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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욱곤 Oct 26. 2023

존경하는 인물은 누구입니까?

책 속의 인물인가요?

(이미지출처:가보고 해보고 먹어보고) 광화문 이순신장군상입니다.


초등학교 시절, 학년이 바뀌면 학년 초에 반드시 작성해야 하는 항목의 하나가 가정환경 조사서인가? 그런 설문지가 있었습니다. 말이 좋아 가정환경이지, 그 질문의 시작은 가족의 구성원, 부모의 직업과 최종학력 등으로 시작하여 집안 살림살이는 무엇이 있는지 세세하게 체크를 해야 했습니다. TV가 있는가, 전축이 있는가, 물었으며 답하는 사람도 그다지 반발감이 없었고 다만 가난한 집들은 이런저런 불편감과 부담만 가중될 뿐이었습니다. 지금에 와서야 그런 것들이 여러 이유로 부당하다는 걸 알아 유지 여부를 상의했겠지만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에 감히 의견조차 꺼낼 수조차 없던 시절입니다.     


요즘 생활기록부가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있다면 어떤 내용이 들어가는지 모르겠지만 내내 묻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장래 희망입니다. 사실 어느 시점에서 장래 희망을 결정하는 게 좋은가? 나 스스로 잘 모르던 시절을 보냈습니다. 아이들의 상상력이 지구 면적보다 넓던 어린 시절에 장래 희망이라는 좁디좁은 울타리를 굳이 만들어야 하는지 궁금하던 날을 보냈습니다. 어제는 이게하고 싶고 오늘은 저게 하고 싶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내 적성이 무엇인지 심사숙고하여 문과, 이과를 결정하고, 그 후에 장래 희망을 정하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그다지 실질적이지 못한 이유는 제 친구들의 많은 이들이 문과, 이과 적성에 구애받지 않고 학과 결정하는 일이 허다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맥락에 놓인 질문 중에 가장 난감한 질문을 고르라고 하면 아마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는 질문일 것입니다. 인생 고작 십여 년을 조금 넘게 지낸 아이들, 그마저도 젖먹이 시절과 기억조차 나지 않는 어린 시절을 제외하면 고작 몇 년의 경험이나 지식으로 쿵 소리가 나게 심금을 울리는 위인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결국 남학생들은 대부분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 정도, 여학생들은 신사임당 정도로 서로 타협합니다. 이쯤의 아이들에게 존경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위인전이나 교과서에 놓인 업적이 선정 기준이 되는 셈입니다.     


세상살이가 다 그러하듯 살다 보면 각각 분량의 차이만 있을 뿐, 허물이나 단점 하나 없는 완벽한 위인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런 진리를 모른 채 우리가 존경하는 모든 위인은 마치 완전무결한 사람인 양 여기며 지냈습니다. 더 재미있는 게 또 있습니다. 학년이 올라가고 배우는 내용이 늘어나며 읽어 본 위인전이 늘어날 때마다 초반에 품었던 존경의 대상이 수시로 바뀐다는 사실입니다. 마치 손 뒤집듯 내 안에 품은 위인이 이렇게 쉽게 바뀝니다.          



정확히 몇 학년쯤이나 되었을까 기억도 가물가물한 어느 수업 시간의 일입니다. 가장 존경하는 분이 누구인가? 선생님의 질문에 서로 웅성거리던 사이 한 친구가 조그맣게 “아빠요”라 얘기한 것이 용케 모든 아이의 귀에 쏙 파고들었습니다. 잠깐의 폭소가 터지고 누가 그랬는지 대답한 아이를 찾으러 고개를 돌리는 그 짧은 순간에 웃음이 멎었습니다. 아무리 어린 나이라 한들 그 대답의 무게 정도는 충분히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후로 내 존경의 대상은 내 주변에서 나에게 선한 영향을 끼친 분들로 점차 구체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내 부모는 말할 것도 없고, 마을이나 교회의 어른이 되기도 했으며, 나를 가르치셨던 스승님도 되었으며 크게는 나라의 명망 있는 분들까지 좁아진 반경 대신에 점차 구체적으로 되어갔습니다.     


이렇듯 누구를 존경하는지 결정하는 일도 어려운 일이지만 설령 내가 그 대상에 드는 일도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아니, 다른 건 둘째 치더라도 내가 누군가에게 친구가 되며, 호감의 대상이 되는 조차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상대를 만나고 서로 보는 시간이 잦을수록 단점이 보이기 시작하고, 몰라도 되는 사소한 부분까지 보게 되면 호감도는 급속도로 추락합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고 품는 것, 그것이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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