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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DYK Jul 04. 2024

혼자되는 법 배우기_50대 혼자 사는 일상

혼자 되는 법을 배우자

은둔하는 생활 방식이 마음의 평화에 아주 유익한 이유는 누군가의 시선 속에 살지 않고 다른 사람의 생각에 휘둘릴 필요가 없어져 자기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


주변 지인분들이 혼자 살고 있는 게 외롭지 않냐고 묻습니다.


일 때문에 가족들과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보며 외롭지 않을까 걱정을 해 줍니다.


우리에게 진짜 외로움이라는 무엇일까요?


법정스님의 '혼자 사는 즐거움'이란 책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홀로 사는 사람들은 진흙에 더럽히지 않은 연꽃처럼 살려고 한다. 홀로 있을 때 전체인 자기의 있음이고 누구와 함께 있을 때 그는 부분적인 자기이다.”


“홀로 있음이란 나 자신과의 온전한 대면이다. 속 뜰의 본래 향기를 은은히 피어오르게 할 수 있는 소중한 때다.”


https://brunch.co.kr/@woodyk/515



사이토 다카시 교수의 '혼자 있는 시간의 힘'이란 책에서는 혼자 있는 시간들을 이렇게 말합니다. 


"기회는 혼자 있는 순간에 온다. 모두와 잘 지내기 위해 노력할 필요는 없다. 함께 있다고 다 좋은 영향을 주고받는 것은 아니다. 끝까지 나를 믿어줄 사람은 나뿐이다. 자신의 상태를 상대와 비교하지 말고 절대적으로 파악하라."


외로움은 주변 사람들과 단절되어 혼자 있는 시간들을 슬퍼하거나 두려워하는 심리적 불안 상태일 수 있습니다. 기분이 나쁠 때도 외로울 수 있고 기분이 좋을 때도 외로울 수 있습니다. 기분이 나쁠 때는 내 곁에 나를 위로해 줄 사람이 있었으면 합니다. 기분이 좋을 때는 나와 같이 기쁨을 나눌 사람을 갈망합니다.


외롭다는 것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형성되는 말입니다. 같이 있어도 외로움을 느끼고 공허함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상대에 따라 사람이 곁에 있어도 외로울 수 있습니다. 혼자 있다고 해서만 외로운 것은 절대 아닙니다.


혼자 외지에 나와 일을 하고 있다는 게 외롭지는 않습니다. 지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개인마다 상황들은 다르기에 혼자라고 해서 반드시 외로운 것은 아닙니다. 가족과 떨어짐이 외로움은 아닙니다. 미래 언젠가는 가족들과도 헤어질 날 들이 도래합니다.


살아 있는 누구에게나 죽음이란 단어는 내 곁에 같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때가 언제일지 모를 뿐입니다. 그렇다면 언제 가는 가족과 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지금 떨어져 있다고 그것이 외로움을 주지는 않습니다. 일하는 곳에도 동료들이 존재하고 사람들이 존재하기에 외로움이라는 단어가 크게 작용하지 않습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기에 나 자신을 더욱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도심의 번잡함과 치열함이 존재하는 곳에서 내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을 갖지 못했습니다. 지친 몸으로 늦은 시간에 집으로 들어갈 때의 외로움이 더욱 컸던 것 같습니다.


혼자라는 시간이 왜 중요한지 알 수 있을 듯합니다.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자연의 소리를 듣다 보면 오히려 외로움이란 끼어들 시간이 적어집니다. 자연의 생동감이 사고를 자극하고 신체를 움직이게 합니다. 책을 읽고 있으면 깊은 대화를 하게 됩니다. 내가 살아 가는 길들이 더 선명해지는 듯합니다. 글을 쓰고 있으면 희미했던 생각들이 정리가 됩니다.



외롭지 않습니다.


혼자 사는 것이 외로운 것은 아닙니다. 외로운 것은 자신이 혼자 있다는 것을 그냥 외롭다고 말하는 것이 외로움의 시작인 것입니다. 본인이 해야 할 것들을 하며 자신을 되돌아보는 과정의 시간이 존재한다면 외로움이라는 감정의 아픔이 자신을 적게 타격을 줍니다.


혼자 있는 새벽 시간은 너무 고요하지만 자연의 소리는 계속 저에게 다가옵니다. 새들과 곤충 소리들이 적막 속에서도 자신들의 활동을 보여주려 합니다. 그 소리가 적막의 시간을 깰 때 살아 있음을 감지합니다. 작은 소리들이지만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조용히 자신을 바라보며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내 감정을 하나의 글로 써 내려갈 수 있음에 너무 행복합니다. 외로움이 찾아오기도 전에 저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써 오던 습관들이 지금도 계속되지만 그런 글들이 모여 나 자신의 내면을 바라볼 수 있는 역사가 됩니다.


방 안에 널브러진 책들을 집어 읽습니다. 작은 글씨체들이 모여 한 권의 책을 만듭니다. 작가의 생각들이 담긴 소중한 시간이 모여진 것들입니다. 새벽 시간 혼자 있을 때 펼쳐진 책 한 장에 담긴 깊은 문구를 발견할 때는 감동이 몰려오기도 합니다.


메멘토 모리와 아모르파티. '죽음을 기억하라'와 '운명을 사랑하라'는 죽음과 삶이라는 상반된 의미의 조합이지만 결국 같은 방향을 바라봅니다. 내가 언젠가 죽을 것이니 살아 있는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하라는 것이고, 그러니 지금 네가 처한 너의 운명을 사랑하라는 것이죠. 저는 이런 태도가 자존 같습니다. 어떤 위치에 있건, 어떤 운명이건 스스로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것, 사실 많은 사람들이 자존을 말합니다. 그런데 진짜 자존을 지키며 사는 사람들은 드뭅니다. <여덟 단어_박웅현>


이렇게 혼자라는 시간이 아깝지 않고 살아 있음에 감사하며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어 외로움이라는 단어는 비집고 들어오지 못합니다. 하지만 제가 살아있고 내 주변 가족과 지인들이 점차 사라질 때는 외로움이 다가올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청년의 방황할 시기에는 외로움이라는 것을 많이 느끼기도 했습니다. 혼자 있는 시간을 갖으며 미래를 고민하고 혼자 시간을 외로움이란 단어로 채워가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나이가 들어가며 어린 시절 혼자 방황했던 시간들이 지금의 단단함과 나만의 철학을 만들어 주었고 시간이 쌓인 지혜들이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마음속에서 많이 지워버렸던 것 같습니다.


외로움이 존재한다고 해도 그건 아직 내 가슴속에 살아 있음을 말하는 것이고 그 감정들이 온다 해도 지금 이 시간들을 감사할 수 있을 듯합니다.



외로움은 혼자라서 오는 것이 아닌 자신을 되돌아보지 않으려는 것에서 오는 것입니다. 자신이 혼자라고 해도 혼자의 시간이 감사함의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혼자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싶습니다.


'외롭다'라는 말은 형용사가 아니다. 활발히 움직이고 있는 동작 동사다. 텅 비어버린 마음의 상태를 못 견디겠을 때에 사람들은 '외롭다'라는 낱말을 찾는다. 그리고 그것을 발화한다. 그 말에는 외로움을 어찌하지 못해 이미 움직여대는 어떤 에너지가 담겨 있다. 그 에너지가 외로운 상태를 동작동사로 바꿔 놓는다. <마음사전_김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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