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밤

by 김태민

나는 밤을 좋아한다. 여름밤은 활기를 띠고 있어서 좋고 가을밤은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풀벌레소리가 좋다. 봄밤은 하얀 달과 고운 벚꽃을 볼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겨울밤은 고요해서 좋아한다. 추운 겨울이 오면 해는 짧아지고 아침은 게을러진다. 오후 6시만 되면 어둠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저녁밥을 먹고 나면 어느새 창 밖으로 까만 커튼이 내려와 있다. 사람들이 추위를 피해 서둘러 귀가하고 나면 거리는 금세 조용해진다. 퇴근길 인파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도시는 고요한 겨울밤을 맞이한다.


겨울밤은 길다. 그래서 겨울밤을 좋아한다. 두꺼운 솜이불을 돌돌 말고 누워있으면 정말 행복하다. 따뜻하고 포근한 이불만 있으면 아무것도 부럽지 않다. 이불을 말고 누워있다 스르르 잠이 들면 한 밤중에 일어난다. 자다 깨도 밤은 한참 남아있다. 아침이 오려면 아직 멀었다. 더 잘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서 슬며시 웃음 짓게 된다. 긴 겨울밤에만 느낄 수 있는 기쁨은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시간이 지나도 좋은 것은 여전히 좋은 것이다. 한없이 긴 겨울밤을 좋아했던 어린 시절의 내가 여전히 내 안에 남아있다.


매년 겨울마다 책을 많이 읽는다. 무드등을 켜놓고 잔잔한 음악을 들으면서 독서하기 참 좋은 계절이다. 손에 쥔 추리소설이나 단편집을 한 권 다 읽어도 밤은 넉넉하게 남아있다. 편안한 마음으로 느긋하게 독서를 즐기는 겨울밤의 즐거움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어젯밤에는 로버트 배리가 쓴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가 있었는데>를 읽었다. 이불속에서 읽는 동화책은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프랭크 시나트라가 부른 캐럴을 틀어놓고 따끈한 핫초코도 마셨다. 책을 다 읽고 두꺼운 솜이불을 턱 밑까지 덮었을 때 정말 행복했다.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 배기음이 잠시 밤의 물결을 가르다 이내 사라졌다. 새까만 겨울밤이 몰고 온 고요함이 다시 온 세상을 뒤덮었다. 평온한 새벽이다. 겨울밤은 편안한 마음으로 사색하기 좋은 밤이다. 느리게 유영하듯 천천히 여러 가지 주제를 떠올려본다. 세월의 서랍 속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기억을 꺼내서 들여다보면 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그러다 보면 종종 글을 쓰게 된다. 자다 일어나서 그날 쓰다 만 글을 새벽에 완성하기도 하고 참신한 글감을 떠올리기도 한다. 긴 겨울밤은 내게 영감과 편안한 휴식을 제공한다. 유난히 추위를 심하게 타는 체질을 갖고 태어났지만 겨울을 미워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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