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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jin Park Feb 28. 2019

2월, 정성껏 가뿐하게 성숙해간다는 것

반복되는 일상에 숨이 막힐 때 <주말엔 숲으로>

30대 중반의 비혼 여성 하야카와가 시골에서 살게 된 것은 거창한 이유에서가 아닙니다. 시작은 ‘되는대로 해보자, 한번 해보지, 뭐!’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갑자기 밭을 일궈 자급자족의 삶을 꾸리거나, 택배의 편리함을 포기할 생각도 없습니다. 그래서야 무슨 시골살이냐고, 친구들은 의아해하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자신에게 부담이나 무리가 된다면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하야카와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도시에서 하던 번역 일을 지속하면서, 숲을 충분히 걷고, 마을 사람들과 조금씩 접점을 넓히고, 무엇보다도 그때그때 생각나고 느끼는 것들을 골똘히 다듬으면서 살아보는 중입니다.


주말엔 종종 친구인 마유미와 세스코가 놀러와, 하야카와와 함께 숲을 걷습니다. 하야카와는 친구들에게 풀과 새의 이름, 헤드라이트를 쓰고 밤길을 가거나 호수에서 카약을 타는 법을 가르쳐줍니다. 그리고 간간히, 도시에서는 몰랐던 깨달음들을 들려줍니다. 시골에서 살기로 결심했을 때처럼,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가뿐하게요. 

그런데 그 작은 것들이 도시로 돌아간 친구들의 일상 속에서 번뜩이는 순간이 있습니다. 여행이 좋아 여행사에 취직했지만 손님들을 상대하다보니 사람이 싫어진 세스코는 ‘그만둘까’ 하는 마음일 때 하야카와로부터 들었던 “헤드라이트로는 발밑이 아니라 2~3미터 앞을 비추며 걷는 거야”라는 말을 떠올립니다. 마유미에게는 “긴 카약은 똑바로 나가고 짧은 카약은 작게 회전할 때 편리하다”며 “어떤 것을 탈 것인지는 상황에 맞게 선택하는 게 좋지 않을까”라는 이야기가 내내 힘이 됩니다. 


마스다 미리의 만화는 자신의 삶을 정성껏 산다는 것이, 대단하거나 심각하게 사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마스다 미리의 주인공들은 ‘인간은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걷는 것만은 아니야’ 같은 제법 어른스러운 생각을 하다가도 나무 끝에 삐죽 솟아나온 두릅 싹을 발견하면 튀김해 먹을 생각에 욕심껏 싹을 뜯곤 하는데, 이런 ‘모드 전환’에서 느껴지는 적당한 균형감이 그들을 한껏 사랑스럽게 만듭니다. 30대 중반이 되어도 ‘정나미 떨어지는 놈, 꼴 보기 싫은 놈, 거추장스러운 놈’들 때문에 괴롭고, 가끔은 내 존재 자체가 업신여김 당한 듯한 기분에 처참해지는 건 여전하지만 “모르는 세계가 가득하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 어른이 된 것 같다”며 그리 대단하지도 심각하지도 않은 자신의 삶을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아량은 생겨서 다행이라고 여기는 그들을 보면서 성숙함이란 저런 것일까,하고 생각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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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매거진에서 소개하는 책은 서울 은평구 대조동에 위치한 동네 카페 '다-용도실'@da_yongdosil 내 공유 서가 '멈포드의 서재'@mumford_salon 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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