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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욱곤 Nov 10. 2023

작년 이때쯤의 기억

행복이라는 파랑새

(이미지출처:강탈장연구소)


오늘 해결해야 할 수술이 많아서 지금 퇴근 시간을 넘겨 일하고 있습니다. 과의 특성상 응급수술은 별로 없지만, 계절적인 특징은 있어서 지금처럼 겨울이 다가오면 환자가 많아져서 시간을 넘기는 일이 종종 발생합니다.     


정해진 근무 시간에 일을 모두 마치는 거야 모두가 바라는 일이지만 간혹 일어나는 이런 상황은 그렇다고 엄청 싫지는 않습니다. 하긴 젊은 날에는 정말 싫은 시절도 있었습니다. 집에 가봤자 누워서 TV 보고 뒹구는 일이 전부라 할지라도 대낮에 일하고 추가로 일하는 것은 그 무엇과 비교하기 힘든 묘한 괴로움이었습니다. 


    

하지만 나이 들어 이렇듯 생각에 여유가 생긴 건 의도치 않은 큰 수확입니다. 이것은 내내 결심한 것이 아니고 바람을 타고 옥토에 용케 뿌려진 씨앗처럼 저절로 자리 잡아 열매까지 맺힌 큰 수확이라 하겠습니다.     


나이의 숫자가 커질수록 내 마음의 깊이는 깊어지고 내 생각의 높이는 높아지며 배려의 씀씀이는 더 넓어지면 좋겠습니다. 자존심이라는 이름의 감정을 내세우며 남들에게 들이대던 시절, 지금 와서 되새겨보면 사실은 땅에 떨어져 가는 자존감의 문제였던 거 같습니다. 억지로 높이려 했던 젊은 날의 헛된 노력이었습니다. 

    

나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입니다. 반면 나를 불편해하고 어려워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여 화내고 슬퍼할 일만은 아닙니다. 어차피 세상은 나름 공평해서 누군가 내게 그리 한 만큼 나도 그런 대상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어떤 사람이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느냐? 그게 더 중요합니다.     


다행히 수술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군요. 오늘도 수술 덕분에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매사 조그만 일에서 나를 돌아보는 연습만 하여도 내 삶이 훨씬 윤택해질 겁니다.     

이렇게 겨울의 한 자락에 놓인 하루가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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