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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질문 앞에 우리는 마주 앉아-정한샘 조요엘-열매하나-중략 필사

by 홍선


직업을 묻는 질문을 받으면 늘 가정주부라고 적는다.
찬탄할 만한 직업인데 왜들 유감으로 여기는지 모르겠다.
가정주부라서 무식한 게 아닌데.
잼을 저으면서도 셰익스피어를 읽을 수 있는 것을.
-타샤 튜더

읽을 때마다 나를 설레게 하는 이 멋진 문구는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은 동화 작가 타샤 튜더의 말이다. 14페이지


나를 완성하는 것은 책 읽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 속에서 비로소 세상을 만났다. 적절한 시기에, 필요했던 문장들이 쓰인 글을 통해 위로를 받고 다른 세계를 경험하는 것,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가 아닐까. 15



오히려 그 모든 권유와 홍보를 외면하기로 했다. 책을 주면 입으로 가져가는 아이에게 시기별로 읽혀야 (읽어주어야) 하는 책이 정해져 있다는 말을 도무지 믿을 수 없다. 17

몸으로 책과 놀던 아이들이 내용을 궁금해하는 시기가 왔을 때는 그림을 보며 내용을 상상해 보게 했다. 글자를 서둘러 가르치고 싶지 않았기에 아이들은 유치원에서 한글을 마지막으로 읽은 주인공이 되었다. 17

글자를 읽기 전 아이들이 보여준 상상의 시간은 참으로 놀라웠다. 그 시간을 조급함 없이 지나 글자를 읽게 된 아이들은 그림만으로 상상하던 것과 실제 내용이 다르거나 같음에 감탄하며 책을 가까이 두기 시작했다 18

나는 책 읽기를 교육의 한 도구로 생각하지 않으며, 어떠한 지점에 이르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게 있어 책이 그렇듯 아이에게도 책이 어떤 순간에든 함께할 수 있는 친구로 존재하기를 바랄 뿐이다. 19

나는 대단하다는 말이 아니라, 괜찮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나 보다. 내가 아이들에게 늘 하던 말을 사실은 나도 듣고 싶었던 것이다. 남들이 하는 대로 하지 않아도 괜찮아. 느리게 가도 괜찮아. 그거 몰라도 괜찮아. 괜찮아. 다 괜찮아. 29

누군가가 나에게 책을 왜 사느냐, 왜 읽느냐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아름다운 소설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제가 독서를 좋아하는 거예요. 책 속의 작은 것 하나가 관심을 끌고, 그 작은 것이 다른 책으로 이어지고, 거기서 발견한 또 하나의 단편으로 다시 새로운 책을 찾는 거죠. 실로 기하급수적인 진행이랄까요. 여기에 가시적인 한계도 없고, 순수한 즐거움 외에는 아무 목적도 없어요." 34

나는 이제 순수한 즐거움에 머물지 않고 책을 통해 세상을 보려 한다. 책 안에서 만난 새로운 세상을 내 일상으로 끌어당겨 적용해 보려는 노력도 한다. 35


어떤 엄마가 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내게 있어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문제였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아 키우는 친구들도 없었고,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 나눌 기회도 없어 막막하기만 했다.

나의 외로운 고민을 이 책이 조금은 덜어주었다. 돈의 많고 적음, 몸의 깨끗함이나 더러움, 혹은 불편함이 어떠한 편견의 시선을 정당화하는 이유가 될 수 없음을 아이에게 계속해서 이야기해 주는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49

넬리는 여행하며 누군가로부터 "너무 늦었어요. 불가능해요."라는 말을 들으면 "진심으로 원한다면 할 수 있어요. 문제는, 당신이 그걸 원하냐는 거죠."라고 말해요. 저는 이 부분을 반복해서 읽었어요. 평소 제 모습이 생각나서 그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거든요. 작가가 갑자기 세계 일주를 떠나면서도 어떻게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죠. 진심으로 원하는 일이니까 해낼 수 있었던 거예요. 82

저는 심지어 책 속에 음악까지 있다고 생각해요. 책에서 음악에 대한 묘사를 읽으면 그 음을 상상하게 되고 때로는 진짜 그 멜로디가 들리는 것 같거든요. 음악까지 표현할 수 있는 글은 정말 아름다운 것 같아요. 95

제시카가 점점 더 타인을 배려하는 사람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한층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지만 더 나은 사람이 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니까요. 116

그래도 이 책을 읽는 동안 '어, 나도 이런 적 있었는데!"하고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 내내 즐거웠어요. 책에서 자신의 생각과 같은 생각이나 자신이 경험한 것과 비슷한 일을 발견하게 되면 전보다 그 책이 더 좋아지는 것 같아요. 127

처음에 엘리와 전 다른 점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잖아요? 그런데 이상하게 다른 사람들이 과하게 놀라면서 "와 진짜 다르게 생겼다~"라고 하면 왠지 기분이 안 좋아져요.

쌍둥이의 생김새도 다를 수 있는데 사람들의 반응이 지나치게 크게 느껴졌거든요. 139


구순 구개열을 가지고 태어난 유정이는 캠프에 갔다가 '언청이'로 불리며 따돌림받을 뻔했고, 사촌 동생은 엄마가 베트남 사람이라는 이유로 놀림을 받았어요. 그런데 유정이는 사촌 동생한테 그건 창피한 게 아니라고, 오히려 2개 국어를 할 줄 아는 작은엄마가 대단한 거라고 얘기해 줘요. 152



두 사건과 메르스라는 사건에는 큰 공통점이 있어요. 첫 번째 공통점은 세 사건 모두 예기치 않게 일어났고, 그 일로 인해 죄 없는 사람들이 고통받았다는 거예요.

두 번째 공통점은 그들이 고통과 어려움을 이야기했을 때 그걸 무시하고 모른 척하는 상대가 있었다는 거예요. 혼자 힘으로 이길 수 없는 큰 상대가 말이에요.

우리가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정부와 사회,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우리를 모른 척하고 무시하며 도리어 책임을 돌리는 건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서로가 서로의 도움이 필요할 때 이렇게 두 갈래로 나뉘는 건 바뀌어야 한다고 봐요. 우리 정부와 사회가 마음에 상처와 억울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이해하고, 배려해 줬으면 좋겠어요. 165.166

프랑스 작가 아멜리 노통브는 한 소설에서 '책을 읽는다고 사람이 바뀌진 않아, 살아야 하지'라고 말했어. 엄마는 우리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 사회 곳곳의 아픔에 대해, 억울한 죽음에 대해, 외로운 투쟁에 대해, 잊지 못하는 죽음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알려야 한다고 말이야. 이것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숙제이자 선물인 것 같아. 172

우리는 살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도 많지만 나는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을 해 보았을 때 배우는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홈스쿨링을 하며 읽고 싶은 책을 실컷 읽었고 그 책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온전히 책, 글과 함께한 지난 5년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했다. 그리고 소중했다. 그 시간들이 나를 계속해서 읽고 쓰게 만들었다. 내게 책과 글은 텔레비전이나 핸드폰보다 훨씬 가치 있는 것이다.

책은 내게 선생님이자 친구이며 언제나 나와 함께하는 존재이다. 그래서 나는 계속 읽는다.

책과 글은 내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도록 해 준다. 또한 너무나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어서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게 만드는 그런 존재이다. 힘과 기쁨이 되어주는 이 존재와 앞으로도 계속 나아갈 것이다. 요엘 - 203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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