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애는 것이 답인가?
카카오톡을 사용하면서 그리고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생긴 내 습관 중에 대표적인 하나를 꼽으라면 읽고 나면 대부분의 문자를 삭제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사실 친구들이나 여타 지인들과 문자를 주고받는 일이 그다지 많지 않다 보니 문자의 대부분은 단체공지 아니면 광고성 문자입니다. 심지어 아내와 주고받은 일상의 대화들조차 그 효력을 다하면 그냥 삭제하는 일이 습관처럼 굳어져 버렸습니다.
글쎄요. 가족이나 친구, 지인이나 직원들조차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의아해하지만, 남들에게 그럴듯하게 설명할만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요, 그냥 내 생각에 오랜 시간 놔두고 저장해 두어 공간만 차지할 필요까지 있겠느냐? 그게 이유라면 이유입니다. 하긴 제가 생각해도 조금은 특이한 습관이기는 합니다. 나도 그러니 남들은 오죽하겠습니까?
가끔 손가락을 잘못 놀려 잠시 잠깐이라도 보관할 필요가 있는 메시지를 지워버리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지만, 다행히도 이제껏 큰 불편을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이런 습관은 문자뿐만 아니라 통화기록도 마찬가지여서 내 통화기록에는 마치 전화 한 번 하지도 받지도 않은 사람처럼 깨끗합니다. 대신 꼭 저장해야 할 번호는 바로 그 자리에서 저장하는 습관은 남았으니 그나마 쓸만한 버릇 하나쯤은 남았다고 자평하는 중입니다.
며칠 전에는 내 전화 주소록에 누가 자리하고 있는지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당연히 내게 필요한 번호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수많은 번호 중에는 몇 달 동안, 심지어 일 년이 넘도록 전화는커녕 문자조차 나누지 않은 번호도 제법 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더욱 충격인 것은, 그렇다고 해서 먼저 연락해 볼까? 결심조차 서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쯤 되면 상대방도 마찬가지겠지요. 그러나 목록에서 지우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나마 연결된 가느다란 끈 하나마저 없어지는 느낌이어서일 겁니다. 세상을 살면서 이렇게 하늘하늘한 인연으로 엮인 사람이 어디 이들뿐이겠습니까? 달리 생각하면 이런 인연이나마 내게 남아서 다행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결국 연락처를 단 하나도 건들지 못하고 그대로 정리를 접었습니다. 평생을 살아도 연락하기 힘든 인연일지라도 이렇게 자국으로나마 기억 속에 남겨두고 싶은 내 바람 때문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이 정도 되면 오랫동안 소원해졌던 그 관계가 멋쩍어 더더욱 멀어지는 이유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이런 나의 습관이나 성향은 요즘 유행하는 MBTI의 어디에 속할까요? 재미 삼아 둘러본 내 성향이야 I로 시작한다는 사실은 분명히 알지만 세세하게 그다음 범주가 기억나지 않는 오늘, 다시 한번 서서히 둘러봐야겠습니다. 아마도 예전에 나온 그대로 나오겠지요. 내 습관과 생각이 바뀌지 않았으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