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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욱곤 Sep 18. 2023

니가 왜 걸어 다녀?

날개는 언제 쓸건대?

(이미지출처:최가책당) 너무도 흔한 풍경


언제라고 특정하여 말하지는 못하지만, 우리 주위에 비둘기가 눈에 띄게 많아진 것은 사실입니다. 어릴 때만 해도 엄청 많다고 느끼지 못한 비둘기가 이처럼 많아진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테지만 평소 우리의 관념에 자리한 그들만의 이미지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을 벌하시고 난 후, 노아가 땅을 확인하고자 할 때 올리브나무 가지를 물고 와 그 목적을 달성한 새가 바로 비둘기입니다. 고래(古來)로 통신 목적으로 쓰이기도 했을 뿐 아니라 평화의 상징으로 대표되기도 했습니다. 지금 UN의 깃발을 보면 북극의 위치에서 바라본 세계지도와 함께 올리브나무 가지가 그 지도를 받치고 있는 모양을 하고 있는데 바로 그런 이유입니다. 여태 비둘기와 올리브나무는 평화의 상징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런 이유일 거라고 짐작하는데 동, 서로 나뉘어 정치색이 짙어진 올림픽이 오랜만에 서로 화합된 게 88 서울올림픽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미국과 서구는 물론 소련, 중국 그리고 동구가 모인 서울올림픽의 개막식에 지금 말한 비둘기 한 무리가 등장합니다. 당시 이 ceremony는 많은 관중에게 탄성을 자아내게 했습니다. 비록 성화에 일부 비둘기가 타 죽는 일만 없었다면 두고두고 좋은 평을 남긴 단편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전으로 올라가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에 식용으로 고기까지 제공했던 그 비둘기가 이제는 불편 그 자체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출퇴근하는 동선의 도로에는 유달리 비둘기가 많습니다. 요즘의 비둘기는 거의 날개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마치 자기들이 닭인 양 그냥 걸어 다니는 게 자연스러움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가까이 가도 도망갈 생각조차 하지 않으며 무서워 날기는커녕 도리어 가는 길을 막기도 합니다. 그 정도면 머리가 좋은 걸까요? 사람들이 자기를 해치지 않는다는 걸 습득한 듯합니다.      


이들의 모이는 여기저기 깔린 부스러기입니다. 물론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천연 모이도 있겠지만 도시의 특성상 모이의 상당수는 사람들이 먹다 버린 음식 중 일부일 것입니다. 그렇다 보니 비둘기가 모여있는 곳은 대개 식당 주변, 편의점, 빵집 그리고 음식물 쓰레기 배출장소쯤 됩니다. 좀 더 공격적인 아이들은 부리로 봉투를 쪼는 경우도 생깁니다. 비둘기야 그 뒤처리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한때의 호평이나 좋은 이미지로 인해 아직도 비둘기를 좋아하는 일은 이제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정도의 비호감이 오로지 나만의 느낌이라 할지라도 현재로서는 그 생각을 바꿀 의지가 추호도 없습니다. 한낱 동물의 습성에서 오늘도 또 다른 교훈을 얻을 뿐입니다.     


세상이 변하고 가치가 변하며 심지어 그로 인해 생활 양상이 변하는 것은 정해진 일이라 할지라도, 그 방향성에 대해 깊이 살펴보는 일은 사실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비록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현재 내가 서 있는 곳은 물론 내가 생각하는 바가 바람직하지 않은 것임을 깨달은 순간, 제대로 된 걸로 바로잡는데 재빨라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산다든지, 저것은 그냥 지나갈 뿐이야! 그런 안일함 가운데 살아간다면 우리는 도시의 쥐로 전락한 비둘기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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