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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jin Park Apr 28. 2019

4월, 나란히, 진심으로 걸으며 넓어지는 일

나란히 앉는 마음을 알고 싶을 때 <슈베르트와 나무>

시각이 아닌 다른 감각으로 나무를 본다는 것은 무엇인지 궁금했던 나무 인문학자와, 평생 나무로 만든 악기를 다루어 왔으면서도 정작 일상에서는 나무가 ‘장애물’에 불과했던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가 함께 나무를 ‘보러’ 떠납니다. 사계절 동안 도시와 시골, 수목원을 오가며 나무를 만지고, 안고, 듣고, 알아간 이들의 여정이, 생각지도 못한 것을 얻었고, 서로의 삶의 경계가 조금씩 넓어지는 것을 도왔던 과정이 이 책에 차곡차곡 담겨 있습니다. 


나무는 나뭇가지와 잎으로 구성된 하나의 형태일 뿐 아니라, 봄이면 뿌리로부터 물을 끌어올려 온몸으로 퍼뜨리는 ‘박동’이기도 하고, 바람에 부대끼는 바스락 소리이기도 하며, 꽃과 열매의 촉감과 냄새이기도 합니다. 나무 인문학자 고규홍에게는 마을의 이야기이기도 하며,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김예지에게는 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온도이기도 합니다. 

나무에 집중하는 시간은 점점 서로를 배려하는 시간으로 번져 갑니다. 여느 때보다 고단한 나무 탐사를 끝내고 석양 앞에 선 인문학자는 피아니스트에게 해가 지는 풍경을 ‘읽어’ 줍니다. “태양이 남긴 붉은 빛은 아직 우리 곁에 남아 있어요. 물 속에서 여전히 우리를 비춰주는 거예요. 저 황홀찬란한 붉은 빛이 느껴지시나요?” 피아니스트는 자신만의 보는 방식을 곰곰이 정리해 들려줍니다. “무언가를 자세히 알고 싶으면 제 방식대로 감각을 동원하지요. 관심과 성의뿐 아니라 그 대상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한꺼번에 동원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 느낌과 생각을 통해서 이전까지 내가 알았던 것과 지금의 이것을 비교하게 돼요.” 


인문학자는 그렇게 ‘본다’와 ‘사유한다’가 같은 말임을 이해하게 되고, 피아니스트는 나무로부터 사람 사는 일의 이치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지켜본 독자는 곁을 만드는 일이란 이렇게 누군가와 나란히, 진심으로 걸어보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지요.


이 페이지, 읽어보세요!


나무에서 무슨 소리를 뜨는가. 생뚱맞게 들리는 이야기일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에는 오감으로 전해오는 분명한 신호가 있다. 소리도 있다. 천둥처럼 강렬할 수도, 미풍처럼 고요할 수도 있다. 겨우내 긴 잠에 들었다가 봄 햇살 따스해지기 시작하면 나무들은 뿌리로부터 물을 끌어올린다. 물 끌어올리는 소리는 나무마다 차이가 있지만 거의 모든 나무가 미세하게 드러낸다. 이른 봄에 청진기를 나무줄기에 대어보면 물오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마치 사람의 심장에서 온몸에 맑은 피를 밀어내는 쿵쾅거림과 같은 소리다. 특히 다른 나무보다 줄기 안에 물을 많이 품는 단풍나무 종류가 들려주는 생명의 고동 소리는 가히 우렁차다 할 만하다.

줄기에 오르는 물소리뿐 아니다. 나무는 제 향기와 빛깔에 따라 다른 소리를 가진다. 바람이 몰래 다가와 잎을 스쳐 지나는 소리가 나무마다 다를 뿐 아니라, 나뭇가지가 서로 부딪는 소리 또한 분명히 다르다.(52~53)


천천히 김예지를 탐스럽게 피어난 능소화 꽃무리 앞까지 이끌어 세웠다. 내가 먼저 눈으로 나무줄기를 탐색한 뒤, 적당한 부분으로 김예지의 손을 이끌었다. 그녀의 손이 닿는 순간 나무가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았으며, 김예지는 손으로 나무를 바라보았다. 나무 앞에서 나는 그녀의 눈이 되었고, 그녀는 나의 귀와 코가 되었다. 둘이 제가끔 따로 서는 건 촉각뿐이다. 시각을 위해 나는 최대한 귀와 코와 혀를 닫고 김예지의 감각을 따라야 하고, 김예지는 나의 시각을 따라야 한다. 시각 중심으로 내가 그동안 살펴온 적잖은 나무 이야기에 그녀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67)


소리뿐 아니라 다른 게 더 있어요. 그 느낌을 말로 표현하기는 어려운데, 방향을 달리하면 온도의 차이를 느낄 수 있지요. 바람도 달라요. 막힘없이 그대로 흘러가는 쪽과 나뭇가지에 부딪치며 흔들리는 움직임도 다르게 느껴져요.”

느티나무 가지를 스치는 바람 소리를 타고 가을이 우리의 목덜미로 스며들었다.(190)     


음악의 말 혹은 음악의 텍스트가 나무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도 음악처럼 언어로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무는 세상의 그 무엇보다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나는 오래된 나무를 찾아다니는데, 그런 나무들은 대개 시골에 많이 있다. 크고 오래된 나무가 많이 있는 시골에는 젊은 사람이 별로 없다. 나이 든 어른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그 나무를 다음에 다시 찾았을 때에는 내게 나무 이야기를 조근조근 해주시던 어른이 세상을 떠나고 없는 경우를 많이 겪는다. 그때 나는 다시 나무를 바라본다. 그러면 나무는 사람의 언어로는 아니지만, 돌아가신 그 어른과 내가 나누었던 사람살이의 이야기를 하나둘 풀어낸다. 그래서 나는 말한다. 사람은 떠나도 나무는 남는다. 사람들은 늘 말을 하지만, 그 말은 금세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나무는 한 마디 하지 않았지만 제 몸뚱이 안에 무수히 많은 말을 담고 바라보는 사람에게 들려준다.(193)


“나는 시각으로 사물을 관찰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무언가를 자세히 알고 싶으면 제 방식대로 감각을 동원하지요. 공감각이라고나 할까요. 시각을 활용하는 사람들처럼 ‘본다는 감각’으로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관심과 성의를 가지고 대상을 느끼려 애써야 해요. 그뿐 아니라 그 대상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한꺼번에 동원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 느낌과 생각을 통해서 이전까지 내가 아는 이것과 지금의 이것을 비교하게 돼요. 오래전부터 알았던 대상이라면 그때와 다른 지금의 변화를 느끼게 되고, 전혀 몰랐던 대상이라면 새로운 느낌으로 대상을 해석하게 되는 거죠.” 

근본적으로 김예지의 관찰 방식은 다르다. 시각이 아닌 오감은 물론이고, 이전의 사유 경험까지 끄집어내 대상을 사유하는 방식이다. 대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유하는 것이다. 시각을 내려놓고 그녀는 사유를 얻었다.(296)


*이 매거진에서 소개하는 책은 서울 은평구 대조동에 위치한 동네 카페 '다-용도실'@da_yongdosil 내 공유 서가 '멈포드의 서재'@mumford_salon 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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