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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Dec 04. 2023

사라진 옷 욕심

 핸드폰 사진첩을 정리하다 몇 년 전에 찍은 사진을 봤다. 레더 블루종에 청바지를 입고 프라이탁을 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한창 멋 부리는데 재미 들렸던 시기였다. 지금은 발이 아파서 신을 일 없는 잭퍼셀이 보였다. 신발은 발모양에 따라 정말 극명하게 상성이 갈린다. 컨버스는 신는데 큰 불편함이 없지만 잭 퍼셀은 10분만 걸으면 발이 비명을 질렀다. 코르테즈와 슈퍼스타 그리고 잭퍼셀은 이번 생의 나와 인연이 없는 신발들이다.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신발이 아니라 바지였다. 슬림 스트레이트 핏의 청바지라니 불과 몇 년 전인데 어떻게 입고 다녔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다양한 브랜드의 청바지를 잘 입고 다녔지만 지금은 슬랙스 아니면 조거팬츠 류의 트레이닝팬츠만 입는다. 두꺼운 원단으로 만든 치노 팬츠도 내 취향은 아니다. 옷은 가벼울수록 그리고 활동하기 편할수록 좋다. 예전에는 디자인이나 스타일이 가장 중요했지만 지금은 편의성과 활동성이 최고다. 청바지를 입지 않게 된 이유도 활동성이 떨어지는 옷이었기 때문이다. 살이 찐 것도 아니다. 지금 183cm에 74kg쯤 나간다. 25살 때 몸무게와 똑같다. 체중은 10년째 오차범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남들은 살을 빼서라도 입고 싶은 옷이 있다는데 나는 정반대인 것 같다. 옷 욕심이 전부 사라졌다.


 예전에는 동경하는 브랜드의 옷이나 아이템을 싸게 살 수만 있다면 어디든 달려갔다. 중고나라든 직거래든 마다하지 않았고 갈망하던 제품을 손에 쥐면 정말 기뻤다. 금이야 옥이야 관리해 가며 신던 구두와 가죽가방, 멋진 이태리 수입원단 소재의 코트와 슈트, 신발장 속 스니커즈와 단화까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수집하고 소유한다는 즐거움은 삶의 낙이었다. 그렇게 좋아하는 옷을 TPO에 맞게 차려입고 외출하면 행복했다. 별다른 일이 없어도 특별한 누군가를 만나지 않아도 그냥 즐거웠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옷욕심이 사라졌다. 옷에 신경 쓰지 말고 내실을 다지는데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겉모습을 치장하고 포장해도 알맹이는 그대로다.

포장지를 바꾸는 것이 재미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속 가능한 유희는 아니다. 나는 즐거움보다 행복을 택하기로 했다. 옷장과 신발장을 비우고 애지중지해 가며 모은 아이템들을 처분했다. 그러나 나는 불행해지지 않았다. 소장품들을 전부 떠나보내면서 나는 해방감을 느꼈다. 비움을 통해서 욕심을 털어버리고 간소한 생활을 이어나가는 것이 진짜 행복이었다. 옷에 정신이 팔려있는 동안 욕심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복식생활을 하는 데 큰돈을 쓰지는 않았다. 사서 입어보고 써보고 팔거나 교환하면서 다양한 스타일을 접했을 뿐이다. 한편으로는 허전한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지금은 소모품인 티셔츠나 속옷 류를 제외하면 옷을 살 일이 거의 없다. 많이 걷는 편이라 신발예외다. 여러 켤레를 돌려 신으면 밑창이  닳지 않는다. 누구나  부리는 것에  빠지는 시기가 있다. 오래가는 사람도 있고 시들해지는 사람도 있다. 아니면 나처럼 방향성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 지금은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것이 멋이라는 생각을 한다. 라이프스타일이  패션스타일이다. 자기 삶의 방식과 일상생활을 닮은 옷차림이 최고의 스타일이다. 편하고 가볍게 다닐  있는 지금의 스타일에 나는 만족한다. 슈트를 입고 다닐 때보다 훨씬 몸과 마음이 편하다. 마음이 편해야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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