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여유롭게 사는 법
새벽 네 시가 조금 넘으면 누가 밀어내지도 않았는데 벌떡 일어나 서재로 향한 지 벌써 몇 년이 지났습니다. 언제라고 특정하지 못하는 이유는 정확한 날짜를 기억하지 못함도 있고, 그날이 내게는 그다지 기념될 만한 날이 못됨도 있습니다. 묵상이라고 이름하는 QT를 하며 생긴 습관입니다. 그렇게 한 시간 여를 보내면 밤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나 그 옛날 아버지가 신문을 읽으시듯 휴대폰으로 뉴스를 읽는 일이 보통의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제는 마치 논둑이나 저수지의 둑이 무너진 듯한 느낌을 받곤 합니다.
이것이 습관이라는 범주에 들어왔다고 판정하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야 그 권리가 생기는 것일까요? 그러한 생각은 연이어 말하려는 생활 습관에도 더 도드라집니다. 면도하고 세수하고 머리도 매만지다 보면 이게 뭐라고?라는 생각이 문득 들 때가 있습니다. 이게 나를 위한 것인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게 아닐까? 싶어 심드렁해질 때가 있더란 말입니다.
하루는 이런 마음이 넘친 날이 있었습니다. 마치 깜박 잊어버리기라도 한 듯 면도를 슬쩍 빼먹어 보았습니다. 제 면도의 이력은 고 2부터입니다. 그 말은 곧 50이 넘으니, 면도를 하지 않으면 입 주변이 시커멓게 된다는 말과 동일합니다. 그렇다고 잔디처럼 쑥쑥 자라나지는 않지만 까맣게 변할 정도는 되지요.
수술실에서 마스크를 쓰고 근무한다는 사실에 가끔은 감사하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 바로 그런 날입니다. 그 누구도 내가 면도를 놓쳤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고 설령 알았다 해도 그것이 보기 싫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흐르면서 그럴 수 있다는 마음의 여유는 물론이고 나에게 주는 허용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하루 이틀 그 정도야 뭐가 대수냐? 싶으니 그동안 너무 종종거리며 살아온 시간들이 너무 많았음을 뒤늦게야 깨닫게 된 셈입니다. 한 번은 오랜만에 3박 4일 정도의 해외여행을 계획한 적이 있습니다. 준비하고 챙기는 과정 중에 문득 마음에 둔 게 바로 일상의 습관이었습니다. QT를 어떻게 할 것인가? 면도기는 챙겨갈 것인가? 거짓말 않고 2~3일은 고민했나 봅니다. 그러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기도로 대체하면 안 되겠니? 수염이 보기 싫으면 현지에서 일회용 면도기로 해결하면 되잖아? 다행히 그 시간에 깨어 기도할 수 있었고 호텔에는 비치된 일회용 면도기가 있었습니다.
사는 걸 이렇게 빡빡하게 살 필요는 없는 일입니다. 한결같이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기는 하겠지만 그것이 하루가 되고 이틀이 되다 보면 그 또한 습관이 되고 내 성품이 될지 모르는 일입니다. 여유롭고 평온한 마음! 내가 꿈꾸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