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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욱곤 Mar 07. 2024

게으름과 나태함

나에게서 멀어지기를 바라며.

(이미지출처:글이 나를 바꾼다) 자주 이랬지요.^^


게으르거나 나태하지 말아야 한다는 금언(金言)은 사실 내가 말귀를 알아들을 만할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을 아닐 것입니다. 공부나 운동, 아니 좀 더 압축하자면 학교 늦겠다, 학원 가야지, 숙제는 했니? 눕지만 말고 뭐라도 해라, 등등 그 범주에 드는 잔소리는 끝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잔소리는 비단 아이들이나 자녀에게 국한되는 것은 아니요, 정작 어른들도 따지고 보면 게으름에 관해 자유로울 수도 없고 그 범주 또한 무궁무진합니다.     


어릴 적 “쟤는 알아서도 할 아이”라는 칭찬을 듣고 자란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 인간이 아닐 거라고 자조하며 자랐습니다. 오죽하면 공부하려다 공부하라는 소리에 펜도 놓고 책장도 덮어버리는 오기를 부린 적도 많았고 그 행동은 또 다른 갈등을 촉발하는 촉매제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나의 나 된 것은 그러한 잔소리의 몫도 분명히 있을 테지만 그때만 해도 그게 약이 될 수도 있음을 모르며 살았습니다.     


 내가 내 앞가림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고 더 나아가 결혼 후에 철이 들어 아무런 지시 사항이 없어도 자발적으로 삶을 꾸릴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합니다. 본격적으로 직장에 다니고 결혼해서 살림도 꾸려서 그동안 쌓아 온 내공과 배움으로 인생을 잘 꾸릴 것 같지만 삶은 실상 그렇지 않지요. 이제 새로운 형태의 잔소리와 훈계가 우리를 기다립니다.     





나는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과연 값어치라는 게 있기나 한가? 혼자 생각하고 내뱉어도 달라지는 건 별로 없습니다. 그렇게 삶은 번복되고 또 되풀이합니다. 60이 넘으면 이제 지긋이 인생을 관조할 만도 하련만 내가 게으른 놈이라는 걸 확인만 하는 꼴입니다. 글을 꾸준히 써보겠다는 다짐이 양력과 음력 새해를 넘겨도 다시 rebooting이 될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어느 날 돌아보니 어느새 3월이 넘어서고 있더란 말입니다.   

  

마치 몰골이 꾀죄죄하니 샤워해야겠다, 결심하고 물만 틀어놓은 모습과 뭐가 다르겠습니까? 펜도 구비하고 종이도 구비했으나 정작 글은 쓰지 않는다? 그게 지금의 내 모습이었습니다. 어릴 적 나와 다른 점이 있다면 남의 입으로 혼나는 건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신 내 안의 나에게 호되게 혼나는 중입니다. 혹시 그런 핀잔을 들어 본 적이 있으세요? 넌 나중에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니?
 
 내 속에서 생각의 샘이 자꾸 마르는 듯한 조급함에 시달리는 중입니다. 특정한 상황에서 내가 배우며 취(取)할 건 무엇인가? 집착하고 집중하다가 보니 일상에서 내게 오는 중요한 signal을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중입니다. 출퇴근 길이나 아내와 산책하다가 그런 signal이 분명 내게 왔음에도 금방 잊거나 놓치는 일도 사실 허다합니다.     




그냥 내가 그랬노라고 이렇게 넋두리하고 밝히다 보면 이렇게 하나의 글이 되고 모티브가 되기도 하겠구나, 싶어서 이렇게 펜을 굴리는 중입니다. 그렇게 시작하다 보면 뭔가 하나 정도는 이루어지겠지, 혼자 다짐하는 중입니다. 최근에는 제 시선이 조그마한 아이들이며 강아지, 그리고 폴짝거리는 개에 내내 눈길이 갑니다. 그 부모나 주인이 싫어할 걸 마음에 두면서도 한 번씩 말을 걸다 보면 주책 좀 그만 부리라는 아내의 잔소리가 또 들리는 듯합니다. 그렇게 게으름에서 또는 주접스러움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나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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