나는 곤충의 겹눈으로 세상을 구경하고, 개와 함께 낮고 넓은 곳을 걷고, 새처럼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벌레처럼 불빛을 향해 무작정 달려가기도 한다. 별다른 이유 없이 밤길을 무작정 떠돌아도 좋다. 소리만으로 새의 깃털이 무슨 색을 띠는지 그려낼 수 있다. 때로는 달콤한 맛으로, 때로는 축축한 촉감으로 세상을 느낀다. 이 연결을 이어가는 것은, 평행한 것으로만 보였던 서로의 활동이 교차하는 작은 지점들이다. 


서로의 생활이 중첩되며 입체적으로 부풀어 오르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뭐가 됐든 같이 살고 있다. 지층 속의 화석처럼 혼자 잠겨버린 층에 영원히 박제되거나 고립되는 상황은 아무래도 끔찍하다. 잠시 그러할지언정 언젠가 다시 폴짝 뛰어오르는 순간을 기다린다. 나는 공방 앞에서 개나 새를 줍거나, 벌레를 관찰하는 일상을 이어갈 것이다. 같은 곳에 겹쳐 쌓이는 각자의 레이어가 어떤 새로운 색깔과 무늬를 만들어낼지 궁금해하면서. 나와 함께 머물렀던 생물들이 남긴 흔적들은 희미하게라도 그 자리에 남아 끝없이 깊이를 더하고 있다. 





<공방생물도감>은 여기서 끝납니다.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여기서 본 동물친구들을 마주치면 아무쪼록 반겨주세요. 안녕!


장지뱀 구조 작전
화북천 맹꽁이 합창단 신규회원 유치
수분지수 100%, 5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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