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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Jul 17. 2023

우리 동네

 하루종일 비가 내리는 장마철이지만 길건너편의 주택가는 철거작업이 한창이다. 아침저녁으로 작업복을 입은 건설노동자들을 거리에서 쉽게   있다.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상록마을은  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다. 주민들은 모두 이주했고 난항을 거듭하던 재개발 공사는 속도가 붙었다.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던 산동네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사실이 아직 실감 나지 않는다. 가림막이 둘러싼 동네는 일반인의 출입이 차단된 상태다. 모두가 떠난 상록마을은 홀로 마지막 여름을 나고 있다. 아파트나 다세대주택이나 30년을 넘기면 허물고 새로 지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대한민국은 낡은 것을 용납하지 않는 사회다. 느린 것을 죄악으로 여기는 풍토와 오래된 것을 배척하는 풍조는 관습이 된 것 같다.


 대한민국 사람들의 꿈은 여전히 번듯한 아파트에서 사는 것이다. 모두 낡고 오래된 것이라면 질색한다. 건물을 허물고 땅을 갈아엎은 자리에 고층아파트가 올라가야 발전했다는 말이 나온다. 모두들 사라지는 것들에는 관심이 없는  같다. 전통이나 역사가 깃든 대단한 사적은 아니지만 오래된 동네는 사람들의 이야기담고 있다. 꿈이 자라고 인정과 온정이 피어나는 낡은 마을은 인간적인 냄새를 품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도시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사람들이 떠나면서 온기가 사라진 낡은 동네는 생기를 잃고 빠르게 슬럼화된다. 나의 삶은  오래된 동네와 이어져있었다. 덕천마을이나 대농단지 그리고 상록마을 모두 낡은 다세대 주택이 가득한 곳이었다.  사는 동네라는 꼬리표가 붙어있었지만 부끄럽지는 않았다.


 땅값이 저렴한 오래된 집에 사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할  없듯  사람의 생활수준을 보고 인생을 함부로 평가할 수는 없다. 가진 것에 불만이 있는 사람도 있지만 지금의 현실에 만족하면서   없이 살아가는 인생도 있다. 각자의 상황에 맞춰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적응해 나가는 것이 삶이다. 의식주는 생활수준을 나타내는 지표가  수는 있어도 삶을 평가하는 기준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넉넉하면 넉넉한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상황에 맞게 사는 것이다. 잘살고 못살고의 기준은 분명 존재하지만 쪽팔릴 필요는 없다. 부끄러움은  움에서 비롯된다. 부족하게 살았지만 부끄럽지는 않았다. 덕천마을도 대농단지도 모두 내가  붙이고 살았던 우리 동네였다. 과거의 모습은 사라져 버렸지만 마음속 깊은 곳의 추억은 여전히 남아있다.


 물론 좋은 것들만 남은 것은 아니다. 힘든 시절의 아픈 기억들도 함께 남아있다. 그러나  모든 것들이 전부 나의 기록이다. 살다 보면 불편함 속에서도 장점을 찾게 되고  좋은 상황 속에서 기회를 발견하기도 한다. 사람과 마을은 함께 나이 들어간다. 안양8동에서 벌써 20 넘게 살았다.  동네도 과거에 비하면 살기 좋아졌다. 20 동안 주변에 살던 동네지인들은 대부분 떠났다. 사람들을 떠나보내는 동안 나는 동네와 함께 나이를 먹었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도 많이 변했다. 오래된 것들을 보고 있을 때면 편안함을 느낀다. 낡은 것들은 세월을 품고 있다. 나는  속에 담긴 온기를 좋아한다. 손때 묻은 물건처럼 오래된 우리 동네도 그런 따스함을 전해준다. 기억 속에 남은 덕천마을이나 어린 시절의 친구들이 생각나는 대농단지도 온기를 품고 있다.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았던 사람 냄새나는 동네는 사라졌지만 기억 여전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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