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달리면 삶이 달라진다
오늘도 날이 맑다. 창밖에 보이는 파란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는 푸른빛이다. 환한 아침 햇살이 새벽이 남기고 간 그림자를 깨끗하게 걷어냈다.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러닝슈즈를 꺼내 신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달리기 정말 좋은 날씨다. 가볍게 스트레칭을 마치고 천천히 걸었다. 집 앞 공원을 두 바퀴쯤 돌고 나서 안양천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여름이 물러가면서 피부에 끈적하게 달라붙는 습기가 사라졌다. 공기는 상쾌하다 못해 산뜻했다. 느긋하게 걷다 보니 금세 하천이 시야에 들어왔다.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싱그러운 풀냄새가 났다.
트랙 위로 러너들이 보인다. 코스를 설정하고 러닝을 시작했다. 허리를 세우고 지면을 가볍게 차면서 앞으로 나갔다. 익숙한 저항감이 허벅지와 종아리를 타고 올라왔다. 한 발씩 내디딜 때마다 천변에 늘어서 있는 아파트들이 천천히 물러나면서 멀어진다. 넓은 하늘이 머리 위로 끝없이 펼쳐져 있다. 가을 햇살을 받은 선명한 색감의 나뭇잎들이 바람을 타고 물결처럼 일렁였다. 귓가를 스치는 바람 소리가 백색소음을 만들어냈다. 속도를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하면서 페이스를 조절한다. 풍경이 다가오는 속도만큼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호흡이 가빠지면서 체온이 상승한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가쁜 숨이 입 밖으로 흘러나온다.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40분 넘게 달렸다. 잠시 쉬고 싶다는 생각이 슬며시 고개를 들 때 앞으로 치고 나간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요동치지만 마음은 반대로 차분해진다. 그때 거짓말 같은 평정심이 찾아온다. 복잡한 생각이나 너저분한 감정은 내 안에서 깨끗하게 사라진다. 몸은 힘든데 기분은 더없이 상쾌하다. 러너스 하이다. 러닝에 집중하면서 몰입하는 순간에 맛보는 극적인 희열. 짧지만 강렬한 해방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사라지면 고요한 평온함만 남는다.
러너스 하이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 턱밑까지 숨이 찰 때 밀려오기도 하고 안정적인 페이스를 유지하다 경험할 때도 있다. 집중해서 달리다 보면 자유로운 해방감을 만끽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느낌. 찰나의 환희를 경험하고 나면 러닝에 푹 빠지게 된다. 마음이 지칠 때나 머릿속이 복잡할 때면 망설임 없이 집 밖으로 나간다. 차분하게 걸으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번잡한 감정을 골라낸다. 그리고 달리면서 길 위에다 하나씩 버린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을 만큼 달리고 나면 머릿속이 맑아진다. 러닝은 삶을 가볍게 만들어준다.
살면서 경험하는 크고 작은 행복은 대부분 몰입에서 비롯된다. 소중한 사람들과의 인간관계에서 얻는 충만함,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얻는 성취감, 편안한 마음으로 누리는 여유까지. 전부 몰입을 통해서 얻는 일종의 환희다. 몰입은 삶이 주는 선물이다. 러너스 하이도 마찬가지다. 달리다 보면 일상에서 느낀 적 없는 자유를 맛볼 수 있다.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는 몰입의 순간은 불안과 근심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 집요한 추적자처럼 따라붙는 걱정을 떨쳐내고 편안한 마음으로 달리는 것은 정말 큰 행복이다.
러닝은 출발선이나 결승점이 없다. 기록에 집착할 필요도 없고 순위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경쟁자도 없고 비교하는 사람들도 없다. 레인은 하나뿐이다. 유일한 참가자는 나 하나다. 평가받을 필요 없이 내 맘대로 즐기면 된다. 집착이나 부담을 내려놓고 마음이 가는 대로 한 걸음씩 전진한다. 러닝을 통해서 앞만 보고 달리는 질주가 아니라 나답게 완주하는 즐거움을 알게 됐다. 내 페이스에 맞는 속도로 달리면서 삶을 천천히 돌아보는 습관이 생겼다.
속도경쟁에서 벗어나면 그제야 주변의 풍경이 시야에 들어온다. 덕분에 비우고 버려야 할 것들을 내 안에서 골라낼 수 있었다. 늘 바깥으로 향해있던 시선을 내면으로 돌렸다. 바쁘게 사느라 세상에 내줬던 삶의 주도권을 되찾은 기분이 든다. 경험이 사람을 성장하게 만드는 촉매라면 체험은 삶을 조금 더 성숙하게 만드는 거름이다. 달리면서 흘린 땀이 건강한 밑거름이 된 것 같다. 파란 하늘 아래 새하얀 햇살을 맞으면서 달렸다. 러닝을 마치고 잠시 쉬는 동안 시원한 가을바람이 잔잔하게 불었다. 찬란한 가을이다. 참 좋은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