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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DYK Jul 21. 2021

서른, 세상 밖으로 뛰어오르고 싶다.

안갯속에 갇힌 앵무새

하루를 하루라 생각하면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계절이 바뀌고 12월이 가까워지면서 “벌써….”라는 한 숨 섞인 말이 입에 맴돕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우리의 시간을 상대적으로 길게도 그리고 짧게도 느낄 수 있도록 할 수 있다 합니다.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흘러간다는 생각을 할 때는  간혹 무기력해지기도 합니다.


 안 보던 친구들이 보고 싶고 괜히 잘 있는 친구들에게 전화해서 보고 싶다는 말을 던지기도 합니다. 자신의 무게가 버겁게 느껴지니 누군가에 의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역시 친구들은 든든한 버팀목입니다. 


하지만 결국은 제 마음이 문제입니다.


 마음의 흔들림이무기력함은 하루가 지나고 이틀 지나고 며칠이 지나면서 아예 이럴 때는 그냥 무기력해지고 아메바가 돼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포기 가까운 자위를 합니다.

 

영화를 보다 보면 자신의 공포감이 최고조로 오를 때가 앞이 껌껌하거나 외딴곳의 코너를 돌 때 미지의 물체가 갑자기 나타날 때입니다.


오히려 그들의 형체가 들어 나면 공포감은  작아집니다. 인생의 모습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앞 날이 불명확하기에 자신의 불안감은 더욱 고조되는 것입니다. 목표가 작아지고 미래에 대한 자신이 없어질 때 인생에 대한 공포감은 더욱 극에 달아는 것입니다. 막상 그것이 명확히 드러나면 현기증이나 공포감은 사라질 것입니다.


 지금 제가 방향을 잃고 어딘가 헤매고 있는
공포에 사로잡힌 존재인 듯합니다.


20대 때는 숫자는 숫자일 뿐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한 해가 지나가는 것도 단순히 숫자의 변환일 뿐이라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그런 생각은 변하지 않았지만 30이란 낙인을 받고 보니 제 자신에 대한 책임과 의무감이 더욱 커져 부담으로 느껴집니다.


 그리고 35라는 나이를 생각해 봅니다. 인생의 분기점이 될 수 있는 나이가 35란 숫자라 생각합니다. 40과 30의 중간 기착점입니다. 이것도 단순한 수치이지만 기준점을 설정하는 것은 방향을 설정하는 것만큼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내 몸속에는 아직 뜨거운 열정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 열정이 식기 전에 어디든 달리고 싶고 날아오르고 싶습니다. 요즘은 새처럼 날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들만의 고독과 고민이 있겠지만 그래도 난다는 말은 저의 가슴을 벅차게 합니다. 뭔가 얽매인 매트릭스에 그냥 그렇게 틀 속에 갇힌 앵무새처럼 종알종알하고 있는 나를  던져 버리고 싶습니다. 평생을 같은 틀 속에 웅크리고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은 나의 뜨거움과 예술, 자유를 조금씩 갉아먹고 있는 듯합니다.


어디론가 떠나가야 할까요?


리빙스턴의 갈매기처럼 자신의 철학과 내공을 쌓아 다시 돌아올 준비를 해야 할까요.?


인생은 공수래, 공수거 라 합니다. 올 때 아무것도 없이 와서 갈 때 아무것도 없이 사라진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 여백의 공간은 열정과 자유, 희망, 그리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니 더욱 열심히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자신의 가치 혼돈 속에서 본질을 찾기 위해 오늘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 고민이 너무 길지 않길 바라며 도올 김용옥 교수 강의에 나온 말을 던지고 싶습니다.


 acting is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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