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긴, 다른 병도 다 마찬가지죠.
책을 보다가 문득 들은 생각에 펜을 들었습니다. 어디 영화를 보고 드라마를 보고 소설을 접할 때마다 종종 주인공이 적절하지 않은 시점에 세상을 뜨는 설정이 나옵니다. 그 배경이야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일 때가 많지만 아무리 그래도 일반 관객이나 독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할 수 있는 정도는 지켜야 하기에, 결국은 사고라든지 손도 쓸 수 없는 중증(重症)의 질병을 적용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그 범주에는 대개 교통사고, 추락이나 익사는 단골이며 암(癌) 또는 심장 질환, 뇌졸중도 많이 거론됩니다.
저 어릴 적만 해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백혈병이 많이 언급됐습니다. 우연히 내가 접한 드라마나 소설이 용케 다 그리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어린 마음에 여타의 암에 비해 더 극적인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나 보다! 짐작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 유명한 러브스토리가 그랬고 드라마에서도 갑자기 쓰러지거나 아파서 검사해 보면 대개는 급성 백혈병으로 판명이 납니다. 그 결과 극 중에서의 백혈병, 그리고 소설에서의 백혈병은 곧 죽음이 임박했다는 하나의 복선이었습니다.
물론 극적인 효과를 위해서라면 꼭 백혈병뿐이겠습니까? 어느 질병이든 그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는 개연성 정도는 늘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의 제 생각은 많고 많은 질병 중에 왜 하필 백혈병이냐는 불만에 앞서 실제 그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을 마음에 품고 극본이나 소설을 만들었느냐? 그 부분이올시다.
제 막냇동생이 자기 나이 만 5세를 꽉 채운 몇 주 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본인이 곧 생을 마칠 수 있다는 걸 알았느냐, 몰랐느냐는 문제도 염두에 두어야 하겠지만 남아있는 가족의 감정도 배려받아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요즘에야 의학의 발달로 웬만한 질병에 다양한 치료 방법이 존재하지만 그러한 혜택이 얕았던 시대를 우리는 지나왔습니다. 그 부분이 너무도 아쉬웠기에 어쩔 수 없이 죽을 수밖에 없는 배경에 백혈병이 놓인다는 게 좀 불편할 뿐입니다. 사실 한참이 지난 요즘에도 부모님 앞에서 백혈병 이야기를 꺼내는 것조차, 금기에 해당하는 아슬아슬한 날이 계속됩니다. 그만큼 부모에게는 그 사실이 아픔입니다. 그냥 배려해 드리는 것입니다.
물론 나를 제외한 많은 사람이 내가 가진 그런 아픔과 추억에서 자유로운 분입니다. 얼마 되지 않는 소수의 집단을 다수의 사람이 배려해 달라는 억지는 아니고, 괜한 심술이 나서 그런다고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십시오. 세상 살다 보면 약간은 숨기고 싶은 아픔 하나 정도는 다 갖고 살 텐데 이렇게 생각지도 않는 포인트에 그 상처가 외부에 노출이 되면 이렇게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합니다.
그냥 편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면 좋으련만 왜 그러고 지내는지 간혹 나도 모릅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