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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DYK Jan 02. 2025

새로운 시작이라지만, 우리의 삶은 이미 시작되었다.

시작이라는 말을 건네지만, 이미 우리의 삶은 시작되었다.

우리는 살면서 성공을 기뻐하기도 하고, 바람이 불어도 묵묵히 가보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움직일 수 없거나 역경이 닥쳐도 끝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하면서 행동을 이해하기도 한다. 만약 지금 삶에서 커다란 빙하가 가로막고 있다면 당신은 성숙해질 수 있는 기회를 만난 것이다. 혹독한 겨울이든, 더운 여름이든 마찬가지다. <모든 삶은 흐른다. 로랑스 드빌레르 저>



1년이란 시간이 몸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순식간에 흘러갑니다. 잡을 수도 없으며 잡고 싶어도 머물러 있지 않은 1년이란 시간이 이렇게 지나갑니다. 새해라는 타이틀을 갖고 새롭게 시작을 알리는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시간이 흘러가며 새해가 바뀌어도 아픔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한동안 감기라는 바이러스에 노출되어 온몸이 아파 혼자서 견뎌내야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무기력하게 약을 먹고 누워있는 게 전부였습니다. 온몸이 쑤시고 머리가 아파 정상적인 활동이 불가능했습니다.


 약을 먹어도 결국 쉬는 게 답이기에 일을 마치면 대부분의 시간이 누워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면역력이 떨어져 바이러스가 침투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감기가 나아가는 시점에는 오히려 치유력이 면역력을 키우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아프지 않고 어찌 성장할 수 있을까요! 아프지 않고 어찌 삶을 논할 수 있을까요! 아프지 않고 어찌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갈 수 있을까요!


아프다는 말이 싫지만 아프다는 말이 우리를 더 강하게 해 주는 말입니다. 아픔이 존재하는 것이 삶이기에 우리는 그 아픔을 이겨냅니다. 아픔이 더 나은 미래를 말해주기에 우리는 그 시간을 견뎌냅니다.


나라가 혼돈스럽고 아파합니다. 바르지 못한 행동들에 의해서 썩어 있는 치부가 드러나고 면역력이 약했던 곳이 곪아 터져 버렸습니다. 하지만 치유의 힘들이 아픔을 극복하려 합니다. 다시 면역력을 키워서 몸 상태가 제자리로 돌아오도록 힘을 내고 있습니다. 감기 바이러스와 신체가 싸워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결국 극복해 냅니다.


쓰러지고 아파하고 답답하게 느껴지지만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아프기에 우리는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신체는 면역체계를 강화하고 있는 과정으로 이 모든 것을 받아들입니다.


내일의 도약을 위해 신체를 조금씩 펴고 있는 과정입니다. 시간이 바람처럼 흘러가지만 자신에게 쌓이는 내공은 바람이 아닙니다. 흔적이고 역사가 되어 주며 그 역사는 우리가 살아가는 토양이 되어 줄 것입니다.


새해를 맞이합니다.


훌쩍 지나간 한 해가 아쉽습니다. 시간의 빈 공간들을 더 채웠어야 하는데 흘려보낸듯합니다. 바람이 그 공간을 채워준 듯해서 더욱 아쉽습니다. 채울 수 있는 것들이 많은데도 그냥 쳐다보며 흘려보낸 듯합니다. 그래서 한 해가 지날 때 아쉬움이 많이 남나 봅니다.


아참 해가 떠오릅니다. 어제의 해가 오늘의 해와 동일합니다. 해는 그 자리에 있음에도 지구의 회전이 해를 움직이는 것입니다.  해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변함없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새롭지 않지만 우리는 그런 변함없는 해에게 새로운 의미를 부여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새벽부터 부지런히 움직여 일출을 보러 갑니다. 평상시에 하지 않던 일출을 보려 합니다. 새벽부터 일어난 많은 사람들이 일출을 보며 자신에게 다짐합니다. 새해에는 더 좋은 일들로 가득하길 기대하며 소원을 빌기도 합니다.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하루의 숫자가 바뀌었을 뿐입니다. 우리의 삶은 이어져있고 연속되어 있습니다. 어제의 아픔이 오늘의 흔적이 되고 어제의 기억이 오늘의 추억이 되며 어제의 시간은 오늘의 역사가 되어 우리의 현재를 만들어 줍니다. 서로가 단절이 아닌 이어짐의 연속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 합니다.


https://brunch.co.kr/@woodyk/1017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삶의 중요한 행위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을 밖에서 보면 얼마나 무의미하고 보잘것없게 흘러가고 안에서 갖는 느낌으로도 얼마나 숨 막히고 제정신이 아니게 흘러가는지는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이다. 이들의 삶은 빛바랜 동경이자 괴로움이고 보잘것없는 일련의 생각을 품고 인생의 사계를 거치며 죽음을 향해 꿈결처럼 허우적거리며 걸어간다. 이들은 태엽이 감기고는 왜 그런지 알지도 못하고 가는 시계의 태엽 장치와 같다. 한 인간이 태어날 때마다 인생이라는 시계의 태엽이 새로 감기는 것인데 이는 이미 수없이 연주된 손풍금 곡을 악절마다 소절마다 보잘것없게 변주하여 거듭 되풀이하기 위해서다.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중>


삶의 의미가 사라지면 인간은 희망도 열정도 사라지게 됩니다. 우리가 사는 것에 대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늘 가슴속으로 새겨 보며 삶의 의미를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해돋이를 보며 새해의 의미를 새기는 행위가 요식행위일지라도 우리는 그렇게라도 자신의 삶을 다듬어 나가야 합니다.


해의 의미보다 자신의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행동하는게 중요하지만 새해의 하루라도 삶의 의미를 해에 의지하는 행위도 좋은 방법입니다.


삶이 아프고 슬프고 괴롭고 답답해도 그건 우리의 삶입니다. 그 삶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자신이 사라질 때 그 모든 감정들은 사라집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간들이 감정들의 혼합체입니다. 모든 과정이 혼합되어 자신이 존재하는 것이고 존재한다는 것에 우리는 어떤 의미를 만들어갈지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감기의 아픔이 사라지기도 전에 새해를 맞이합니다. 일출을 보며 새해의 다짐은 하지 않습니다. 그냥 조용히 방에 앉아 작은 글 하나를 써 봅니다. 삶의 의미가 올 한 해에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지 궁금도 합니다. 미리 알 수 없는 시간들을 생각해 보지만 분명한 것은 시간은 흐르고 또 다른 새해를 맞이하는 의식은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나'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 존재할 때 시간은 의미 있는 것입니다. 다치고 아프고 힘들어도 결국 '나'라는 존재가 살아 있을 때 시간은 의미 있는 것입니다. 시간의 흐름을 아쉬워하는 것도 '나'라는 실체가 존재하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나'의 변화가 시간을 바꾸고 의미를 만듭니다. '나'에게 다가오는 변화의 방향을 우리 스스로가 어떤 방향으로 키를 잡을지가 중요합니다.


아프면 아파하며 쉬기도 합니다. 그리고 다시 앞으로 나갈 것입니다. 삶은 그냥 머물러 있지 않을 것입니다. '나'라는 존재를 잊고 살지는 않으려 합니다.  내려놓는 연습도 하려 합니다. 집착에 의한 고통보다는 삶의 가치와 의미를 다듬고 이해하는 시간을 만들어 보려 합니다.


남의 삶이 아닌 '나'의 삶을 만들어 가려합니다. 정신보다는 몸을 쓰며 혼돈스러움을 이겨내 보려 합니다. 차가운 듯 하지만 뜨겁고 가벼운 듯 하지만 무거운 그런 모습으로 살아 보려 합니다. 미약하지만 거룩한 '나'의 삶을 만들어 가려합니다. 한 발 내딛지만 두 발이 되고 수없는 발자취가 되는 그런 한 해를 만들어 보려 합니다.


한해의 기운을 모아 '나'라는 곳에 집중해 보려 합니다. 모두가 자신의 삶을 응원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결국 남은 진실은 시간이란 순리대로 살든 거꾸로 살든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단지 그 인생을 살아갈 뿐이다... After all, the truth is that time is irrevocable, whether it lives according to the principle or the reverse. We just live the life...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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