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것들에 대하여]

1장 [시간] 3.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하루치의 감정들

by 박동욱

그날 나는 화가 났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참을 수 없을 만큼 속에서 들끓는 무언가가

가슴을 꽉 틀어쥐고 있었다.

어떤 말에, 어떤 표정에,

아니면 그냥 그 사람의 존재 자체에.

나는 외면했다.

단칼에 돌아서듯,

말도 남기지 않은 채 그 자리를 떠났다.

그게 나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 같았다.

감정을 꺼내는 일은 늘 나를 더 지치게 했으니까.

그 뒤로 시간이 흘렀다.

생각보다 오래.

정확히 말하면 2년.

잊고 살았던 건 아니다.

생각이 안 난다고 해서

감정까지 사라진 건 아니니까.

어느 날 문득, 아주 우연히

그 사건이 다시 떠올랐을 때,

놀랍게도 나는 화가 나지 않았다.

대신 이상하리만치

그날의 공기와 온도가 선명하게 기억났다.

나는 분명히 화를 냈지만,

그 감정의 바깥엔 더 두터운 감정이 있었다.

서운함.

실망.

그리고, 어쩌면 기대.

그 사람에게 기대하지 않았다면

그 상황에 진심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렇게까지 상처받지 않았을 것이다.

화를 낸다는 건

마음을 써버린 일이었다는 걸,

두 해가 지나고서야

조금 알게 되었다.

그때의 분노는

사라졌다기보다,

다른 이름을 달고 내 안에 자리 잡았다.

사소한 일 같지만,

그 감정을 꺼내 들여다보는 일은

결코 사소하지 않았다.

나는 이제 안다.

시간은 모든 걸 지워주진 않지만

감정을 정리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를 준다는 걸.

그 언어가 생긴 날부터

나는 조금 더 단단해졌다.

그리고 조금 더 부드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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