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해야겠지요.
이번 명절에도 늘 그렇듯이 선물이 도착합니다. 병원장님이 챙겨주는 것이기에 늘 감사하게 잘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명절이라고 해서 선물이 많이 도착할 거 같아도 이걸로 거의 끝입니다. 그도 그럴 게 주고받는 게 선물일 텐데 받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 주지 않기 때문이지요. 아마 내 마음에 선물은 감사의 마음을 표현한다는 느낌보다는 청탁이나 대가의 의미가 더 크다는 생각이 은연중 자리한 모양입니다. 젊은 날, 직장에서 동료들끼리 우리는 서로 주지도 말고 받지도 말자는 의견에 서로 동조하면서 자연스럽게 인사 목적의 선물은 내게서 멀어져 갔습니다. 생각하는 각도에 따라 이 또한 맞다, 아니다.라는 논란의 여지는 있겠습니다.
올해 선물도 포장만 보아도 분명 포도주입니다. 언젠가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물론 우리 가족들이 그다지 술과 친하지 않습니다. 부친께서 젊으실 적에 두주불사(斗酒不辭) 형이셨는데 교회를 다니고 나서는 아예 입에 대지도 않습니다. 아버지는 물론 장인께서도 잘 드시지 않으니 뒀다가 어른들 드려야겠다는 결심도 다 부질없는 짓입니다. 아무리 좋은 포도주라도, 아무리 정성스러운 포도주라 할지라도 저에게는 그저 장식품에 불과합니다. 지난번에는 모아둔 포도주 중에 인사가 필요한 곳에 보내 드렸습니다. 다행히 굉장히 좋아하시더라고요.
요즘은 선물을 받을 때마다 어떤 품목인가에 관심 가지기보다는 이 선물을 고르기까지 고민하고 결정하는 상대의 마음을 먼저 읽으려 노력합니다. 그들은 최고의 품목은 물론이요, 게 중에서 가장 최선의 브랜드를 고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선물을 챙겨주신 원장님께서는 주변이 인정하는 wine 애호가입니다. 그러니 매번 오는 포도주는 당신이 고를 수 있는 최선의 품목인 셈입니다. 아쉬운 점은 선물을 받는 내가 조금의 술도 못한다는 점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내가 누릴 수 있는 모든 게 다 나로부터 비롯되는 건 아닙니다. 그냥 내가 자격이 되고 성과를 내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모두를 받는 건 더더욱 아닙니다. 때로는 아무 조건 없이 나에게 오며 이를 우리는 선물이라 말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선물을 받고도 사람들은 기뻐하거나 좋아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당연한 걸로 여기기도 합니다. 이에 덧붙여 우리는 선물의 품질을 이야기하고 품목의 적절함을 이야기합니다.
명절에 받는 선물은 콕 집어 나에게만 주는 게 아니요, 분명 동료 의사에게도 똑같이 지급될 터인데 원장님께서 부담해야 할 돈도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선물하는 사람의 마음은 다른 게 아니라, 그동안 병원을 위해 애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이런 마음이겠지요.
감사히 잘 받았으니 나도 그에 걸맞게 보답해야겠지요. 물건으로 다시 선물하는 게 아니라 열심히 일해야 선물에 맞는 적절한 보답일 것입니다. 힘닿는 대로 근무할 일입니다.