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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디코치 Oct 01. 2023

Long Slow Distance 길게 천천히 뛰자

업무에도 LSD 훈련이 필요하다

지난주 뉴발란스에서 진행하는 10K 마라톤 대회에 참여했다.

과거 5K 10K는 종종 참여할 만큼 달리기를 좋아했지만, 마지막 대회가 벌써 3년 전이었다.

결혼하고 아이 낳아 키우는 동안 체력은 떨어졌고, 예전처럼 잘 뛸 자신은 없었다.

그래도 모처럼 대회 신청을 했고, 전날 7K 정도 뛰며 두근거리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2023 뉴발란스 풍경. 사람이 정말 많았다.

목표는 55분 안에 들어오는 것으로 정했다.

그리고 대회 출발을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찌나 사람이 많던지 걸리적거리는 사람들을 피해 뛰는 게 일이었다.

그리고 3K가 지나갈 무렵 자세가 무너졌다. 호흡이 빨라졌고 어깨가 들썩였다.

원인은 전날 밤 훈련한다고 뛰었던 7K가 근육통을 가져온 것 같았다.

또 대형 대회의 분위기 때문에 초반부터 빠르게 뛰어간 탓이었다.


결국 8K 서강대교 오르막길에서 걷고야 말았다.

대회에서 단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었는데

도저히 뛸 에너지가 없는 느낌이었고 중간중간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그 달콤한 휴식의 유혹에 빠지고 말았다.

걷뛰를 반복하다 그렇게 골인했다. 결과는 54분이었다.

목표는 달성했지만 크게 무리를 한 탓에 어깨 허벅지 종아리... 모든 근육이 뭉치고 말았다.


알이 곳곳에 배겨 다음 날 출근길부터 지옥이었다.

선릉역은 계단이 어찌나 많은지.... 난간을 붙잡고 힘겹게 오르며 사무실에 도착했고

걸음걸이가 왜 그러냐는 동료들의 이야기에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유튜브를 보다가 LSD 달리기라는 훈련법을 알게 되었다.

Long 길게

Slow 천천히

Distance 거리를 뛴다 는 의미이다.

보통 훈련은 강도를 높여가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LSD는 상식 밖이었다. 오히려 평소보다 더 천천히 뛰어가는 것이 목표다.

대신 길게 뛰기에 심폐지구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는 본 대회에서 더 강한 순발력과 속도를 끌어올린다고 한다.


오늘 저녁부터 집 근처 강 옆 길을 LSD 훈련으로 달렸다. 평소와 달리 천천히 뛰는 것에 집중했다.

코로 숨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또 나가는지 집중할 수 있었다.

어깨의 들썩임을 인지하고 왼쪽으로 너무 처질 때마다 의식적으로 오른쪽으로 끌어당기며 몸의 밸런스를 맞출 수 있었다.

지면에 내딛는 발바닥의 느낌을 온전히 느꼈고, 내 몸이 5도쯤 앞으로 기울어져 달리고 있음을 인지할 수 있었다.


보통의 달리기 훈련에서는 느낄 수 없는, 인지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기록으로부터 벗어나니 달리기 그 자체의 재미에 집중하게 된다)

또 호흡과 자세에 집중하게 되니 명상을 하는 것처럼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LSD 훈련법은 업무 상황에서도 큰 도움이 된다.

보통 직장에서 우리는 급하고 중요한 일들이 몰려올 때 '공황'에 빠진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숨이 벅차고 식은땀이 나는 상황을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한다.

이때 큰 실수가 나온다. 0을 하나 더 붙여 메일을 보내거나 상사에게 공유할 Confidencial 한 자료를 전체 공유하는 등의 케이스를 우린 꽤 자주 접하고 있다.

특히 경력이 짧거나 빠르게 자신의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런 모습을 쉽게 발견한다. 마치 3년 만에 10K 대회에 출전해 기록을 경신하고 싶은 지난주 내 모습처럼 말이다.


결과가 좋을 리가 없다. 조급한 마음은 실수를 불러오고, 몇 번의 실수가 쌓여 번아웃을 불러온다.

그래서 직장에서도 LSD 훈련법이 필요하다. 일을 쉬엄쉬엄 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지치지 않게 자신의 페이스로 길게 뛰라는 이야기다.

단 기록을 경신하는데 집중하기보다는 업무에 임하는 자세에 집중하며 조급해지지 않게 호흡하는 것이 중요하다. 앞에 주어진 미션부터 차근차근 풀다 보면

어느새 일에 몰입한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꽤 재밌게 일에 빠져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가령, 회사에서 스터디를 할 때가 있다. 스터디 특성상 마감일이 있거나 평가를 받는 것도 아니다.

단지 그 일이 좋아서 더 잘해보고 싶어서 스터디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스터디를 부담 없이 장기간 즐기며 진행할 때 꽤 인상적인 결과를 낸 적이 있다.

그 과정이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이 또한 LSD와 같은 결이라 생각한다.


달리기에서도 또 직장에서도 어쩌면 우리 인생의 여러 문제를 풀어갈 때마다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그리고 장기간에 걸쳐 자세와 호흡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평소 몸과 정신의 밸런스를 충분히 견고하게 만든 사람만

정작 필요할 때 기존의 균형을 깨뜨려서라도 전력 질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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