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감춘다 한들!
요즘도 간혹 냄새가 세거나 맛이 좀 씁쓸한 약은 당의정(糖衣錠)으로 나옵니다. 쉽게 풀면 단 당으로 옷을 입힌 알약이라는 뜻이니 대략은 감이 오시지요? 그런데 이 당의정이라는 것이 냄새나 맛을 살짝 없앨 목적이다 보니 그다지 두껍지 않습니다. 그래서 약을 오래 쥐고 있다거나 물이 묻은 상태로 만지면 끈적한 설탕처럼 손에 달라붙고 결국은 약의 본성이 드러납니다.
말이 당의정이지 혀끝에 닿는 맛도 그다지 좋은 건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 요즘은 필름코팅정이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엄격한 분들은 당뇨환자에게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을 하시기도 하는데 일견 맞는 주장입니다.
제가 어렸을 땐 알약을 못 먹는다고 하면 아무리 당의정이라 해도 약을 빻아서 가루로 만들어 줍니다. 서방정으로 나오는 약의 경우 가루로 내는 일은 절대 추천하지 않습니다. 쉽게 말해 약효를 서서히 내도록 만들었다 해서 서방정인데 애써 서방정으로 만든 의미가 없지요. 이런 경우 애초 만든 그대로 복용한다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하지만 약마저도 내 입맛대로, 내 취향대로 복용한다면 자칫 원하는 효과에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약은 음식이 아니기에 내 입맛에 약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약에 내가 맞춰야 좋습니다.
실제 사전을 찾아보면 당의정에 대해 기본의미로 먹기 좋게 겉을 당분 있는 것으로 싼 알약이라고 분명히 설명합니다. 하지만 그 의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좋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해(害)가 될 수 있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오늘 당의정이라는 단순한 명사 하나가 내 속에 많은 걸 생각하게 합니다. 순수하고 정결한 내 마음을 남에게 어떻게 표현할 것이며, 그다지 좋지 않은 부분은 어떻게 포장할 것인가?
신앙도 그러하겠지요. 내 이웃은 물론 내가 믿는 신(神)께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늘 마음에 둘 일입니다. 악(惡)에 달콤으로 위장하여 보여주는 일은 이제 없어야 할 텐데, 내 몸과 마음에 학습된 습관은 이래서 무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