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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Dec 19. 2017

치킨을 생각하다

통닭에서 치킨으로 맛과 시대는 변한다

 지난 가을 집 앞에 6,000원짜리 옛날 통닭을 파는 통닭집이 새로 생겼다. 저녁이면 가게 앞 야외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치킨에 맥주를 먹는 모습이 꼭 동남아 야시장처럼 활기차보였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늦은 저녁의 치맥을 즐기는 여유로운 풍경은 사라졌지만 가게 앞을 지날 때면 통닭을 주문하고 안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그럴 때면 오래된 기억하나가 떠오른다. 어린 시절 추운 겨울이 되면 엄마는 금요일 저녁마다 퇴근길에 통닭을 사 왔다. 스마트폰도 컴퓨터도 없었던 시절. 골목길 앞에서 평소보다 늦는 엄마를 기다리고 있으면 내 이름을 부르며 손에 들린 통닭을 머리위로 치켜 올리던 그 모습이 생각난다. 고소한 기름 냄새를 풍기던 노란 종이봉투 안의 통닭은 겨울밤 우리 가족의 정겨운 외식메뉴였다. 
  
 내가 초등학생이 되기 전이니까 벌서 20년이 훌쩍 넘은 옛날이 되어버린 90년대. 그 때는 정말 통닭이 최고의 음식이었다. 기름에 바삭하게 튀긴 통닭을 팔던 닭집과 영양센터가 동네 마다있던 시절. 양념통닭이 등장하면서 본격적인 프랜차이즈 통닭의 시대가 열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치킨이라는 용어가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도 나에게는 치킨과 통닭은 전혀 다른 음식으로 구분된다. 치킨집과 통닭집을 달리해서 구분해 부르는 건 나만의 방식이겠지만 둘은 닭으로 만든 다른 종류의 요리다. 닭볶음탕과 안동찜닭이 다르듯이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아웃백이나 빕스 같은 패밀리레스토랑의 아버지뻘인 경양식집이 있던 시절. 생일 파티를 피자헛에서하면 좀 잘 사는 집으로 쳐주던 시절이었던 90년대

. 그때는 통닭이 최고였다. 정말 그랬다. 
  
 이제는 통닭이라는 말보다 치킨이라는 말이 훨씬 더 자주 쓰인다. 엄연히 둘을 다른 음식으로 취급하는 내 입장에서는 통닭의 입지가 예전만 못하는 사실이 조금 아쉽게 느껴지기도 한다. 뜨거운 기름에 닭을 통째로 넣어 튀긴 통닭은 내게 있어서 추운 겨울 엄마의 사랑이 담겨있는 식사시간을 떠올리게 만드는 추억의 음식이다. 그러나 다양한 시즈닝과 소스 토핑으로 화려한 맛을 자랑하는 브랜드 치킨에 비하면 확실히 통닭은 초라하다. 둘을 비교해가며 먹어봐도 치킨이 더 맛있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맛이 변한 게 아니라 사회도 변하고 나도 변했다. 맛은 시대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빠르게 변화한다. 고소하고 담백한 맛과 후추소금의 짭짤함이면 충분했던 통닭은 시대의 변화와 함께 치킨이란 이름을 달고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화하고 또 발전했다. 통닭보다 치킨이 더 대중적이고 익숙한 외식메뉴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튀긴 닭고기 본연의 맛을 즐기던 통닭의 인기를 처음 누르며 등장한 것은 양념통닭이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 양념치킨이라는 새로운 명칭을 달고 나왔을 때의 인기는 정말 엄청났다. 매콤함과 달콤함이 어우러진 양념치킨은 단조로운 맛의 통닭을 완벽하게 누르며 시대의 변화를 예고했다. 90년대 중반부터 늘어난 서양식 외식업체들은 각자 독자적인 치킨 메뉴를 가지고 있었다. 패밀리레스토랑의 버팔로윙이나 패스트푸드점의 치킨너겟 같은 다양한 닭요리의 등장은 치킨의 세계관이 확장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패러다임의 변화를 촉발시킨 치킨은 KFC의 크리스피치킨이었다. 기존의 프라이드치킨이 가진 바삭함을 극대화 시킨 KFC의 크리스피는 통닭과는 또렷하게 구별되는 치킨만의 정체성을 부여하면서 통닭의 시대를 종식시켰다. 
  
 그 후 우후죽순처럼 등장한 수많은 브랜드 치킨은 주기적으로 새로운 맛의 유행을 만들어냈다. 중학생 때 처음 먹어봤던 간장치킨이 주던 신선한 충격. 채 썬 파를 치킨과 함께 먹는 파닭을 보고 느꼈던 당황스러움. 뿌려먹는 여러 종류의 시즈닝과 찍어 먹는 소스로 선택이 폭이 넓어진 2010년대의 트렌드까지. 치킨은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면서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다. 물론 다양한 맛이 주는 만족감이 높아지면서 동시에 가격도 올라간 점은 아쉽지만 어찌되었든 치킨은 국민적인 사랑을 받는 한국 대표음식으로 자리매김했다. 통닭의 한 갈래에서 시작된 치킨이 이제 통닭보다 더 대중적인 닭요리가 되었다는 사실을 보면서 나는 사회가 참 많이 변화했다는 것을 실감한다. 
  
 영양을 보충하는 의미로 먹었던 닭튀김이었던 통닭이 맛과 취향을 즐기는 닭요리인 치킨으로 진보했다. 변화와 성장을 거듭하며 완성된 치킨의 정체성은 우리 시대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통닭은 생존을 위해 단백질을 섭취하던 시대에서 영양을 챙기기 위해 육류를 소비하는 시대로 한국 사회가 변화했음을 상징하는 음식이었다. 육식은 처절한 빈곤을 벗어나 산업사회의 축복을 누리며 성장을 이룩한 나라의 국민이 즐길 수 있었던 특권 중 하나였던 것이다. 특별한 날이나 되어야 먹을 수 있던 고기를 자주 먹게 되었다는 것 자체가 풍요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통닭은 육류 본연의 맛을 살린 심플함을 특징으로 갖고 있었다. 고소한 기름의 향미만 빼면 닭고기 맛이 제대로 살아있는 단순한 닭튀김이었다. 고기를 뜯어 먹었다는 느낌이 제대로 드는 고기요리였다. 
  
 시간이 흘러 후기산업사회에 입성한 한국은 육식이 갖는 단순한 영양보충의 의미를 넘어 화려한 풍미와 다양한 맛을 즐기는 누리는 ‘미식사회’로 진보했다. 프랜차이즈와 브랜드에서 만들어낸 다양한 메뉴의 치킨은 단순함으로 가득했던 통닭과는 전혀 다른 음식이었다. 풍미와 향미를 극대화하고 새로운 조리법을 통해 차원이 다른 요리로 진화한 치킨. 사람들은 그 맛에 열광했고 새로운 메뉴의 신선함에 찬사를 보냈다. 맛은 시대와 함께 변화하고 진보한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음식은 결국 사람과 사회가 변하듯 커다란 변화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 단순한 닭튀김에서 브랜드 고유의 정체성이 녹아든 요리가 된 치킨. 누구나 좋아하고 누구나 즐겨먹는 음식에서 우리 사회의 모습을 읽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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