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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jin Park May 17. 2019

5월, 월세를 독촉하는 땅 주인으로부터 달아나는 법

상상하고 창작하기 <나만의 독립국가 만들기>

일본 건축가이자 예술가인 사카구치 교헤의 ‘스승’은 노숙자들입니다. 그는 대학 졸업 논문을 쓰기 위해 만난 노숙자들이 자신의 ‘집’과 도시를 연계해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에서 큰 영감을 얻었습니다. 손수 지은, 한 사람이 겨우 누울만한 넓이의 가설 건축물에서 살고 있던 한 노숙자는 “좁아서 힘들지 않느냐”는 사카구치의 질문에 “아니, 이 집은 침실에 불과하다”는 촌철살인을 들려줍니다. 화창한 날이면 공원에서 책을 읽고, 일주일에 한 번 가까운 대중목욕탕에서 몸을 씻고, 대청소를 하는 슈퍼마켓을 찾아가 식품을 얻는 그에게 집은 주거 공간의 일부일 뿐이었던 것입니다.


사카구치는 노숙자들의 사례를 통해 자신이 어릴 때부터 품어 왔던 몇 가지 질문들-사람은 왜 돈 없이 살 수 없다고 하는가/ 월세를 왜 땅이 아닌 땅 주인에게 내는가/ 토지기본법에 투기를 목적으로 땅을 거래해서는 안 된다고 적혀 있는데, 왜 부동산들은 적발되지 않는가/ 우리가 돈이라고 부르는 것은 일본은행이 발행하고 있는 채권일 뿐인데, 왜 사람들은 일본은행권을 받으면 눈물까지 흘리며 기뻐하는가 등등-을 해결할 실마리를 얻습니다. 그리고 단 3만 엔의 공사비로 땅에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집이 아닌 집, ‘움직이는 집’을 지어 봅니다.

건축면허가 없는 사람도 지을 수 있고, 태양열 전지를 달고 있어 자가 발전이 가능하고, 땅에 붙박여 있지 않아 월세를 독촉하는 땅 주인들로부터 달아날 수 있으며, 그때그때 자신에게 필요한 환경으로 옮길 수 있 고정자산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집입니다.


아니, ‘집’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제안’입니다.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인간 공통의 추상적 질문을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까?”라는 구체적이고도 야생적인 질문으로 바꾸어 탐구한 노숙자들의 지혜를 반영한 하나의 삶의 방식입니다.


사카구치는 심지어,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소유권 다툼의 와중에 방치되어 있는 눈먼 땅 한 뙈기를 발견해, 그곳에 독립국가를 세우는 데까지 이릅니다. 돈을 벌기 위한 노동에 매달리는 것이 아닌, 서로의 재능과 생각을 교역하는 데 집중함으로써 돌아가는 경제 시스템이 이 국가의 핵심이라고 하는데요. 그가 생각하는 ‘경제’란 ‘어떻게 가계를 꾸릴 것인가’, ‘주거란 무엇인가’, ‘내가 살아가는 곳의 공동체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고 실천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바꿔 말하면, 그것은 사회를 바꾸려는 행위”이고, 그것이 사카구치에게는 곧 ‘예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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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의 집은 굉장히 작다. 도저히 사람 살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좁다. 다다미 한 장보다 40센티미터밖에 길지 않은 공간. 좁아서 힘들지 않느냐고 물으니 그는 이렇게 답했다.

“아니, 이 집은 침실에 불과하니까.”

처음에 나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자 그가 설명을 시작했.

화창한 날이면 이웃한 스미다 공원에서 책을 읽거나, 주워 온 중학교 음악 교과서를 보면서 기타를 칠 수 있다. 공원에 화장실과 수도가 있으니 마음껏 쓸 수 있다. 목욕은 일주일에 한 번, 가까운 대중목욕탕에 간다. 식사는 슈퍼마켓이 대청소를 하는 날 고기나 야채를 받아 해결한다. 그러니 집은 침실 크기면 충분하다......

그가 한마디 할 때마다 내 눈은 번쩍 뜨였다. 그 후, 내가 계속 언어화해갈 사고의 싹이 거기에 있었다.

그에게 공원은 거실과 화장실과 수돗가를 겸한 곳이고, 도서관은 책장이며, 슈퍼마켓은 냉장고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집은 침실이었다.

나는 그것을 ‘한 지붕 아래 도시’라고 이름 붙였다. 그에게는 집만이 주거 공간의 전부가 아니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그가 하루하루를 보내는 도시 전체가 큰 집이었다. 같은 사물이어도 보는 각도를 바꾸는 것만으로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그가 집, 도시, 삶을 이해하는 방식에는 무수한 레이어(layer)가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29~32)


그리하여 나는 사회 시스템이나 법률, 땅의 소유 방식, 건축, 도시계획을 바꾸려고 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무언가를 바꾸려 하는 것은 이미 자신이 익명화된 레이어에 농락당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기존의 사물에 포함되어 있는 다층의 레이어를 인식하고 확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바꾸기(change)가 아닌 확장(expand), 그것이 레이어 혁명이다.(50)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다시 말해 ‘어떻게 살아남을지’에 대한 대책을 짜낸다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를 돌이켜 살피고, 외부 환경을 파악하고, 고찰하는 것이다. 익명화된 시스템에서는 이 ‘생각한다’는 행위가 삭제된다. 생각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다고 여기게 만들고, 생각을 삭제한다.

노숙자들은 단순히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그런 생각은 지금 철학이라고 불리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익명화되고 안정된 시스템상에 있지 않으므로 ‘산다는 것은?’이라는 추상적인 질문 외에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까’라는 구체적인 야생의 사고도 필요했던 것이다.(53)


*이 매거진에서 소개하는 책은 서울 은평구 대조동에 위치한 동네 카페 '다-용도실'@da_yongdosil 내 공유 서가 '멈포드의 서재'@mumford_salon 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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