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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Jul 20. 2024

마음의 날씨

변하는 감정보다 변치 않는 사람이 중요하다

 마음에도 날씨가 있다. 슬픔은 세차게 내리는 장마를 떠올리게 만든다. 우울은 빠져나갈 수 없는 짙은 안갯속을 헤매는 느낌이다. 기쁨은 화사한 4월의 봄날을 닮았고 사랑은 찬란한 햇살이 내리는 초여름처럼 싱그럽다. 날씨는 자주 변한다. 좋았다 나빠지기도 하고 나빴다가 좋아질 때도 있다. 사람의 마음도 똑같다. 영원한 감정은 없다. 한여름에 접아들면 장마는 물러가고 맹렬한 폭염은 가을의 문턱을 넘지 못한다. 좋은 감정이나 나쁜 기분 모두 날씨처럼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


 감정은 순간이지만 생활은 현실이다. 모든 일을 기분으로 결정하다 보면 크게 후회하게 된다. 비가 자주 내린다고 해서 평생 우비를 걸치고 살 수는 없다. 장마가 길어진다고 온대기후가 아열대기후로 바뀌지는 않는다. 일시적인 감정에 휘말려서 결정을 내리면 책임에 짓눌려버리는 결과가 발생한다. 인간관계도 인생도 기분이 전부가 아니다. 감정만으로 유지되는 것은 없다. 바람이 불면 구름은 곧 지나간다. 그 자리에 계속 멈춰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이 아니다. 평정심을 잃어버린 사람의 눈에만 그렇게 보일 뿐이다. 조급함은 늘 일을 그르치게 만든다.  


 당연한 사실을 의심하게 만드는 불안은 급격한 감정변화의 주범이다. 참을성을 앗아가는 조급함과 불안이 만나면 의심을 낳는다. 의심은 모든 것을 부정하는 힘을 갖고 있다. 구름이 물러가면 햇살이 쏟아진다는 상식마저 잊어버리게 만든다. 의심이 내면을 지배하게 되면 어떤 말도 소용없다. 설득과 회유는 통하지 않는다. 불안정한 감정과 기분이 사람을 통제하는 순간부터 관계에 극심한 혼란이 발생한다. 익숙하고 가까운 관계일수록 혼란은 고통스럽다. 고통에 면역력을 가진 인간은 없다.


 기분이나 감정보다 중요한 것은 태도다. 감정은 변할 수 있지만 태도는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감정이 날씨라면 태도는 기후다. 유례없는 폭염이 이어진다고 해서 온대기후가 열대기후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한랭전선이 폭설을 뿌려도 봄이 오면 눈 녹은 자리에서 꽃이 핀다. 일관성은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믿음이자 약속이다. 때로는 다투고 가끔씩 서로 틀어져도 돌아서지 않는 책임감이다. 일관성 있는 태도는 신뢰를 형성한다. 그러나 불안과 조급함이 내면을 차지하면 신뢰의 성장을 막아버린다.


 햇살을 차단하는 짙은 구름은 식물의 생장을 방해한다. 관계를 정상화하려면 불안을 걷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불안은 양면성을 갖고 있는 괴상한 감정이다. 모든 것을 부정하면서 이면에는 모든 일이 잘 해결되길 바라는 뒤틀린 욕망이 숨어있다. 겉만 봐서는 도저히 알아차릴 수 없다. 궤도를 바꾸지 않는 이상 볼 수 없는 달의 뒷면처럼 타인은 접근할 수 없다. 상대가 날 대신해서 알아서 늘 잘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이기적인 욕심이다. 불안에서 비롯된 뒤틀린 욕망은 충족되지 않는다.


 조급함을 버리고 불안을 걷어내야 한다. 수시로 변하는 기분이 불만을 토해내더라도 인내심을 발휘해야 한다. 내가 변해야 상대방도 움직인다. 노력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하는 것이다. 힘든 순간을 같이 이겨내면서 신의가 쌓인다. 태도의 일관성은 경험에서 비롯된다. 날씨만 보고 계절을 탓할 필요는 없다. 항상 좋은 날만 이어지는 계절은 없다. 화창한 가을은 극심한 일교차를 동반하고 한여름의 맹렬한 땡볕을 받아야 곡식이 여문다. 변화는 반복되고 반복에서 변화가 비롯된다. 자연스러운 것이므로 불안해하거나 집착할 필요는 없다.


 속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한 자리에 영원히 머물러있는 감정은 없다. 일상은 슬픔을 밀어내고 현실은 고통을 덮는다. 감정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물처럼 흐른다. 내면 깊은 곳까지 흘러내려가면 시간이 만든 바다에 기억과 함께 뒤섞인다. 단단하게 들러붙어있던 이름표는 희미하게 지워지면서 사라진다. 급변하는 감정에 얽매이지 말고 변하지 않는 사람을 붙잡는 것이 중요하다. 삶은 소중한 인연을 찾는 긴 여정이다. 비와 눈이 번갈아 내리고 계절이 변해도 옆자리를 지키는 사람은 떠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을 붙잡는 것이 기회를 잡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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