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후각 메커니즘
이 저술은 2016년 정부(교육부)의 후원으로 한국 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This work was supported by the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 Grant funded by the Korea Govenment
이 글에 대한 활용 방안은 저술한 내용에 모두 포함되어 있다. 후각 연구와 아울러 현재 유럽을 중심으로 빠르게 전개되고 있는 후각 도시디자인, 후각 예술, 전자코, IT와의 연계, 후각 치매진단 프로그램, 후각 교육, 게임, 의료, 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활용에 대하여 밝혀두었다. 이미 3차 후각 혁명은 시작되었고, 4차 산업혁명과 맥을 같이하여 후각은 4차 산업혁명의 중요한 화두가 될 것으로 사료된다. 그래서 이런 중요한 감각인 후각을 깨우고 알리기 위해 기초연구 자료들을 수집하고 연구하여 이 책을 저술하게 된 것이다.
*출처 : 후각 혁명, 송인갑, 2020
후각은 인간에서 가장 먼저 생기는 감각이다.
임신 12주가 되면 엄마와 태아 간의 소통 통로로서 감각 중 후각이 가장 먼저 생성이 되며 엄마가 먹는 음식이 양수를 통해 태아의 후각을 자극하게 되는데 이는 가장 본능적이고 직관적인 감각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후각은 또한, 시상thalamus을 거치지 않고, 바로 편도체amygdala와 연결되는데 이는 해부학적으로 대뇌와 직접 소통을 하는 유일한 감각이다. 다른 감각의 경우 ‘시상’을 거치게 되는데 여기서 여러 감각이 통합되고 어떤 감각이 체내로 들어왔는지 의식적으로 인지awareness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후각의 경우 시상을 거치지 않고 바로 감성 학습emotional learning의 핵심 기관인 편도체에 바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의식하지 않고도 감성에 영향을 주게 되는 매우 강력하고 직관적인 감각이다.
후각 외의 다른 감각의 경우 외부에서 들어오는 인식을 상황에 따라 의식적으로 차단할 수 있지만 후각은 의식적 차단이 불가능하다.
감성 학습의 가장 핵심적 대뇌 기관은 변연계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편도체이다. 좌측과 우측에 복숭아씨 모양의 작은 대뇌 기관으로 편도체는 크게 3가지 경로에 영향을 준다.
먼저 안와전두엽orbitofrontal cortex에 영향을 주어 감정 상태에 따른 판단과 행동을 하는데 도움을 준다. 둘째로, 해마hippocampus는 편도체 바로 옆에 있는 대뇌 기관으로 장기 기억으로 저장되는데 매우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시상 하부hypothalamus로서, 예를 들어 편도체 정보가 불안하다고 판단을 하면 심박동 수가 올라가거나 식은땀이 나는 등의 신체 반응을 나타내게 된다.
후각신경세포는 대뇌피질과 변연계에 속해있는 해마, 편도체와 연결되어 있으며, 이 중 편도는 감정, 해마는 학습의 역할을 한다.
후각으로 엮어진 기억은 작은 단서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회상될 수 있으며, 향의 효과는 순간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생각할 시간을 갖기도 전에 감정을 먼저 자극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향을 인지했을 때 특정한 순간에 대한 기억과 감정을 동시에 연상시킬 수 있는 것이다.
공기 중에 떠돌아다니는 냄새 분자는 코로 들어가서 코 점막에 붙는다.
코 점막은 후신경구olfactory bulb와 연결되어 있는 비강 내부에 위치해 있으며 점막은 다른 감각신경세포sensory neuron와 후각수용체olfactory receptor 주1)를 포함하고 있다. 후각수용체라 불리는 특별한 종류의 화학 수용체를 활성화시키는데, 수많은 후각수용체들은 300-500여 개의 냄새를 구분할 수 있다. 이러한 다양한 냄새는 7가지의 기본 묘사로 응축되어 구분되는데 장뇌, 머스크, 꽃 향과 페퍼민트, 에테르, 썩은 냄새와 자극적인 냄새를 말한다.
사라 다우디Sarah Dowdey 주2)에 의하면 사람들은 새로운 냄새를 처음으로 맡았을 때 새로운 냄새와 특정 사건이나 사람, 사물, 심지어 어떤 순간과도 연관시킨다.
그래서 우리의 뇌는 염소 냄새에 수영장을 떠오르게 하고, 백합 향기를 장례식장과 연결하듯이 냄새와 기억을 연결시키려고 한다.
우리는 대부분의 새로운 냄새를 어렸을 때 맡았기 때문에 성인이 된 후 맡게 되는 냄새는 종종 어릴 적 기억과 연관된다. 심지어 태어나기 전의 냄새와 감정과도 연결고리를 만든다.
아이가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맡았던 후각 기억은 그대로 남아 새로 접한 냄새와 접점을 만든다.
출생 후 특정 냄새에 대한 선호 경향을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후각 기억이 유일하게 가지는 다른 기억 시스템과의 차이점이 있는데, 이 것은 변연계와 가장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는 감각 형태이기 때문에 일생동안 지속되는 기억의 다면적인 추적에 있어서 매우 유리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장단기 구성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는 다른 감각 방식과는 달리 오직 장기기억만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최근 연구에 따르면 단기 후각 기억도 존재하는 것으로 발표되었다. 측두엽 손상이 있는 환자의 경우 후각 기억의 장애가 관찰되었는데 적은 종류의 냄새를 많은 종류의 냄새보다 더 잘 기억하는 것을 볼 때 후각의 단기 기억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어떤 이는 후각 기억은 후각자극에 언어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주3) 하지만 후각 기억은 단기 기억보다는 장기기억에 의존도가 높다.
과학자들은 냄새에 의해 유발된 기억이 시각적인 선명도와 관련된 영역에서 더 많은 뇌 활동과 관련이 있음을 발견했다. 불행히도, 냄새는 특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가진 사람들에게서 부정적 감정의 유력한 원인이 될 수 있다. PTSD로 진단된 개인에 대한 3 가지 임상 사례 연구를 실시했는데, 한 환자는 디젤 냄새를 맡았을 때 종종 혼란스러운 기억, 죄책감, 메스꺼움을 경험했다. 이러한 비자발적인 반응으로 인해 디젤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상황을 적극적으로 피해야만 했는데, 냄새의 기억은 그 냄새로 인해 상황과 관계없이 냄새가 존재한 기억을 떠오르게 하기 때문이다.
한때 그는 이웃에서 일어난 화재로 인해 발생한 디젤 냄새가 베트남에서의 사고 기억을 즉시 떠오르게 한 적이 있었다. 그 냄새로 인해 베트남에서 경험하였던 불타는 차량, 불길과 연기를 생생하게 볼 수 있었으며, 특히 불에 타 죽어가는 동료 병사를 구할 수 없었던 30 년 전의 자신의 모습에서 오는 죄책감과 무력함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그 후에도 그에게 디젤유 냄새는 언제나 베트남의 경험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게 하였다. 주4)
그렇기때문에 이 환자의 경우 화재 장면(시각)이나 사이렌 소리(청각) 등은 의식적으로 통제를 함으로써 불안을 경감시킬 수 있지만 바비큐 냄새(후각)가 코로 들어오면 통제 불가능이 되면서 극도의 공포감을 느낄 수 있다.
이들의 치료를 위해 중요한 요소는 다른 감각 자극보다 대상 냄새를 상쇄시킬 수 있는 다른 좋은 향기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러한 PTSD와 관련된 냄새는 한때 아무렇지도 않게 했던 행동을 불가능하게 할 수도 있다. ‘바비큐 효과’라고 불리는 현상이 있는데 소방관이나 구조요원 또는 참전 용사는 그릴에 구운 고기 냄새를 맡으면 시체 타는 끔찍한 기억이 떠오르므로 한동안 야외에서 바비큐 파티를 하지 못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냄새는 PTSD를 유발하는 최악의 자극일 뿐 아니라 치료하기도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PTSD 환자들에게 외상을 촉발하는 냄새를 제공하기 위해 체계적 둔감법systematic desensitization 주5)을 권하기도 한다. 주6) 이것은 냄새의 유사성으로 인한 후각기억인 ‘후각의 환각’과는 달리 이러한 현상을 동일한 냄새로 인한 기억의 다양함 -특히 냄새로 인한 스트레스나 외상-을 말하는 것으로 ‘후각 기억의 오류’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후각 기억의 메커니즘은 후각 환각과 함께 PTSD 치료에 탁월한 효과를 가져다줄 것이다.
우리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자신의 시각에 가장 의존할 수 있도록 진화해 왔다. 하지만 곧 시각만큼 냄새도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냄새는 기억으로 존재하며, 그 기억은 냄새로 인해 파노라마처럼 과거의 상황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후각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후각의 메커니즘을 이해해야 한다.
시각이나 청각 정보가 시상을 거쳐 편도체로 가는 것과는 달리, 후각 정보는 인간 뇌의 시상을 거치지 않고 바로 편도체로 직행한다. 편도체는 감각을 조절하고 기억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감각기관이다.
따라서 사람은 어떤 특정한 냄새를 맡게 되면 생각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기억이 떠오르게 된다.
그래서 후각을 기억의 감각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냄새보다 기억하기 쉬운 것은 없다고 강조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과거에 맡았던 어떤 냄새가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면, 그 당시의 모든 기억이 떠오르게 되며, 그래서 냄새는 오랜 세월 동안 감추어져 있던 기억이라는 지뢰를 폭발시키는 뇌관인 셈이다. 기억하지 않아도 떠오르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후각으로부터 오는 곳이기에, 후각은 다른 감각과 달리 해석자 없이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것이다.
1) 원거리에서 확산되어 오는 화학 물질에 대하여 후각을 일으키는 수용체. 다음백과
2) Dowdey, Sarah. Discovery Health Smell and Memory. How Smell Works. Web. 26 April 2011.
3) White and Treisman의 시간베이스 측정
4) Amanda White, “Brain anatomy may explain why some smells conjure vivid memories and emotions”. Jan 12, 2015.
5) 여러 불안장애를 해결하는 데 사용되는 행동치료 요법으로 불안이나 회피의 대상이 되는 자극에 조금씩 경험의 강도나 시간을 늘려감으로써 불안반응을 줄여가는 방법이다.
6) 레이첼 허즈(2013), 욕망을 부르는 향기, 장호연 역, 뮤진트리, 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