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하거나 우울할 때도 길을 걷는다. 길을 걸을 때 걷는 것에만 집중한다. 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머릿속 엉켜있는 실타래가 조금씩 풀리는 느낌이 든다. 걷는다는 게 별 것 아니듯 하지만 걷는 거에 집중하고 있으면 뇌에 있는 혼돈을 조금씩 사라지게 하는 명상과도 같은 효과를 준다.
걷는 것에 집중하면 다리가 아픈지 몸이 피곤한지 느끼지 못한다. 이미 쓸데없는 실타래가 내 머릿속을 채우고 있어 피곤함이 나를 뒤엎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걷는 것은 피곤을 개운함으로 전환해 준다.
시간과 계절에 따라 걷는 길도 느낌도 다르다.
새벽에 걷는 시간은 어둠의 고요함에서 새로움의 시작이 눈 뜨는 환함의 세계로 향하고, 저녁에걷는 것은 들떠있던 마음을 침착한 어둠으로 다가가는 느낌이다.
봄은 걸음에 신바람을 불어넣고냉이 향이 풍기는 길을 만들어주고 여름은 땀으로 신체를 활기차게 만들어주며 가을은 겨울의 문턱에 낙엽의 아쉬움을 전달한다. 겨울은 우리의 신체를 움츠려 들게 하지만 오히려 움츠려 든 신체에 기지개를 켜게 한다.
걷는다는 것은 사유를 통한 나만의 명상법이다.
걷는 것은 지루하고 우울한 그리고 고민의 실타래를 풀 수 있는 진실한 시간을 우리에게 제공해준다. 걷기는 나의 인생과 같이 가야 할 인생 친구와도 같다. 걷는다는 것은 잡념을 없애고 지금에 집중하고 심신에 몰입한다는 것이다.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걸을 수 없음에 답답해하고 걸을 수 없음에 나를 잃어 간다고 인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