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심지는 휘어져도 끝내 부러지지 않는다
포털사이트 첫 화면에 내 글이 떴다. 콘텐츠큐레이션 서비스 ‘틈’은 여러 작가들의 글을 추천해 준다. 지친 현대인들에게 여유를 권하는 에세이가 좋은 반응을 얻었다. 마음이 지친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디서나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한국인들은 쉴 틈 없이 참 바쁘게 산다. 결과는 등급으로 나뉘고 자산과 지위로 인생을 평가당하더라도 다들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누구나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 분단위로 시간을 쪼개서 관리하고 가정과 직장에서 소임을 다하기 위해 분투한다.
무리하다 번아웃에 빠지거나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일상에 무기력을 느끼는 이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시 일어서서 일상으로 복귀한다. 돌고 도는 평범한 나날의 연속이지만 다들 가슴속에 작은 기대감을 품고 산다. 꽝이 된 로또용지를 휴지통에 버리면서 같은 번호로 다시 한 장을 산다. 비관적인 감정을 떨쳐내고 낙관적인 내일을 붙잡으려는 의지가 삶을 이끌어나가는 원동력이 된다. 비장한 각오나 찬란한 이상보다 흔한 일상이 훨씬 더 강력한 의지를 품고 있다.
위로 올라가는 것은 힘들지만 다들 버티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살기 좋은 시대는 동화 속 이야기에 불과하고 모두가 부자가 되는 결말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 현실을 뼈저리게 실감하면서 본인의 위치를 자각하게 된다. 가슴속에 꿈을 묻고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생활을 덤덤하게 받아들인다. 어린 시절의 내가 비웃었던 재미없는 어른이 된 자신을 보면서 쓴웃음을 지을 때도 있다. 작은 책상 하나를 지키려고 애쓰는 스스로가 비굴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나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60% 넘는 국민이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 나라지만 서점은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자기 개발서를 손에 든 사회인과 동화책을 손에 쥔 아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뉴스는 늘 비관적인 소식만 전달한다. 하지만 삶을 낙관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희망은 1%만 있어도 세상을 바꾸는 기적을 낳는다. 모두가 비관으로 돌아 선다고 해도 누군가는 기대를 건다. 변화에 대한 기대가 없다면 인간은 책을 읽지 않는다. 한쪽에서 절망을 이야기해도 다른 한쪽에서는 책을 읽으면서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중이다.
현실은 각박하다 못해 척박하다. 사람들이 체감하는 생존난이도는 갈수록 우상향 하고 있다. 하드모드가 하드코어 모드가 된 지 오래다. 유튜브 댓글만 보면 오늘 당장 대한민국이 망하고 내일 인류가 멸망해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온라인 세상에서 벗어나 밖으로 나오면 생각은 달라진다. 손바닥 만한 핸드폰 너머로 시선을 돌리면 분주하게 사는 사람들의 치열한 삶이 보인다. 생존난이도가 늘어날수록 생존본능도 강해진다. 중도포기자와 낙오자가 증가하는 만큼 살아남은 사람들의 심지는 굳건해진다.
안양에서 가장 땅값이 싼 동네에서 20년 넘게 살고 있는 나는 서민이다. 평생 동안 경기가 어렵고 살기 팍팍하다는 소리를 인사말처럼 듣고 살았다. 한 자리에 모이기만 하면 다들 내일을 걱정했다. 그림자처럼 삶에 들러붙은 불안이 얼굴에 어두운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매년 겨울만 되면 찾아오는 독감처럼 다들 먹고사는 일을 염려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쉽게 절망하지 않았다. 살길을 찾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들은 꼭두새벽에 첫차를 타고 나가 막차에 지친 몸을 싣고 월세집으로 돌아왔다.
남부럽게 살지는 못해도 치열하게 살았고 남들만큼 살 수 없다고 세상을 미워하지도 않았다. 여유는 없지만 심지가 곧은 이들을 볼 때면 나를 비추는 거울로 삼았다. 살아온 길이 다르고 자란 환경은 다르지만 인간은 누구나 내면에 단단한 심지를 품고 있다. 휘어지거나 구부러져도 결코 꺾이지 않는다. 강해야 살아남는 것은 아니다. 살아남으면 결국 다들 강해진다. 장밋빛 미래를 단언할 수는 없다. 지표나 상황은 분명 암울하다. 앞으로 더 힘든 시기가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힘을 내서 끝까지 살아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